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나무 Dec 02. 2023

책의 궁전

7. Richelieu BNF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서점에 가서 이 책 저책 뒤적이다 보면 왠지 지성인이 된 것 같고

책을 사서 손에 드는 순간 이미 그 책의 반은 알게 된 것 같은 뿌듯함.

도서관에 가면 그 많은 책들이 다 내 것 같고 공부가 저절로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

저만 그런 건가요?


한 장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여기가 도서관이라고?'

그렇게 알게 되어 찾아간 곳이 Richelieu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줄여서 Richelieu BNF

불리는 이곳은 리슐리에 프랑스 국립 도서관입니다.

외관은 그저 평범했습니다.

2층의 박물관을 보려면 티켓을 구매해야 하지만 1층 도서관 열람실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더군요.

그곳 역시 간단한 소지품 검사를 받은 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BNF 담장에 붙어있는 박물관 사진



실제로 보니 입이 떡 벌어집니다.

벽면에는 책이 빽빽하고 유리로 만들어진 타원형의 천장에서는 빛이 쏟아져 들어오더군요.

그 열람실의 이름이 타원형의 방(La salle Ovale)이라고 붙여진 건 아마도 그 천창의 모양에서 만들었겠다 싶습니다.

그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공부도 하고 랩탑으로 작업을 하거나 만화책도 봅니다.

카페처럼 푹신한 안락의자도 있어요.

도서관의 공기가 다르다고나 할까요?

도서관이면 응당 느껴지는 엄숙함이나 진지함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럽고 편안함이 그대로 느껴졌으니까요.




타원형의 유리 천장

  


'파리는 책도 궁전에 사는구나'

그곳은 궁전으로 사용하다가 도서관이 된 게 아니고 처음부터 도서관으로 지어진 곳이었어요.


루브르 궁전에 쉴리관, 드농관, 리슐리외관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곳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이름에도 리슐리외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 그가 누군지 궁금합니다.


리술리외(1585-1642)는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귀족이며, 로마 가톨릭의 추기경입니다.

1624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루이 13세 밑에서 재상으로 활동했는데요.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서 악당으로 그려진 덕분에 악당 추기경으로 더 유명하다는데요.

강단 있는 정치인이었고 그의 정치적 업적은 이후 등장하는 루이 14세 시대에 이르러 절대왕정의 절정기를 구가하게 되면서 빛을 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BNF는 1721년부터 왕실 문서 컬렉션을 보관해 온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리슐리외 유적지라고 불렸던 역사적인 발상지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 이름이 붙어 있는 거였어요.

2년 전 300주년을 맞이한 이 건물은 지난 10년간 리노베이션을 하여 최근에 재개관을 한 겁니다.

리슐리외 국립도서관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뉘는데요.

누구나 무료입장이 가능한 타원형 룸(La salle Oval)과 회원전용인 더 라브루스트 룸(La salle Labrouste) 이 있습니다.  

타원형 룸 역시 전에는 연구원만 출입할 수 있었지만 개조 후 모두에게 무료로 개방되어 160개의 열람실을 비롯해 20,000권 이상의 책과 9,000개의 연재만화들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에서 책의 활자가 눈에 들어올까 싶더군요.




5층 서가에 꽂힌 책
대부분 이어폰을 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거대한 북 카페 같은 전경
2층 BNF 박물관으로 가는 계단



그곳을 찾아온 여행자는 나 말고도 서넛 있었는데요.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 여행자는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열심히 사진을 찍으시더군요.

모든 사람에게 오픈된 자유 열람실이지만 마치 관광지처럼 사진을 찍는다는 게 정말 미안했습니다.

꼼꼼하게 구경해보고 싶은 생각은 많았으나 예의가 아니다 싶어 반 바퀴쯤 돌다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건물 밖 정원에는 간단한 간식과 음료를 파는 카페가 있어요.

정원에는 늦가을 오후의 햇살을 받은 강아지풀들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평화로웠지요.

나도 잠시 강아지풀처럼 허리를 휘고 벤치에 앉았습니다.




BNF 정원





그날 점심 식사를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예약한 이유는 레스토랑 바로 옆이 갤러리 비비엔이고 길만 건너면 BNF였기 때문입니다.



BNF 건너 편의 갤러리 비비엔느(좌), 이탈리안 레스토랑 다로코부스(우)



갤러리 비비엔은 파리에서도 상징적인 지붕이 있는 실내 갤러리 중 하나인데요.

비비엔이라는 이름은 그곳 거리의 이름입니다.

그곳은 원래 파리의 엘리트들이 모여 산책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쇼핑 지역으로 맞춤옷 부티크, 찻집, 음식점, 와인셀러, 고서점, 갤러리 등이 들어서 있습니다.

