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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Dec 05. 2023

그림 속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10. Barbizon





안내문과 오픈 시간이 쓰여 있는 거로 보아 분명합니다만

'여기가 맞나?' 할 정도로 허름하고 작은 나무 문 앞에서 망설이다 문을 당겼습니다.

'문이 잠겼네, 휴관일은 아닌데...'


길에는 오가는 사람도 하나 없습니다.

'여기가 아닌가?' 하며 돌아서는데 덜컥 문이 열렸습니다.

백발에 네이비 브이넥 니트를 입은 노신사가 나타났습니다.


'안녕하세요, 들어가도 되나요?'

'그러믄요, 어서 오세요.'


<밀레의 아틀리에>라는 간판이 무색하게 허름한 나무 문을 열자 허름하기 짝이 없는 집입니다.


'티켓은 5유로입니다. 어디서 오셨나요?'

'한국에서 왔어요.'

'아! 그렇군요. 안내문을 드릴게요, 잠깐만요.'


그리고는 곧바로 한글 안내문을 가져다주는 겁니다.

깜짝 놀랐지요.

루브르도 오르세도 아닌 이 작은 시골 마을의 아틀리에에서 한글 가이드를 준비했을까 감동이었지요.


'안내문을 읽어 보고 얼마든지 천천히 둘러보세요.'


그리고 한 명뿐인 방문객을 놔둔 채 안쪽으로 사라졌습니다.




밀레의 집이자 아틀리에
밀레의 집으로 들어가는 문
<밀레의 아틀리에> 관장님






파리에 와서 5일 동안 메트로를 타고 두더지처럼 이리저리 땅속을 누비며 미술관을 다녔습니다.

6일 동안 사용하는 뮤지엄 패스를 쏠쏠하게 사용하려다 보니 그럴 밖에요.

바람 좀 쐬야겠다 싶었습니다.

유럽 역시 프랑스나 이탈리아, 어디든 시골은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부대끼지 않고 한적하게 걸으며 쉴 시간이 필요했지요.


메트로를 타고 리옹 역으로 가서 8시 16분  몽트뢰행 기차를 탔습니다.

퐁텐블로 아봉역에 도착하니 8시 56분.

보통은 퐁텐블로 성에 가기 위해 그곳을 방문하지만 나는 버스를 타고 바르비종으로 갈 예정입니다.

시간표를 보니 9시 37분에 버스가 있더군요.

역 앞의 작은 음식점에서 아침 일찍 나서느라 못 마신 커피를 마셨습니다.







노선별로 버스가 정차하도록 되어 있기에 내가 탈 21번 정류장 앞에서 기다렸지요.

시간이 넘었는데도 버스가 안 오는 거예요.

다행히 그곳엔 나 말고 두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10분쯤 지나서 21번 버스가 들어오는 게 보여서 오는구나 했는데 버스가 정차하지 않고 논스톱으로 U턴을 하여 돌아나가려는 겁니다.

나와 함께 서 있던 아주머니가 버스를 쫓아가며 손을 흔들어 차를 세운 후 왜 그냥 가느냐고 묻는 듯했어요.

그 덕에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눈치를 보아하니 버스 기사가 그날 21번 노선을 처음 운전해서 실수를 한 것 같더군요.

나비고 패스는 퐁텐블로까지 가는 기차, 또 그 지역의 로컬 버스 모두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러니 괜히 공짜 여행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더군요.


나비고 패스 1주일권이 30유로,

나비고 패스 없이 퐁텐블로 한 곳만 다녀오려고 해도 기차표와 버스비가 30유로는 족히 들 테니까요.

  


퐁텐블로 성을 지나고 시가지를 벗어난 버스가 큰길로 들어서더니 속도를 냅니다.

다행히 다음 노선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있어서 도움이 되었어요.

아주머니는 일찌감치 내렸고 남은 승객  사람 중 한 명이 내리니 나 혼자입니다.

드디어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돌아갈 때도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야 하니 사진을 찍었지요.

그곳은 마을과 좀 떨어진 곳이라 한적하다 못해 적막강산이더군요.

조금 걷다 보니 마을이 보입니다.




21번 버스 전광판
바르비종 21번 버스 승하차 지점(l'angelus는 밀레의 그림 '만종'이라는 뜻)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여기는 밀레의 고장이야' 하듯 거리 곳곳에는 밀레와 바르비종파 화가들의 기념 명판과 유명 작품들이  모자이크화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주차된 자동차만 아니면 그냥 1900년대 영화를 찍어도 무방할 것 같았지요.

