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띠 궁전, 오뗄 드 라 마린
9. Hôtel de la marine
Hôtel은 관공서라는 뜻의 프랑스어입니다.
그러므로 Hôtel de Paris는 파리 시청,
Hôtel de la marine은 해군 사령부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지요.
오뗄 드 라 마린은 콩코르드 광장 옆에 위치하는데요.
'콩코르드 광장'의 원래 이름은 '루이 15세 광장'입니다.
1748년 루이 15세(1710-1774)를 기리는 의미로 파리에서 만들었지요.
그러나 왕정이 무너지면서 혁명의 장소로 바뀌고 1795년부터는 '콩코르드 광장'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은 명실상부 프랑스인들의 역사가 담긴 광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콩코르드 광장
오뗄 드 라 마린은 1774년에 "오뗄 뒤 가르드뫼"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쉽게 말해 그곳은 모든 왕실 재산의 가구를 관리하는 사무실이었던 것이죠.
침대부터 간단한 의자에 이르기까지 왕의 가구를 선택하고 구매 및 유지 관리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또한 무기와 갑옷, 직물과 장식품, 단단한 돌로 만든 꽃병, 청동, 왕관의 다이아몬드 등 왕실 컬렉션의 보존을 담당했으며, 주방용품과 가정용 리넨까지도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 기관은 베르사유뿐만 아니라 콩피에뉴, 퐁텐블로, 트리아농, 랑부예, 생 제르망 앙레 등 파리 근교에 있는 왕실 거주지의 설비와 가구 유지 관리까지 담당했다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곳은 프랑스혁명 이후 최근까지 프랑스 해군부로 사용되었고 2015년~2021년에 완전히 개조되어 대중에게 공개하게 되었으니 따끈따끈한 신상 궁전입니다.
오뗄 드 라 마린
이름에서 상상하던 해군부라는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게 그 흔적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18세기 왕실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재현을 해놓았더군요.
과거의 분위기를 되살리려면 가구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그 시절의 빛의 강도부터 장식의 녹청까지, 각 가구와 물건의 위치는 말할 것도 없고 계몽주의 시대로 시간 이동한 것처럼 몰입도가 강했습니다.
다이닝룸의 테이블은 마치 방금까지 그곳에서 식사를 한 것 같습니다.
비워진 와인 잔, 빵 바구니, 식탁 위에 굴러다니는 호두들, 바구니에 가득 들어있는 굴 껍데기, 책상에 앉아 글을 쓰던 백작이 잠시 자리를 비운듯한 책상 등의 재현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니까 정원이 없는 왕궁의 축소 버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이번 방문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것은 '의자에 앉지 마세요'라는 글씨 대신 꽃이나 조약돌 하나 등을 올려놓는 것으로 프랑스다운 센스를 발견할 수 있었지요.
무엇보다 오디오 가이드의 역할이 아주 컸는데요.
헤드셋은 바이노럴 사운드 기술을 사용하여 한때 그곳에 거주했던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도록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버튼을 누를 것도 없이 내가 움직이는 대로, 그러니까 내가 서있는 곳의 위치를 인식하여 설명을 해주는 첨단 가이드였습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발자국 소리로 시작합니다.
벽난로의 오른쪽에 서있으면 장작 타는 소리가 타닥타닥 들립니다.
웃는 소리, 식사하는 소리, 연회를 준비해야 하니 이런저런 식재료들이 필요하다는 대화가 함께 녹음되어 생생한 느낌을 더해주었지요.
거울의 방에서는 파티가 열리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오디오의 언어가 한국어는 아직 없고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아랍어, 중국어, 일본어였다는 겁니다.
아기 침대가 놓인 침실 방금 전에 식사를 한 듯 테이블 위에 빵 조각이 있다
굴 접시와 빈 껍데기, 빵 바구니가 리얼하다
게임을 하고 있는 듯한 테이블 차분한 민트색이 아름다운 침실
파리에 여러 번 갔지만 베르사유 궁전은 딱 한 번 갔었는데요.
그야말로 덧정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1.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집중이 안된다. 나중에는 뭐가 뭔지 기억이 안 난다.
2. 그렇게 큰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붐벼서 쉽게 지친다.
3. 화려함의 극치가 '아름답다'를 넘어 질린다.
물론 개인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오뗄 드 라 마린은 달랐습니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궁전이 갖고 있는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
실생활을 쉽게 상상할 수 있도록 구성해 놓은 점
그리고 많은 사람으로 붐비지 않게 방문 인원을 제한하여 예약을 받는다는 점이 만족스러웠지요.
발코니로 나가는 문이 보였습니다.
그곳의 이름은 '로지아(Loggia)'
콩코르드 광장, 오랑주리 미술관, 앵발리드, 에펠탑은 물론이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되고, 오벨리스크가 파리에 도착하여 세워지는 모습까지 프랑스 역사의 많은 에피소드를 지켜본 발코니입니다.
12개의 코린트식 기둥에 바닥의 검은색과 흰색으로 짜 맞춰 만든 체커보드는 베르사유 궁전의 트리아농의 원형을 연상시켰습니다.
또한 휴 더튼이 디자인한 "다이아몬드"라는 유리 지붕이 보입니다.
그것은 유리 거울로 만든 설치물인데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효과를 주더군요.
발코니 로지아 발코니에서 보이는 에펠탑 발코니에서 보이는 오랑주리 미술관
해군을 연상시키는 청색 계단
오텔 드 라 마린으로 들어오는 아치 형 문 옆에는 르 꼬르동 블뢰라는 레스토랑 겸 카페가 있어 식사를 즐겨도 좋을듯합니다.
그곳은 속이 꽉 찬 작은 단팥 빵처럼 알차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부저리(Boucherie, 정육점)에 들렀습니다.
유럽은 고기만 파는 게 아니라 꼬치구이를 할 수 있게 고기와 채소를 끼워놓은 것, 또는 치즈를 넣어 만든 꼬르동 블뢰를 판매하거든요.
안심과 꼬르동 블뢰 2개를 구입했습니다.
프라이팬을 달군 후 치즈가 들어있는 얇은 고기를 올려놓고 지글지글 구웠지요.
후레시 모차렐라 치즈를 큼지막하게 올린 샐러드도 준비합니다.
손으로 뭉텅 자른 바게트 한 조각에 버터와 잼도 있으니
르 꼬르동 블뢰가 부럽지 않았지요.
음악이 빠질 수는 없지요.
비록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지만 챙겨 오길 잘했습니다.
유튜브에 연결하면 어떤 곡이든 문제없습니다.
앤서니 라자로가 오늘의 오프닝입니다.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한순간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으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지요.
그래요.
여기는 가성비 좋은 숙소 맛집입니다.
레스토랑 르 꼬르동 블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