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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Dec 23. 2023

렌즈 뒤에 숨겨진 에피 타임(Epithet time)

22. Henri cartier bresson, Ruth Orkin






11월 5일(일)

연일 비와 해가 하루종일 시소를 탑니다.

그런데 웬일로 아침에 해가 조도를 높이더군요.

운치 있게 산책이나 해보자며 생 마르탱 운하로 나갔지요.

메트로 리퍼블리크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니 주룩주룩 비가 내리더군요.

게다가 바람까지 사나워서 볼캡은 벗겨져 날아가고 우산은 뒤집어지고 난리가 아닙니다.

여행자는 뭐든 가벼운 게 최고인지라 작고 가벼운 우산을 갖고 다니니 바람을 견디지 못했지요.

운치 있는 산책은 애저녁에 포기하는 게 옳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 날은 실내로 들어가는 게 상책이지요.

그래서 선택한 곳이 사진전시관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내는 것 역시 중요하지요.

좋아하는 걸 하면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육체는 정신이 지배한다고 믿습니다.

마음이 편하면 그만큼 건강에도 도움이 되려니 생각합니다.


할까 말까 하는 망설임은 과감하게 버려야 하지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계속 뭔가를 선택해야합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일어날까? 더 자고 싶은데, 아침 식사는 뭘 먹지? 어떤 옷을 입고 나갈까? 부모님 생신이 다가오는데 선물은 뭐가 좋을까?' 등등 선택은 늘 어렵습니다.


나는 혼자 조용하게 있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토론이나 여러 사람이 북적거리는 모임에 참여하는 일은 그야말로 젬병이지요.


손을 놓은 지 오래되었지만 전공이 작곡이라 10여 년쯤 음악을 만들었지요.

책 읽기, 영화 보기, 음악 듣기, 글쓰기, 사진 찍기, 그림보기, 여행을 좋아합니다.

이 모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며 혼자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 여행은 혼자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냥 좋아서 하는 거라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잡다하게 많으니 제대로 하는 건 없답니다.


사진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파리에 가면서 꼭 가고 싶었던 곳 중 한 곳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1908-2004 프랑스) 파운데이션과 유럽 사진 미술관입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파운데이션은 브레송과 마틴 프랑크의 작품을 보존 및 전시하고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설립된 파리의 미술관이자 비영리 단체입니다.

브레송은 프랑스의 예술가이며 인문주의 사진작가로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길거리 사진을 개척했습니다.

그곳은 마침 생 마르탱 운하에서 멀지 않아 걸어갔습니다.




Henri Cartier-Bresson,  Behind The Gare Saint-Lazare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머리와 눈과 마음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삶의 방식입니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베로 드와노(Robert Doisneau, 1912-1994 프랑스)역시 브레송과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진작가입니다.

아마 이들의 이름은 생소해도 사진을 보면 어디선가 한 번쯤은 어디선가 보았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로베로 드와노 역시 1930년대부터 주로 파리의 거리를 사진에 담았고 인문주의 사진의 옹호자였으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함께 포토저널리즘의 선구자였습니다.




Robert-Doisneau, Cello-in-the-rain-Paris
Robert-Doisneau, Towing on the Champ-de-Mars Paris, 1943



드와노의 사진은 뭐니 뭐니 해도 '파리 시청 앞 광장의 키스'가 가장 유명할 겁니다.

이 사진은 포토저널리즘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 잡지 <Life>의 의뢰를 받아 촬영했는데요.

1950년 6월에 발행될 라이프지의 주제는 <봄, 파리의 사랑>이었습니다.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노련한 관찰이 필요합니다.

드와노는 렌즈로 포착할 완벽한 순간을 찾기 위해 도시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카페에 앉아 있던 그는 근처에 앉아있는 젊은 커플을 발견했지요.

그는 본능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서 500프랑(현재 가치로 1460유로에 해당)을 지불하고 사진 촬영을 제안했습니다.

그들은 실제 연인은 아니었고 연기를 공부하는 학생들이었습니다.

사랑에 빠진 두 젊은 남녀의 포옹은 비록 연출되었지만 마치 자발적인 것처럼 성공적으로 촬영이 되었지요.

드와노는 이 모델들의 신원을 알지 못한 채 수십 년이 흘러갔습니다.


1986년 라이프지는 그동안 방치되어 있던 이 낭만적인 사진을 포스터제작하여 판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수십 년간 잊혔던 '파리 시청 앞 광장의 키스'를 담은 포스터는 세계적으로 410,000 장이 판매되며 전설의 사진이 되었지요.

사람들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 오래된 사진에 열광했습니다.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사진에 공감하는 걸까요?

바로 행복한 순간의 상징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1992년 라베르뉴 부부는 그들이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이라고 주장하며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사진작가에게 50만 프랑을 요구했습니다.

그 부부뿐이 아닙니다.

프랑수아즈 델마르는 사진 속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며 100,000프랑을 요구했지요.

하지만 세 명의 원고는 파리 고등 법원에서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라 베르뉴 부부는 자신들이 원래 연인임을 입증하지 못했고, 프랑수아즈 델마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초상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이유였지요.


 

Robert Doisneau,  Kiss by the Hotel de Ville, 1950




그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에는 루스 오킨(Ruth Orkin 1921-1985)의 특별전시회를 하고 있었지요.

전시실로 들어가는 순간 눈을 뗄 수 없는 사진이 있었습니다.


1921년 보스턴에서 태어나고 할리우드에서 자란 루스 오킨은 10살 때 카메라를 선물 받아 친구들과 선생님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지요.