학교 다닐 때 미술이나 이발소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밀레의 그림, '만종', '이삭 줍기'가 그려진 곳입니다.

바르비종(Barbizon)은 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활동한 풍경화가 집단인 바르비종파의 근거지입니다.

밀레, 코로, 루소 등이 이 화파에 속하는데요.

그들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돼 이곳을 자주 찾아오거나 거처를 마련해 머물렀습니다.




    




먼저 찾아간 곳은 간 여인숙((Auberge Ganne),

1822년 당시 그곳은 마을에서 유일한 숙박 시설이었습니다.

머물 집이나 아틀리에를 구하기 어려운 가난한 화가들이  그곳에서 지냈지요.

젊은 화가들은 그림을 공유하고 때로는 식사비 대신  가구에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습니다.

일종의 여인숙이었던 그곳은 이제 작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공개를 하고 있어요.


아마도 내가 그날 바르비종 미술관의 첫 번 째 방문자였을 겁니다.

중년의 두 여성이 반갑게 맞아주더군요.

티켓은 6유로,

 


간 여인숙



하숙생들이 식사를 했을 테이블, 그들이 잠을 잤을 허름한 빈 방의 벽과 문에는 가난한 예술가의 낙서가 희미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들이 그곳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상상이 되더군요.

주로 사실적인 풍경을 그린 바르비종 학교의 작품 컬렉션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얇은 커튼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담쟁이덩굴의 단풍이 간간히 흔들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틀리에는 오직 나 혼자였지요.      






여인숙에 묵었던 화가들의 이름




샤일리 풍경 <테오도레 루소>
바느질하는 여인 <밀레>


샤일리 풍경 <도비니>



하숙집 침실 벽의 그림




중세 경작지에는 애초에 울타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토지의 사적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토지는 영주의 것이고 영주는 더 상위의 영주에게 봉사를 약속하고 받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삭 줍는 사람들'은 단지 자기 밭에 떨어진 곡식이 아까워서 줍는 게 아니었습니다.

1800년대 이삭 줍기는 부농이 베풀어주는 일종의 선물이었습니다.

추수를 하고 난 뒤에 들판에 남은 이삭을 주워가도록 허락을 얻어야 할 수 있었던 일이었지요.

그러나 들판에 떨어진 이삭의 양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추수한 곡식을 훔쳐갈 것을 우려하여 늘 엄격한 관리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허리를 펼 새도 없이 땅 속으로 꺼져버릴 듯 몸을 낮춘 여인들의 모습이 하층민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신발도 없이 다 해진 옷을 입고 엎드린 그들의 그림 속 얼굴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관리인이 멈추라는 말이 떨어지기 전에 한 알이라도 더 주워야 하니까요.

허리춤에 맨 앞치마가 무겁게 쳐지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녀들이 등지고 선 지평선에는 루가 터져나가도록 곡식이 담긴  포대를 싣고 떠날 채비를 하는 마차가 보입니다.

보는 내가 더 허기지네요.



이삭 줍기 <밀레, 오르세>



이번 여행에서 특히 관심을 갖게된 것 중 하나가 시골풍경을 그린 사실화인데요.

코로, 시슬리, 피사로, 그리고 오르세 미술관에서 보게된 쥘 아돌프 애메 루이 부르통(1827-1906,프랑스)의 <이삭 줍기>도 포함됩니다.


그림의 여러 가지 요소를 볼 때 하루가 끝날 때를 표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왼쪽 상단에 보이는 눈썹같은 초승달, 나무 뒤의 일몰은 늦은 오후의 따뜻한 황금빛선사하고

낡고 찢어진 옷과 맨발 같은 사실적인 묘사는 농민의 고단함과 고귀함을 보여줍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이삭을 줍는 사람들 주변에는 그들을 관리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아래 그림 왼쪽, 개를 데리고 서서 하모니카를 부는 남자,

그 아래 그림 역시 개를 데리고 파이프 담배를 물고 서 있는 남자가 보이시나요?

변변한 가방이나 자루도 없이 앞치마를 동여매서 그곳에 이삭을 주워 담던 아낙네들의 고단함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이삭 줍기 <쥘 아돌프 애메 루이 브르통>
이삭 줍는 사람들 <쥘 아돌프 애메 루이 브르통>
들판에서의 휴식 <쥘 아돌프 애메 루이 브르통>
풀 뽑는 사람들(쥘 브루통)



문간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들과 이들에게 음식을 먹여주고 있는 순박한 시골여인이 주인공인 그림을 봅니다.

