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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Dec 17. 2023

파리 마레, 공짜 박물관 세 곳

18.  Carnavalet, Soubise, Cognacq-Jay






4구에 위치한 마레는 단연코 파리의 노른자땅입니다.

보주 광장의 우아한 아케이드, 셜리 저택을 비롯하여 세련되고 트렌디한 부티크, 갤러리, 레스토랑들이 가득해서 파리지앵들은 물론이요, 여행자들로 늘 활기가 넘치는 곳이지요.

1845년에 문을 연 BHV MARAIS는 그 지역의 상징적인 백화점이고 편집샵 메르씨를 비롯해서 메종 키츠네, 아페쎄 등 유니크하고 고급스러운 상점들은 눈이 즐겁습니다.  

     



편집샵 메르씨



파리 시청 근처에는 중고 의류를 판매하는 세컨드 샵이 많은데요.

모델 뺨치는 멋쟁이들이 단돈 5유로, 10유로짜리 셔츠와 재킷을 고르는 모습이 사뭇 진지합니다.

그중에서도 킬로샵이라는 이름의 상점이 몇 군데 있는데 옷에 붙여진 태그의 색깔에 따라 무게를 재서 판매하는 곳입니다.

빨간색이 붙어 있는 옷은 1킬로그램에 20유로, 파란색은 30유로 이런 식으로요.

눈썰미 있고 감각이 좋으면 멋쟁이가 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하지만 묵은 옷에서 나는 냄새로 인해 머리가 아플 수 있다는 건 감안해야 합니다.




킬로 샵
태그에 붙여진 컬러에 대한 가격 설명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다않는다 라는 속담이 있잖아요?

'공짜라 역시 허접하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마레에는 피카소 미술관, 퐁피두 등 많은 미술관이 있지만 그중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세 곳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고문서 박물관(Hôtel de Soubise)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오래된 문서를 보관한 곳인데요.

박물관 내부를 구경하지 않는다고 해도 잠시 들어가 휴식을 취해도 좋은 넓은 정원과 벤치가 있습니다.

고문서 박물관은 1700년대 초에 수비즈의 왕자와 공주(루이 14세의 전 정부였던 안네)를 위해 만들어진 집이지만 1808년, 나폴레옹은 이곳에 국립 기록 보관소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18세기에 로앙-수비즈 가문에 의해 대대적으로 리모델링되었고 지금은 역사적 유물이 보관되고 있지요.

그곳에 보관된 문서의 길이가 약 54km나 된다고 해요.


국립 문서 보관소의 상징적인 작품이자 18세기 공학의 걸작이자 혁명의 희귀한 이동식 작품 중 하나인 철제 금고는 국회의 요청에 따라 자물쇠 제조공 코흐(Koch)가 1790~1791년에 만든 금고입니다.

그것은 두 개의 거대한 금속 상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상자는 세 개의 자물쇠로 닫혀 있습니다.

박물관으로 들어서니 정원의 벽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와 그녀가 쓴 비밀 편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철재 금고
고문서 박물관 정원
마리 앙투아네트
암호화된 앙투아네트의 비밀 연애편지






건물의 내부 장식은 프랑스 로코코 스타일로 화려합니다.

물론 베르사유나 여타 궁전과 비교하면 규모는 작지만 당시 사용하던 가구와 거울, 샹들리에, 그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가로운 게 맘에 들더군요.

티켓을 사서 들어가야 하는 박물관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루이 16세의 일기, 나폴레옹의 마지막 유언장, 마리 앙투아네트가 애인에게 보낸 편지,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등 프랑스 역사의 기록이 남아있는 집이니 만큼 의미가 큽니다.

양피지와 종이 문서, 마이크로필름, 녹음 파일, 디지털 파일 등 이러한 뛰어난 기록은 수백 마일에 달하는 서가에 가득 차 있으며 모두 접근 가능합니다.

이곳에 보관된 가장 오래된 문서 중 하나는 차일드베르 3세 왕이 생드니 수도원에 토지를 부여한 양피지입니다.




