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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Nov 30. 2023

모나리자는 왜 루브르에 있을까?

6.  Musée du Louvre






뮤지엄 패스를 갖고 있어도 사전에 예약을 해야 제시간에 입장할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예약을 안 하면 티켓이 있어도 2-3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곳도 있으니까요.

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첫 타임으로 예약하는 걸 선호합니다.


파리 메트로를 타면 하루에도 몇 번씩 듣게 되는 안내 방송이 있습니다.

특히 유명한 관광지가 모여있고 환승할 수 있는 역이 많은 1호선에서는 어김없이 나옵니다.

또렷한 한국어로요.


"관광객을 대상으로 소매치기가 많으니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여행자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고 비례해서 소매치기를 당하는 숫자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겠지요.

여러 날 지나다 보니 메트로의 다른 라인에서도 주머니를 조심하라는 내용의 영어, 일본어, 독일어로도 방송되는 걸 알았습니다.



파리 메트로 1호선



1호선 Palais Royal - Musee du Louvre역에서 내리면 출구(프랑스어로 sortie) 표시가 여러 곳에 있는데요.

그중 한 곳이 카루젤 뒤 루브르 (Carrousel du Louvre)입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면 지하의 쇼핑몰로 연결되는데 유리 피라미드옆에 루브르로 들어가는 입구도  있습니다.

 9시가 오픈인데 메트로에서 내린 시각은 8시 25분.

그런데 카루젤 뒤 루브르로 향하는 출구의 철문이 닫혀 있어요.


'뭐지?'


안내문을 읽어보니 8시 30분에 오픈한다고 쓰여있더군요.


시간이 되자 문이 열리고 걸음을 재촉해서 입구로 향하니 벌써 대여섯 명이 줄을 서있습니다.

쇼핑몰은 오픈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줄이 길어졌지요.

이윽고 9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루브르의 철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40분이 지났지만 오픈이 늦어지는 상황을 설명하러 나오는 직원 한 명 없었지요.

영문도 모르는 채 무작정 기다리는 영어권 여행자들이 중얼거리기 시작합니다.


A : 오늘은 13일의 금요일이야, 우리에게 나쁜 일이 생기려나 봐.

B: 파리에 빈대가 많다더니 소독을 하느라 오픈이 늦어질 수도 있어.


한 시간이 넘어가자 사람들은 하나둘 바닥에 앉기 시작했고 나 역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0시가 조금 넘어서야 관계자 한 사람이 나와 무슨 말을 하고는 다시 들어가더군요.

그래도 사람들은 아무 동요가 없이 차분하게 기다립니다.

줄을 선 사람의 길이는 점점 길어졌고 멀리서 있던 사람들이 앞으로 다가와 무슨 일인가 묻는 사람들이 늘어났지요.

답답하고 힘들었습니다.

벌써 그곳에 도착한 지 1시간 40분이 지났으니까요.

대화를 나눌 일행도 없고 데이터 때문에 폰을 볼 수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내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대체 무슨 일인가 갑갑한 마음에 구글 검색을 해보았지요.


"긴축에 반대하고 임금과 성평등을 위한 파업"


그날 파리의 곳곳은 파업으로 기차가 운행을 안 하고 에펠탑은 폐쇄되었다는 뉴스를 찾았습니다.




루브르 지하 쇼핑몰 : 피라미드 왼쪽에 루브르 입구가 있음
카뤼젤 뒤 루브르



10시 30분쯤 철문이 열리고 직원들이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던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문제겠다 싶었어요.

9시 예약자부터 10시 30분 예약자까지 줄을 서서 기다린 사람들의 수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났고 게다가 입구는 세 곳이니 한꺼번에 얼마나 많은 사람으로 붐빌까 생각하니 끔찍했습니다.

갈 길이 멀고도 멀었지요.

총면적 73,000m²으로 약 22,000평이 넘고, 복도의 총길이는 14.5km, 전시실은 무려 403개이니까요.

짐검사를 하고 검색대를 통과하여 안내데스크로 갔지만 한국어는커녕 영어 지도가 놓여있는 칸도 텅 비어 있었습니다.

