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시나이아, 펠레슈 캐슬
가끔은 허송세월도 필요합니다.
몸의 휴식이 필요하듯이 생각의 벨트도 풀어놓아야 하니까요.
하루종일 뒹굴뒹굴하는 맛도 제법 쏠쏠합니다.
느지막이 우체국에 갑니다.
이제 막 글씨를 읽게 된 J에게 엽서를 보내려고 해요.
페리 수도원에서 마리아 수녀님께서 주셨던 엽서에 짧은 안부를 적었지요.
그야말로 옛날식으로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JW!'(JW는 나의 큰 손자입니다.)
우편엽서를 받는 것은 그 녀석의 여섯 살 인생 첫 경험이겠지요.
자신의 이름이 쓰여있고 다른 나라의 우표가 붙여진 작은 종이를 받는 기분이 어떨까요?
결혼식, 돌잔치, 부고까지 모바일로 주고받는 시대이다 보니 손 편지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나는 대체 누구에게서 몇 살 때 편지를 처음 받았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황동규의 시, '행복한 편지'가 생각납니다.
근처에 우체국이 제법 많은데 국제 우편을 취급하는 곳은 따로 있더군요.
숙소에서 약 2km, 걸어갈만합니다.
광장을 지나 직선으로 이어지는 보행자 전용거리에는 꽤 많은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죽 늘어서 있습니다.
전통의상을 입고 터키식 커피를 파는 수레도 보입니다.
우체국 안으로 들어가니 둥근 로비를 중심으로 가장자리에 몇 개의 창구가 있어요.
비어있는 창구로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한국으로 엽서를 보내고 싶다고 말하니 우표를 내어줍니다.
10 레이 우표에는 어떤 남자의 얼굴이, 3 레이 우표에는 아르니카 몬타나라는 노란 데이지 꽃그림이 프린트되어 있어요.
우리 돈으로 약 4,000원입니다.
남자의 사진옆에 '헨리 코안다'라는 익숙한 이름이 쓰여있는데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의 공항 이름이 바로 헨리 코안다입니다.
그는 루마니아의 유명한 발명가였다고 해요.
우표를 부친 후 엽서를 들이밀자 직원은 '우선순위'라는 글씨의 스티커를 붙여주었어요.
빨간 우체통에 집어넣는데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습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맥도널드에 들렀어요.
키오스크가 없고 종업원이 직접 주문을 받는데 제법 사람들이 많아서 줄을 서야 했습니다.
애플파이와 치킨 윙 몇 조각을 샀지요.
나 어렸을 때 퇴근하는 아버지가 호빵 몇 개 사들고 들어오시던 마음이 그랬을까요?
숙소에 있는 L이 좋아할 생각을 하니 그 또한 흐뭇합니다.
시나이아(Sinaia) 근처의 펠레슈 성(Peleș Castle)에 갑니다.
순정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를 아시나요?
공주님들과 백마 탄 왕자님들은 늘 아름답고 화려한 궁전에 살았지요.
성당과 박물관처럼 유럽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궁전입니다.
유럽의 각 성은 저마다 독특한 모양과 크기가 크게 다른데요.
대부분 9세기부터 16세기말까지 건축되었습니다.
유럽에 있는 성의 숫자는 확실하게 파악되지 않았지만 대략 15만 개 이상입니다.
그중에서 이탈리아가 45,000개로 가장 많고 프랑스가 40,000개, 아일랜드 30,000개, 독일이 25,000개, 영국 4,000개, 벨기에 3,000개, 스페인과 체코가 각각 2,000개입니다.
루마니아는 310개로 적지 않네요.
팔레스와 캐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팔레스(palas, 왕궁)는 왕족, 국가 원수 또는 교회 수장이 거주했으며 소유자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편안함과 우아함을 위해 설계됩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고 종종 금과 대리석 같은 사치스러운 재료로 마감합니다.
런던 중심부에 있는 버킹엄과 파리 인근의 베르사유가 궁전의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지요.
캐슬(Castle, 성)은 왕이 충성스러운 영주와 귀족에게 넓은 땅을 하사하여 지어졌는데요.
기본적으로 방어를 위해 지어지므로 언덕이나 전략적인 위치에 세웠습니다.
주로 돌과 같은 단순한 재료로 두꺼운 벽과 해자를 만들었습니다.
중세 영화를 보면 성에는 수많은 하인들이 등장합니다.
군주나 성주들의 가족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많을까요.
그들 세계에도 각각의 임무를 대표하는 수장들이 있는데요.