1823년 당시 공증인 회의소 회장이 파리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갤러리를 짓고 싶다는 생각에 만들어졌는데 오늘날은 영화 촬영, 오뜨 꾸뛰르 패션쇼, 유명 예술가들의 전시회 등 수많은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밖에서 보면 규모가 작아 보여서 관심 없이 걷다 보면 그냥 휙 하니 지나칠 수 있겠다 싶더군요.

2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고상하게 나이 든 노인처럼 운치를 더합니다.

유리 지붕으로 자연스러운 빛을 받은 내부는 코린트식 기둥, 프레스코화, 대리석 모자이크와 컬러 세라믹 타일 등 건물 자체가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기품있는 깊이감이 맘에 들었어요.


당시에는 파리지엥들의 인기 있는 쇼핑의 장소이자 만남의 장소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샹젤리제와 백화점이 생겨나자 이곳은 서서히 잊혀갔지요.

그러다가 1961년 돔이 무너지면서 이 역사적인 장소를 예전의 영광으로 복원하기 위해 개조 공사에 들어갔고 장폴 고티에를 비롯한 수많은 명품, 장식품, 패션 부티크가 갤러리에 매장을 열었습니다.

1974년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된 후 이곳은 다시 파리지앵들이 사랑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갤러리 비비엔느로 들어가는 입구
유리 덮개로 자연 채광이 은은하다
기념품 상점
화려함보다 고상함이 돋보이는 실내
오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모자이크 타일 바닥
주소에 새겨진 장식
멈춰버린 시계
옛 지도와 서적 판매점
거울 셀피 타임



걷다가 우연히 마주한 동상은 프랑스의 극작가 몰리에르.

당대에 이미 엄청난 명성을 얻은 그는 귀족들이 따로 작품 공연을 요청했을 정도로 코미디 프랑세즈를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지금처럼 영화나 TV가 없던 그 시절에는 연극이나 오페라가 다였지요.

연극에 몰입하던 관객들은 허구와 실체를 구분하지 못해 자주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는데요.

무대에 라가 공연을 하고 있는 배우를 때리거나 의견이 맞지 않는 관객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폭력 사태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에 농기구나 무기가 될만한 것들을 압수하기 시작했는데요.

오늘날 공연장의 컨시어지에서 짐을 맡아주는 서비스의 시초가 된 것입니다.




리슐리에 거리의 몰리에르 동상



근처엔 리슐리외와 관련이 있는 곳이 또 있습니다.

바로 팔레 루아얄입니다.

그곳은 원래 리슐리외의 저택이었는데 그가 죽은 후 왕가에 기증되면서 팔레 루아얄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루이 14세가 어린 시절에 잠시 살기도 했어요.

랑스혁명 후 카페와 술집과 주거공간으로 탈바꿈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합니다.

루브르와 프랑스 국립 도서관, 팔레 루아얄까지 리슐리외가 연관된 것을 보면 아마도 그는 파리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상이었던 모양입니다.


높이가 다른 흑백 줄무늬 모양의 원기둥이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옛날 스타일은 아니다 싶었는데

1986년 다니엘 뷔랭이라는 사람이 설치한 '사진 기념품'이라는 작품이더군요.

파리의 궁전들은 누구나 주인이 되어 즐기는 공간이 되었지요.

집에서 만들어온 샌드위치에 와인을 마시고, 좋아하는 댄스 연습을 하고 아무 데나 주저앉아 책는 게 흔한 일상인 겁니다.




만추의 공원
팔레 루아얄
사진 기념품이라는 제목처럼 포토 스폿이 된 줄무늬 기둥
팝송 '하바나'에 맞춰 댄스를 연습하는 커플


빈 벤치를 마다하고 바닥에 앉아있는 사람들
팔레 루아얄의 회랑



루브르 박물관 옆에 장식 미술관이 있습니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스포츠 의류 변천사 특별전이 열리고 있더군요.

패션과 스포츠 '하나의 시상대에서 다른 시상대까지'라는 타이틀로 450여 개의 의류, 액세서리, 사진, 스케치, 잡지, 포스터, 그림, 조각품으로 스포츠웨어의 진화와 그것이 현대 패션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은 거리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일상복이 되어버린 트랙 슈트와 스니커즈 같은 스포츠웨어가 어떻게 패션으로 만들었는지 보여줍니다.

흔히 볼 수 없는 스포츠 웨어의 변천사를 볼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2층에는 각종 장신구가 전시되어 있는데 현대 작품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과감한 디자인이 많아서 놀라웠지요.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슈퍼마켓 카지노에 들러 장을 봤습니다.

그런데 무슨 행사 보너스에 당첨이 되어 5유로를 할인받았지 뭐예요.

그 덕에 33유로 내야 할 것을 28유로만 냈답니다.

고작 5유로지만 500유로 번 듯한 기분입니다.

장구니가 무겁지 않게 느껴지더군요.

그날 저녁 감자찌개가 특히 더 맛있었던 건 기분탓이겠죠?



매거진의 이전글 모나리자는 왜 루브르에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