파업으로 인해 일부 직원들로 겨우 오픈을 하여 박물관의 운영이 매끄럽지 않은 거죠.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도 빌릴 수 있지만 이것저것 다 챙길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빠른 걸음으로 드농관으로 향했습니다.

모나리자를 무척 좋아하는 것도 아니요, 처음도 아닌데 그냥 '루브르=모나리자'라는 공식이 관념으로 배어있으니 그곳부터 가보자였지요.




루브르 인포메이션
드농관으로 가는 통로
그리스 신화의 승리의 여신 사모트라케의 니케
그랑드 홀



루브르 박물관은 리슐리외(Richelieu) 관, 쉴리(Sully) 관, 드농(Denon) 관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 이름은 현재 박물관이 존재할 수 있도록 노력한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리슐리외관 :  고대 메소포타미아 유물과 18세기 프랑스 조각, 17세기 북유럽 회화

쉴리관 : 스핑크스와 더불어 이집트의 고미술품과 프랑스 회화

드농관 : 고대 그리스 조각과 중세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작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드농관이고 그곳에 모나리자를 비롯한 레오나르도의 그림이 있습니다.

도미니크 비방 드농 (1747-1825, 프랑스)은 프랑스의 예술가이자 작가, 외교관, 고고학자로 나폴레옹은 그에게 루브르 박물관의 첫 번째 관리자로 임명했고 65세가 되던 해에 드농남작으로 임명받았습니다.


모나리자가 있는 방으로 향해 가다가 다빈치의 작품을 발견했습니다.

성안나와 성 모자(The Virgin and child with Saint Anne) 그리고 세례 요한입니다.

감상은 좀 있다가 다시 와서 하기로 하고 일단 목표한 곳으로 향합니다.

모나리자 앞에 벌써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있더군요.

하지만 그건 행운이자 찰나입니다.


모나리자의 크기는 77㎝×53㎝, A4용지 여섯 장 정도의 사이즈로 아무 작습니다.     

액자에는 방탄유리를 끼워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반사되어 그림을 제대로 보기도 어렵지요.

게다가 펜스를 쳐 놓아서 가까이 간다 해도 자세히 보기가 힘듭니다.

얼마나 붐비는지 세계에서 소매치기 밀집도가 가장 높은 장소라는 말도 있지요.

그야말로 인증숏을 찍는 게 목표라고 할까요?

갈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모나리자가 있는 방에 걸린 다른 그림들은 인기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나리자에만 벌떼처럼 몰려들었다가 다른 곳으로 휙 하니 나가버리거든요.



부르르 모나리자(2023.10.13)
루브르가 오픈하자마자 몰려든 모나리자 앞의 사람들
사진 출처 나무 위키




빠르게 사진 몇 장을 찍고 모나리자 반대 편에 있는 그림을 보러 갔습니다.

파울로 베로네세 (Paolo Veronese 1528–1588, 이태리)가 그린 <가나의 혼인 잔치>라는 그림인데 루브르에 걸린 그림 중 사이즈가 가장 큽니다. (가로 990, 세로 660)

가나의 혼인잔치는 기독교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최초의 예수의 기적 이야기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혼인잔치에 초대받았는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켰다는 내용입니다.

무려 130명의 등장인물이 그려진 이 그림은 화려한 색감의 의상과 사람들의 표정, 음식, 악사들 등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파울로 베로네세 <가나의 혼인 잔치> 루브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품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미술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모나리자.     

프랑스 정부는 대략적인 경제적 가치를 결정했는데, 최소 한화 약 2조 3,000억 원에서 최대 약 40조 원 내외라고 발표했습니다.

최대 40조라는 이런 엄청난 가격이 붙게 된 이유는 2018년 기준 연간 루브르 박물관의 방문객 수는 약 1,000만 명에 육박하는데, 이중 대부분이 이 모나리자를 보러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기술적으로 대단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최후의 만찬 등 다른 역작들을 제치고 레오나르도의 대표 작품이 된 가장 큰 이유가 레오나르도가 죽기 전까지 항상 가지고 있던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탈리아 사람인데 모나리자가 왜 루브르에 걸려 있을까?'