우선 영지를 관리하고 모든 하인을 통제하는 책임을 맡은 최고 수장인 집사(Seneschal)가 있고,
마부와 시종들을 담당하는 컨스터블(Constable),
군사, 무기, 기사들을 담당하는 마셜(Marshal),
방을 담당하는 시종관 체임벌린 (Chamberlain).
의류 및 복식에 해당하는 전체를 담당하는 옷장 담당 마스터(Master of the Wardrobe),
그 외에 요리사, 목수, 석공, 매사냥꾼, 음악가, 궁수, 정원사 등 수많은 직종의 하인들이 있었는데요.
성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50여 명, 보통 100명~150명이 소속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여 대중들에게 공개하여 투어를 할 수 있는 곳도 많지만 버려진 성도 많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성을 유지 관리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 때문입니다.
간혹 자녀가 없는 소유자가 부동산을 물려주지 않고 사망하며 버려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더 편안한 주택으로 대체되는 이유도 있고요.
버려진 성들은 리노베이션을 통하여 파티나 결혼식, 또는 이벤트나 콘서트 장소로 사용하기도 하고 호텔이나 게스트 숙박 시설로도 사용됩니다.
웹사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성의 가격을 살펴보면 약 25만 유로에서 500만 유로 이상으로 1,000개 이상의 성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시나이아의 펠레슈 성(Castelul Peleș)은 독일과 이탈리아 스타일을 결합한 네오 르네상스식 궁전입니다.
카롤왕이 왜 그곳에 반했는지 알 것 같은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카롤 1세(Carol I, 1839~1914)는 독일 남부의 지크마링겐에서 태어나 루마니아 왕국의 초대 왕이 되었는데요.
왕은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루마니아 왕족의 여름 휴양을 위해 짓도록 명령하여 지어졌습니다.(1873-1914)
너도밤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소나무, 낙엽송, 참나무 등 활엽송들의 갖가지 단풍으로 둘러싸인 펠레슈는 그동안 보아왔던 성들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목재가 건물 외부에 뼈대 형태로 드러나는 형식을 파크베르크(Fachwerk)라고 하는데요.
이러한 독일의 전통 목골 기법이 두드러지고 크기와 길이가 다른 첨탑이 가미되어 아름다움을 더했습니다.
그러니까 건축의 기본 틀은 독일의 레오 르네상스식, 벽화와 디테일한 실내 장식, 조각들은 이탈리아의 레오 르네상스 양식을 더해 만들어졌기에 다채로운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전날 하루 종일 쉬기도 했거니와 늦게 가면 주차 공간도 없고 줄 서서 기다릴 수도 있으니 일찍 출발했지요.
9시도 되기 전, 성 앞에 도착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단체 관광객들과 개별 여행자들이 성의 안뜰에 모여 서서 오픈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건물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아름다워 한참 바라보았지요.
펠레슈 성은 3층 건물에 160개의 방이 있는데요.
유럽에서 최초로 자체 발전기를 이용하여 전기로 된 조명등을 사용했고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앙난방 시설을 이용하였고 그때 만든 수세식 변기는 지금도 작동을 한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최첨단을 달렸던 성입니다.
가장 유명한 그레이트 아모리 룸(Great Armory Room)은 서유럽과 동유럽에서 수집하거나 선물로 받은 무기와 갑옷 컬렉션 4,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중 독특한 것은 샹들리에와 거울입니다.
다른 궁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아니라 채색 유리로 만든 것입니다.
투명한 꽃잎과 나뭇잎을 정교한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특히 수채화 같이 맑은 컬러가 무척 아름다웠지요.
그것은 바로 유리 공예로 유명한 베네치아 인근의 무라노섬에서 만든 것입니다.
배를 타고 아드리아해와 흑해를 건너와 육지에 도착해선 다시 마차에 옮겨 싣고 육로로 운반했는데 이동 시간은 얼마나 오래 걸렸으며 그렇게 커다란 유리 공예품을 어떻게 파손되지 않고 가져올 수 있었는지 미스터리합니다.
'피렌체 방'과' '터키 방'은 각각의 컬러가 특징이며 ‘영광의 홀(Hall of Glory)’ 천장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기능을 갖고 있어 낮에는 신선한 공기를 즐기고 날이 맑은 밤에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최첨단 시스템을 갖춘 궁전이기도 합니다.
크고 작은 그림들과 치밀하게 구성된 가구, 장식품들이 눈길을 끌었는데요.