나폴레옹
바스티유 감옥 모형













타인연애 얘기는 늘 흥미진진합니다.

불륜이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동서고금을 불구하고 불륜을 주제로 한 소설, 드라마, 영화 등이 늘 인기를 끄는 걸 보면요.


1792년, 마리 앙투아네트가 튀일리궁에 가택연금됐을 때 스웨덴 백작 페르센에게 보낸 1월 4일 자 편지가 있습니다.

여왕과 백작은 1774년 오페라 가면무도회에서 처음 만나 연인이 되었지요.

그 편지는 암호화된 문자여서 해독하지 못한 채 오랜 세월동안 비밀로 남아있었는데 연구학자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마침내 해독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다정한 친구에게

내가 당신을 미친 듯이 사랑하며 단 한순간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지낼 수 없다는 말을 꼭 전하고 끝내겠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처형되기 전에 콩시에르주리 감옥에서 엘리자베스 부인에게 자녀를 부탁하는 마지막 편지,

영국 왕 헨리 3세와 프랑스 왕 루이 9세 사이의 서신, 프랑스 왕 루이 15세를 암살하려던 로베르 프랑수아 다미앙에 대한 사건 문서를 포함한 유죄 증거 및 압수물품 등이 남아 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페르센 백작에게 보낸 연애편지
문서함


나폴레옹 유서
1796년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 중에 아내 조세핀에게 보낸 편지



고문서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문 옆



넓은 레이스 커프스가 달린 드레스,

업스타일링한 올림머리에 두 가닥의 머리카락을 귀 옆에 떨어트리고     

얼굴에는 파우더를 가볍게 터치한 후 에메랄드 목걸이를 걸면 좋겠지요.

그리고 우아하게 한 걸음 한걸음 걸어야 할 것 같은 집에 왔습니다.


곡선이 아름다운 의자, 조개껍질로 장식된 액자, 가느다란 다리가 있는 콘솔, 작은 꽃이 그려진 도자기 컵 등 계몽주의 시대가 세상에 선사한 모든 종류의 세련미가 가득한 이곳은 코냑 제이 박물관입니다.

18세기에 제작한 그림, 가구, 장식품, 조각 등을 주로 전시하고 있는데요.

로코코 미술을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 1703~1770)의 그림이 유명합니다.


코냑 제이라는 이름은 LVMH(루이뷔통 모에 헤네시) 그룹이 소유한 라 사마리텐 백화점(La Samaritaine) 설립자 코냑(Théodore-Ernest Cognacq, 1839~1928)과 그의 부인 제이(Marie-Louise Jay, 1838~1925)에서 따왔습니다.     

코냑은 1870년부터 부인 제이와 함께 퐁 뇌프 거리에서 최초의 사마리텐 백화점을 운영한 사람입니다.

사업가이자 미술 애호가였던 코냑 부부는 1928년 코냑이 세상을 떠난 뒤 평생 모은 수집품을 파리시에 기증했고 파리시는 코냑의 유언에 따라 그가 사망한 다음 해인 1929년 코냑 제이 박물관을 열었습니다.     

이곳에는 그림, 조각, 그림, 가구 등 1,200개 이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Théodore-Ernest Cognacq, 1839~1928
Marie-Louise Jay, 1838~1925




그런데 코냑 부부의 성공은 실로 어마어마한 결과입니다.

그들은 본디부터 금수저가 아니었어요.

떠돌이 상인이었던 코냑은 돈을 모아 작은 상점을 열었습니다.

단 두 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상점은 성공으로 이어졌고 작은 백화점 사마리텐을 설립했지요.

그 당시 정찰제는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고객이 옷을 구매하기 전에 입어볼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비즈니스는 번창했고 매출은 해가 다르게 늘어서 1882년 연매출이 600,000 F(프랑), 1895년에는 40,000,000 F, 1925년에는 10억 프랑을 돌파했습니다.