 


프랑수아 1세의 품에 안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죽음 <프랑수아 기욤 메나조 1871년, 프랑스>
프랑수아 1세의 품에 안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죽음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1818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빈치'에서 태어났습니다.

지난 5월 그의 생가를 찾아 빈치에 다녀온 기억이 또렷하네요.


https://brunch.co.kr/@silviano/242




그는 '수태고지', 동방박사들의 경배'(1481, 우피치), '최후의 만찬'(밀라노)를 완성하면서 유명해집니다.

그는 줄곧 이탈리아에서 활동했지만 그 명성은 국경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팬 가운데 프랑스왕국의 프랑수아 1세도 있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특히 이탈리아 예술을 사랑했던 프랑수아 1세는 레오나르도를 프랑스로 초빙합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이미 나이가 많아 활발하게 궁정화가직을 수행할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그럼에도 제안을 수락하고 1516년(63세) 때 로마에서 프랑스로 향합니다.

다빈치는 이때 아끼던 작품 몇 점을 들고 가는데, 그중 하나가 모나리자입니다.

그는 1503~1506년경 모나리자를 그렸고, 로마에 머물던 1516년 완성한 걸로 추정됩니다.     

1519년 4월, 건강이 나빠지던 그는 유서를 남겼고 프랑스의 앙부아즈에서 5월 2일 숨을 거둡니다.

모나리자는 이후 프랑수아 1세를 통해 왕실 소장품이 된 것이에요.

그러므로 모나리자가 루브르에 걸려있게 된 것입니다.  

    





루브르가 수많은 침략전쟁에서 얻어진 약탈 문화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모나리자는 그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16세기 전반 프랑스를 다스렸던 프랑수아 1세의 뛰어난 안목 덕입니다.

그 이전까지 대부분의 프랑스 왕들은 영토 확장 욕구에만 눈이 멀었을 뿐, 문화와 예술에 대한 안목이 별로 없었습니다.

불과 스무 살의 나이에 왕좌에 올랐던 이 젊은 왕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반도로 향했습니다. 밀라노를 필두로 이탈리아의 도시를 점령하는 동안 그곳의 뛰어난 건축과 예술 감각을 눈여겨보았습니다.     

멋진 디자인은 그 자체로 말이 필요 없는 강력한 경쟁력입니다.

이탈리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곤한 프랑스의 문화자본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젊은 왕은 자존심이 상했지요.

그 결과 첫 번째 착수한 일이 S급 인재의 초빙,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로젝트입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입지는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0세는 피렌체 태생으로 메디치 가문 출신이기에 다빈치는 내심 로마의 큰 프로젝트를 기대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친구인 브라만테 그리고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 등 젊은 작가의 손에 이미 맡겨진 뒤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38세, 라파엘로는 불과 서른 살의 나이인데 반해 다빈치는 한 세대 위인 61세였습니다.       

변화가 절실한 순간이었어요.

특히 천하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면 더 그렇습니다.

바로 그때 프랑수아 1세가 다빈치에게 손을 내민 것입니다.

이탈리아 반도를 따라 남진하는 프랑스 군대를 막기 위해 당시 교황 레오 10세가 1515년 볼로냐에서 프랑스 왕과 만나 협상하다가 다빈치를 천거하였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프랑수아 1세는 다빈치를 접견한 뒤 그에게 푹 빠졌습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지식과 최고의 예술 감각, 거기에 공학적인 기술과 안목까지 갖춘 만능천재였기 때문입니다.

젊은 왕은 만약 그가 자기의 궁전으로 온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왕은 다른 유명 예술가들과 다빈치를 비교하려 들지 않았지요.

젊지만 사람의 마음을 사는 법을 알았던 리더였습니다.        

그리하여 다빈치는 동년배들의 상당수가 이미 세상을 떠난 나이에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과 함께 당나귀에 가방을 싣고 알프스 산맥을 넘었습니다.

그 가방 안에 저 유명한 ‘모나리자’가 들어있었습니다.