컬러풀한 가구들과 장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깊고 중후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함과는 결이 달랐지요.
그것들은 고전 거장들의 컬렉션을 만들고자 했던 카롤 1세의 철저한 계획과 의도에서 수집된 것 것입니다.
그는 수집가이자 미술 전문가인 펠릭스 밤베르크(1820-1893)에게 의뢰하여 피렌체, 베니스, 로마에서 중요한 작품들을 사모았습니다.
카롤 왕의 컬렉션 214점 중 절반 이상이 이탈리아 회화라고 해요.
펠레슈성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펠리소르 성(Castelul Pelișor)이 있는데요.
이곳 역시 카롤 1세의 의뢰로 1899년~1902년에 지어졌는데 조카 페르디난트와 그의 부인 마리를 위한 궁전입니다.
카롤 1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4살에 세상을 떠났지요.
그 후 조카 페르디난트를 후계자로 낙점했습니다.
아르누보 양식으로 건축된 이 성의 디자인은 마리 여왕이 관여했는데 페인트 색상까지 하나하나 골랐다고 합니다.
겉모양은 펠레슈와 비슷하고 약간 작은 크기입니다.
티켓을 따로 구매해야 하고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들어가진 않았어요.
펠레슈 성 주변에는 비슷한 형태의 집들이 꽤 남아 있는데 대부분 레스토랑과 호텔로 운영합니다.
숲 속의 공주가 살았을법한 성이 바라다보이는 카페테라스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앉아있는 한가한 시간은 왕족이 부럽지 않았지요.
펠레슈 성뿐 아니라 시나이아 주변은 모두 카르파티아 산맥의 아름다운 지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숲과 나무들이 참으로 근사합니다.
부드러운 빛을 받으며 따뜻한 빛을 내뿜는 나무 이파리들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화려합니다.
노랗고 붉은 향기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은 사잇길을 달리는 시간이 아름다웠습니다.
바로 그런 사소한 순간이 행복이지요.
시나이아(sinaia)는 작은 마을이고 좁은 도로변에는 관광객들의 자동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어 빈자리가 없습니다.
천천히 움직이다 보니 프라이빗 주차장이 있는 레스토랑을 발견했는데 주차장 출입 차단기가 내려져 있었지요.
L이 차에서 내려서 요청을 했고 종업원은 리모컨으로 곧바로 차단기를 열어주어 간편하게 주차할 수 있었습니다.
레스토랑 가든에 설치된 이글루 스타일의 투명 텐트로 들어가니 따뜻합니다.
의자 위에 앉혀둔 곰 인형이 투명 비닐의 차가운 느낌을 상쇄시켜 주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처음 먹는 페퍼로니 피자도 고소하고 종업원들도 친절하여 만족도가 높았지요.
시나이아 카지노(Cazinoul Sinaia)는 시나이아의 드미트리 기카(Dimitrie Ghica:전 루마니아 총리) 공원 안에 있는데 이곳 역시 카롤 1세의 주도로 건설되었습니다.
1940년대 후반 공산주의가 집권한 이후 카지노의 영업은 중단되었고, 현재는 국제 콘퍼런스 센터로 운영된다고 해요.
벤치나 풀밭에서 자유롭게 와인을 마시고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도 일종의 허송세월을 보내는 중이겠지요.
언덕 위쪽으로 시나이아 수도원 표지판이 보였지만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숙소로 돌아가던 중 찾아간 치바(Chiba)는 상점도 식당도 인적도 없는 썰렁한 주택가 한쪽에 달랑 혼자 있는 카페입니다.
하루에 그곳을 찾아오는 손님이 열명도 안될 것 같아 보였지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너가 반갑게 인사합니다.
'어서 오세요. 처음 보는 손님인데 이 근처로 이사 오셨어요?'
'아니요, 우리는 여행자인데 구글보고 찾아왔어요.'
'오~ 그렇군요. 여기는 거의 동네 주민들만 오시는 곳이라 의아했습니다. 반갑습니다.'
바나나 케이크와 카푸치노, 그리고 은은한 팝송이 저 혼자 흘러갈 뿐 멋진 인테리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작은 축구장이 보이는 작은 도시의 동네 모퉁이입니다.
특별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편안합니다.
단순한 게 좋습니다.
일상은 그러하지 못한 때가 더 많지요.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요.
내가 들어있는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벗어나면 가볍습니다.
지나가는 한 줄 바람도 고맙습니다.
마음의 통로가 헐렁합니다.
조용하게 흘러가는 이 여행이 맘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