1882년 사마리텐
현재의 사마리텐



18세기에 '파스텔 예술가의 왕자'라 불리는 모리스 쿠엔탱 드 라 투르(Maurice-Quentin de La Tour)와 그의 라이벌인 장 바티스트 페로노(Jean-Baptiste Perronneau)와 같은 화가들의 기량이 꽃피었습니다. 코냑 제이 박물관에서 주목을 받는 작품은 무도회복을 입고 마스크를 든 드 리외 대통령 부인의 초상화인데요.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우아하고 품위 있는 부인의 모습이 유독 눈에 띄는 그림이었습니다.

파스텔로 그렸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파스텔화 대가 모리스 쿠엔탱 드 라 투르(Maurice-Quentin de La Tour)
파스텔
파스텔화


무도회복을 입고 마스크를 든 드 리외 대통령의 부인



  







코냑 제이에서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카르나발레(Carnavalet) 박물관이 있습니다.

카르나발레는 450년 이상된 건축물로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입니다.

앞마당에 들어서면 루이 14세의 동상이 있고 후원에는 헨리 4세의 부조가 있습니다.




보주광장, 피카소 미술관, 카르나발레, 코냑 제이 이정표
카르나발레 박물관 입구
루이 14세




루이 14세의 정부이기도 했던 세비녜 후작 부인(Madame de Sévigné)이 1677년부터 1694년까지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모든 박물관이 그렇지만 특히 파리의 기부 문화는 대단합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재 후 파리는 성당을 재건하기 위해 기부금을 받기로 했는데요.

발표 당일 1조 원의 성금이 모아졌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곳 역시 주요 획득 수단은 기부입니다.

박물관이 문을 연 이후 수십 명의 기증자가 컬렉션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의 618,000개 이상의 물품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림, 조각품, 축소 모형, 상점 간판, 도면, 판화, 포스터, 메달 및 동전, 역사적인 물건 및 기념품, 사진, 목재 패널, 실내 장식 및 가구 등 규모가 상당합니다.





세비녜 후작 부인(Madame de Sévigné)



박물관에 들어가면 맨 먼저 보이는 게 18세기와 19세기의 파리 상점 앞에 걸려 있던 독특한 간판입니다.

이는 당시 문맹자들이 많아 상점이 무엇을 판매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림 형태로 제작한 간판으로 유럽 어디서나 볼 수 있지요.










전시품 중에 1896년 조르주 클레망소가 그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작품을 기증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라는 제목의 장 자크 르 바르비에(Jean-Jacques Le Barbier)의 선언문은 아주 귀한 작품입니다.

1902년, 나폴레옹 3세의 미망인 유제니 황후는 빅터 발타드(Victor Baltard)가 황태자를 위해 디자인한 유아용 침대를 기증했습니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문'
Cradle of the Imperial Prince 1856)


마리 앙투아네트 케이크 아가씨



1층 벽면에는 앙리 4세, 카트린 드 메디치 등 왕족과 귀족의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저택을 소유했던 귀족 가문의 가구와 장식품 등도 볼 수 있고요.

2층에는 루이 14세부터 루이 16세 시대의 왕과 왕비의 유품, 가구들이 전시된 방과 세비녜 후작 부인의 방을 꾸며 놓아 화려한 왕실 생활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단두대의 여러 가지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데 축소판임에도 불구하고 끔찍하더군요.

마땅히 즐길 거리가 없던 당시 사람들은 사람들의 처형 날짜를 기다리고 몰려가 구경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파리의 거리 모형, 바스티유 감옥의 열쇠, 혁명을 주제로 한 트럼프 놀이 등 이색 자료들이 흥미롭습니다.








바스티유 감옥 모형
나폴레옹 데드 마스크







헨리 4세



18세기와 19세기의 열정이 담겨있는 박물관들을 돌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기부문화와 소중한 유산을 무료로 개방하는 것이 부러웠지요.

빠르게 변화하는 현재에 더 치중하여 역사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지요.

규모가 아담하여 피곤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관람객이 적어서 좋았습니다.

마레 지구에는 볼거리, 먹거리들이 넘쳐나지만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 박물관들을 한가롭게 돌아보는 시간도 의미 있었습니다.

괜히 인문학에 반발짝쯤 더 다가선 듯 어깨가 으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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