1938년, 17세였던 그녀는 1939년 열리는 세계 박람회를 보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까지 미국 전역을 횡단하는 자전거 여행을 떠났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녀는 4개월에 걸쳐 도시 풍경, 수많은 자화상, 자전거 프레임에 담긴 인상적인 구도 등 350장의 사진을 찍었고 그녀가 방문하는 도시의 지역 신문은 그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유명세를 탔습니다.

이번 전시회에는 이 모험에 관한 Ruth Orkin의 원고를 포함하여 약 40장의 사진과 보관 문서가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실에는 자전거를 프레임으로 한 사진들과 그녀가 여행하는 동안 입었던 원피스, 그리고 필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앙리 카르티에 재단
앙리 카르티에 재단 입구
루스 오킨의 여행 경로를 담은 지도




하지만 나의 관심은 전시실 한쪽 벽을 다 채우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인물들을 임의로 배치해 놓고 설정한 사진이지 결코 우연히 찍은 스냅숏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마치 영화 포스터처럼 완벽해 보였습니다.

사진의 중심에 숄을 어깨에 걸친 여주인공을 뺀 나머지 열다섯 명의 남성 엑스트라들의 시선은 한결 같이 여성을 향해 있습니다.

게다가 남성들의 표정이나 자세가 연출된 것처럼 완벽한데 너무나 자연스러웠지요.

물론 그러고도 남을 만큼 사진 속의 여인은 아름다웠습니다.

대체 이 사진은 어떻게 찍은 걸까?

계속 바라보며 생각해봐도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사진 위에 다른 사진 액자 다섯 개가 걸려있음(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 전시실)
원 사진, American Girl in Italy 1951




사진의 여인은 화가였던 니널리 크레이그(1927 미국 - 2018 캐나다).

그녀는 징크스 앨런으로도 불리는데 그것은 어린 시절 별명입니다.

1951년, 스물세 살의 크레이그(1927 미국 - 2018 캐나다)는 6개월간 유럽 여행을 떠났습니다.

당시 미국인 여성 혼자 유럽을 여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지요.

크레이그는 뉴욕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돈을 모았고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유럽을 여행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녀는 프랑스, 스페인, 영국을 방문한 후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 피렌체로 갔지요.

미국 잡지사 Life에서 사진작가로 일하던 오킨 역시 당시 피렌체에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조식을 포함한 호텔비가 1달러인 싸구려 호텔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젊은 미국 여인이 머나먼 유럽의 피렌체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겠어요.

여행에 대한 공통된 열정과 대화는 그들을 바로 친구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킨은 피렌체에 도착하기 전부터 혼자 여행하는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포토스토리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리고 크레이그는 여자로 혼자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진으로 보여주자는 오킨의 제안에 동의했지요.

그렇게 두 여인은 시장에서 쇼핑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거나 관광지를 여행하는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1951, 피렌체
1951, 피렌체
1951, 피렌체
1951, 피렌체
1951, 피렌체




당시 사진 중 가장 상징적인 사진이 바로 이탈리아의 미국 여성이라는 제목의 사진인데 오킨이 크레이그를 찍은 첫 번째 사진이었지요.


크레이그가 한 무리의 남자들의 추파를 받으며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하기 마련입니다.

크레이그가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바로 내가 궁금했던 바로 그것,즉 그 사진이 연출된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 질문에 89세의 크레이그의 대답은 '아니요'였습니다.


당시 23세인 크레이그는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보도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숄과 핸드백을 움켜쥐고 그들의 추파를 받지 않겠다는 듯 머리를 높이 치켜세우고 걸었다고 합니다.  워싱턴 포스트의 사진 평론가는 이사진을 보고 남자들이 가득한 거리를 미국 여성이 혼자서 걸으며 추파와 휘파람 소리를 견디며 걸어가고 있다고 묘사했습니다.

그러자 크레이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불행하거나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사진 속 그녀의 표정은 괴로워하는 게 아닙니다. 그순간 나는 피렌체의 거리를 걷고 있는 베아트리체였습니다. 나는 어쩌면 단테에게 발견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요.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어요. 그때 이탈리아에서 구입한, 지금은 오래돼서 끈적끈적해진 엽서(아르노 강을 따라 걷고 있는 베아트리체를 묘사한 헨리 홀리데이 그림)를 오늘날까지 보관하고 있는데 그것은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기억하게 해줍니다.'     


'사진가가 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루스 오





본인의 사진 앞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니널리 크레이그



여행을 하다 보면 기념품샵마다 빠지지 않고 있는 게 사진엽서입니다.

그 사진들은 전문 작가들이 찍은 작품이라 유심히 보는 편인데요.

어디서 어떻게 사진을 찍으면 좋은지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메라는 시간을 캐치하는 기계이고 사진은 멈춰진 시간입니다.

사진은 찍는 순간 느낌이 오지요.

여행을 하는 동안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던 곳은 인도와 쿠바였는데 아마도 강렬한 컬러와 사람들의 표정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장의 사진에서 한 장이라도 맘에 드는 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지요.

설사 맘에 드는 게 없다 해도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사물을 보는 시간은 늘 행복합니다.

그러면 된 겁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음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초상화 사진으로 유명한 유섭 카쉬(Yousurf Karsh,1908-2002)의 사진을 소개합니다.


"윈스턴 처칠의 초상화가 내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찍은 후에 그것이 중요한 사진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이 사진 역사상 가장 널리 재현된 이미지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는 거의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 유섭 카쉬




Winston Churchill, 1941
audrey-hepburn-1956
Albert Einstein, February 11, 1948
Glenn Gould, 1957
Grace Kelly 1956
Ernest Heming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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