마치 어미 새에게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 새 같지요.

큰 사건도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아니지만 미묘한 감동을 줍니다.


건초 말리는 사람들의 휴식, 씨 뿌리는 사람, 괭이질하는 사람, 한낮의 휴식 등 밀레는 스스로 자신의 그림은 농촌화라고 불렀듯 그의 그림 대부분이 농촌이 배경이고 농사꾼이 주인공입니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농부 <밀레>
건초더미에서 휴식하는 농부 <밀레>
한낮의 휴식 <밀레>
괭이질하는 농부



씨를 뿌리는 농부의 힘 있는 자세와 노동의 고단함에서 오는 우울함이 느껴집니다.

마치 대지와 투쟁하는 영웅의 모습같기도 합니다.

밀레는 사실주의의 발전과 인상주의, 그리고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특히 빈센트 반 고흐와 카미유 피사로에게 미친 영향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고흐는 밀레를 아버지처럼 여겼습니다.

'나에게 있어 진정한 화가는 밀레이며 밀레 덕에 우리 앞에 지평이 열렸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과 같은 플롯의 그림을 그렸지요.




씨 뿌리는 사람 <밀레>
씨 뿌리는 사람 <밀레>
씨 뿌리는 사람 <고흐>



간 여인숙을 나와 길 따라 걸어갑니다.

도무지 사람이 살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오가는 사람이 드물었지요.

상점이나 레스토랑 보다 갤러리가 더 많습니다.

모자이크로 만든 바르비종화가들의 그림이 여기저기 걸려 있어 심심찮습니다.


테오도로 루소의 집을 찾아갔지만 여기에 루소가 살았다는 글씨만 남아 있더군요.

그리고 밀레의 아틀리에 앞에 도착했습니다.



 







                    

테오도레 루소가 살았던 곳이라는 안내글


                     




밀레 아틀리에는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프랑스)가 1849년부터 세상을 떠난 1875년까지 26년 동안 살았던 집이자 화실입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그의 걸작 대부분이 그곳에서 그려졌지요.


1849년, 콜레라가 유행했을 때 밀레는 가족들과 함께 샤일리 평원에 있는 이 작은 마을 바르비종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작은 집과 헛간을 빌려 작업장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곳을 아틀리에와 주방으로 만들었지요.

벌목꾼과 가난한 노동자들이 사는 이 작은 마을의 작은 집과 채소밭 사이에서 아홉명의 자녀를 키웠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그가 바라던 농민 화가가 된 것은 바로 그곳 바르비종이었습니다.


밀레의 집으로 들어가면 세 개의 방이 일렬로 연결되는 게 보입니다.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방이 아틀리에,

내부에는 밀레가 사용하던 가구와 집기가 그대로 보존돼 있고 미술도구와 유품, 가족사진, 그가 그린 스케치와 판화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작은 방에는 소박한 벽난로가 있는데 식당으로 사용한 방입니다.

그리고 시계는 6시에 멈춰있습니다.

밀레가 죽은 시간이라는군요.

그리고 마지막은 주방이었지만 지금은 전시와 판화나 책, 기념품을 판매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밀레의 집(외관)
밀레의 아틀리네(첫 번째 방)



식당으로 쓰였던 두 번째 방(6시에 멈춘 시계)
전시실, 판매대로 쓰는 세 번째 방


일본어 한국어 안내문



'이 방 세 개가 전부인가요?'

'네, 이 세 개의 방에서 밀레 가족이 모두 살았어요.'


그림 속에 보이는 고단한 삶은 바로 그들이었던 것입니다.

빅토르 위고(1802-1885,프랑스)는 소설로 <레 미제라블,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을 썼지만 밀레를 비롯한 화가들은 그림 속에 레 미제라블을 남겼습니다.


아틀리에를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감사 인사를 전한 후 밖으로 나왔지요.

바르비종의 시가지 끝까지 걸어가는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아요.

한적하고 고상한 마을 바르비종에서의 반나절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 다시 21번 버스를 타고 퐁텐블로 아봉 역에서 다시 기차를 타야 합니다.

알프레드 시슬리가 20년 간 살았던 모레 쉬르 루앙에 들르려고 하거든요.

미술관에서 보았던 그의 그림이 그려진 아름다운 풍경을 직접 보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21번 버스가 시간 맞춰 도착했습니다.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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