‘세례자 성요한’, ‘성안나와 함께 있는 성모자’ 도 그 가방 안에 함께 담겨 있었기에 그 그림들 역시 루브르에 걸려 있는 것이죠.

     

르네상스 시대 초특급 인재와 역사상 최고의 킬러 콘텐츠가 함께 알프스 산맥을 넘은 것입니다.

프랑스로서는 이보다 더 행운일 수 없고, 이탈리아로서는 두고두고 한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프랑수아 1세는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이제 천하를 얻었다.”     


이 명작이 왜 그려졌는지, 또 누구를 위해 그렸는지는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다빈치가 그림에서 일부러 모호하게 한 듯한 ‘스푸마토 기법’을 이용한 것처럼 안개와 같은 신비함만 남겨져 있을 뿐이지요.     

다빈치는 젊은 왕의 든든한 스승이자 친구였습니다.

앙부아즈에 있던 왕궁과 다빈치의 거처 사이에 비밀 통로가 있어 왕은 그를 자주 찾았다고 합니다.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살았던 다빈치는 1519년 5월 2일 왕의 품에 안겨 편안히 숨을 거뒀다고 바사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프랑수아 1세는 다빈치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모나리자의 미소를 얻은 겁니다.

그가 프랑스 문예부흥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글출처 : [손관승의 리더의 여행가방] (3)>






그의 유해는 1874년에 앙부아 성의 생후베르 성당으로 옮겨졌습니다.

다시 레오나르도 다빈치 ‘세례자 성요한’, ‘성안나와 함께 있는 성 모자’가 걸려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여전히 오직 모나리자를 향해 몰려가는 사람들은 이 두 그림에 관심이 없더군요.



 

세례자 성요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루브르>



어두운 검정을 배경으로 오른손 검지는 십자가를 향하고, 왼손은 십자가를 들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입니다. 이 인물을 세례자 요한으로 보는 이유는 그가 걸치고 있는 털옷과 십자가 때문이라는데요.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벌꿀을 먹고살면서 고행을 하였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한 선지자이자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준 인물로서, 그가 광야에서 살았다는 점에 근거하여 흔히 낙타 털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졌다고 합니다.




성안나와 함께 있는 성 모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루브르>

  


중앙에 정면을 향해 앉아있는 여인이 마리아의 어머니인 성 안나, 그리고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인데요.

마리아는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있어요. 그리고  아기 양에게 발을 올려놓으려는 아기 예수를 떼어놓으려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양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될 희생양의 상징으로서, 마리아는 아들을 험난한 운명으로부터 막고 싶은 모정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안나와 마리아의 표정에서 어머니로서의 안타까움이 절절해 보이더군요.


루브르에서 다시 보고 싶은 그림들이 있었는데 파업으로 인해 오픈하지 못한 전시관이 있어서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갑자기 폐소 공포증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팠습니다.

화려한 금빛 천장만 봐도 멀미가 납니다.

오픈 시간이 늦어지면서 2시간쯤 기다린 데다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에서 에너지가 한 번에 빼앗긴 느낌이 들었지요.

드농관을 지나오면서 이미 익숙한 그림 몇 점 만 보고 아쉬움 없이 빠져나왔습니다.

창 밖을 내다보니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은 여전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솔라나 후작 부인 <프란시스 고야>
그랑 살롱
그랑드 오달리스크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 자끄 루이 다비드>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자끄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 <자끄 루이 다비드>





 

 

루브르를 벗어나 일단 벤치에서 잠깐 쉬었습니다.

그리고 거리를 걸으니 차츰 답답했던 마음이 진정을 찾게 되더군요.

점심 예약은 1시이고 그때 시각은 12시였지만 음식점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친절한 웨이트리스의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어요.

층고도 높지만 천장이 온통 거울로 되어있어서 훨씬 넓어 보였습니다.

우선 떨어진 텐션을 끌어올려줄 레드 와인과 스파클링 워터를 주문했지요.

식사를 마치고 나면 길 건너편에 있는 아름다운 도서관에 갈 예정입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다로코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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