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 위의 선율, 사티의 그노시엔느

5. 아테네, 아크로 폴리스

by 전나무




그리스(Greece) —

부드러운 이름 아래 감춰진 신화와 돌, 빛과 폐허, 신과 인간의 이야기들.

그곳은 여행지라기 보다 일종의 마주침?

마음과 자세가 준비되지 않으면 어쩐지 예가 아닌 것 같고 그저 관광하듯 스쳐가기엔 오래된 숨결에게 미안할 것만 같습니다.


그곳에 대해 조금 더 알아야 한다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나를 오랫동안 그리스의 문턱에 멈춰 서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마침내.

준비가 아닌, 그리움이라는 이유로 그리스에 왔습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도 될 것 같아서죠.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의 비문
의술의 신전, 아스클레피온


아크로폴리스, 이름은 익숙하지만 선뜻 마음을 들이지 못하는 곳.

나는 그 돌 언덕 위에서 지식의 껍질을 벗은 시간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시작은 디오니소스 극장(theatre de dionysos)이었지요.

천여 명의 관객이 반원형 객석에 앉아 고대의 비극을 보았던 자리.

그들에게 연극은 예술이 아니라 신과 인간 사이를 잇는 의식이었을 겁니다.

돌로 만든 의자에는 각각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관중석을 바라보며 눈을 감으니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비명 같은 대사가 들려옵니다.

비극은 끝났고 신도 떠났지만 그들의 슬픔은 아직도 이 바람 속에 남아 떠돌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디오니소스 극장
디오니소스 극장
디오니소스 극장


돌계단을 오르면, 현관문처럼 서 있는 프로필라이아(Propylaea)가 나타납니다.

지금은 누구나 지나갈 수 있지만 한때 이 문은 오직 선택받은 자만이 넘을 수 있는 성역의 경계였지요.

나는 거기서 무언가를 잃고 또 무언가를 얻는 기분이었습니다.

일상을 산 아래 낮은 세상에 남겨둔 듯, 마음은 점점 고요해지더군요.



프로필라이아
프로필라이아


드디어 파르테논(Parthenon)신전입니다.

기둥은 부서졌고, 지붕은 헤아릴 수 없는 시간 이전에 이미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폐허의 한복판에서 비로소 '완전함'이 무엇인지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건축의 균형과 수학적 정교함이 아닌, 지켜내려는 의지와 시간 앞의 겸허함이 이 신전을 진짜 신전으로 만든 것이지요.

아마도 그래서 파르테논 신전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을 표시하는 로고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을 모티브로 한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로고



길 옆으로 돌아 나가면, 작고 단정한 니케 신전(Naos tis Athinas Nikis)이 있습니다.

크기가 작은 탓에 승리보다는 상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기록되지 못한 죽음들, 알려지지 않은 이름들, 그들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승리.

그래서 신전은 작고 조용하고 슬펐습니다.



니케 신전


그리고 여인의 형상을 한 기둥들, 에레크테이온(Erechtheion)의 캐리아티드(caryatid,여인상으로 된 돌기둥).

나는 그 앞에서 오랜 시간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여섯 명의 여인들은 울지도 외치지도 않은 채 천 년이 넘는 세월의 무게를 머리 위에 이고 당당하고 묵묵히 서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어떤 책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었지요.

무너짐 없이 서 있는 여성성, 그리고 아름다움이 감내한 고통 말입니다.



에레크테이온
캐리아티드


언덕 아래, 하드리아누스 도서관(Hadrian's Library)의 기둥만 남은 폐허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식이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 남는 것이 아닐까?'

책은 사라졌지만 앎의 흔적은 기둥과 기둥 사이, 그리고 바람 속에 남아 있을테니까요.



하드리아누스 도서관(플라카 지구를 지나다가 스마트 폰 촬영)


아크로폴리스는 우리에게 역사를 가르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말없이 서 있지요.

눈앞에 있으되 멀고,

무너지되 고요하며,

사라졌으되 남아 있는 시간.

나는 이곳에서 고대와 현대, 신과 인간, 아름다움과 덧없음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존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건 지식이 아닙니다.

경험이고 감정이며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조용한 마음이지요.

돌 위에 새겨진 시간이 말을 걸어올 때, 그건 책으로도 해설로도 들을 수 없는 언어였습니다.

나는 그 언어와 침묵을 온몸으로 들었습니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


문득 에릭 사티의 그노시엔느가 떠오랐습니다.

사실 그노시엔느(Gnossienne)의 의미는 그리스 신화의 그노소스(Knossos)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궁 속에서 길을 찾는 듯한 신비롭고 반복적인 음악의 흐름과도 잘 어울립니다.

또는 그리스어 그노시스 (gnosis, 지식 혹은 직관적 지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영적이고 내면적인 깨달음을 뜻하는 말이죠.


사티는 전통적인 형식이나 제목에서 벗어난 이름을 붙이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노시엔느는 특정 형식, 예를 들어 소나타나 발라드에 속하지 않는 그냥 단순히 음악을 위한 독자적인 명칭입니다.

즉, "그노시엔느"는 정해진 뜻이 있는 단어가 아니라, 사티가 그의 음악 세계에 어울리는 신비롭고도 철학적인 감성을 담아 창조한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떤 내면의 풍경이나 꿈속의 미로 같은 세계가 펼쳐지는 느낌이 들죠.


사티의 음악은 비어있으나 공허하지 않고 차분하나 지루하지 않습니다.

그게 이곳에서 그의 음악을 떠올리게 된 이유입니다.

그의 그노시엔느나 짐노페디를 듣다 보면 음 사이의 침묵마저 의미를 가지는 듯하죠.

마치 음악이 아니라 공간을 들려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연기와 스팀의 흐릿한 윤곽 속에 멈추지 않는 생동감이 느껴지는 모네의 <생 라자르역>이나, 우산 아래 고요한 움직임과 차가운 돌바닥에 반사되는 빛이 사티의 느린 음표처럼 도시의 숨결을 고요히 건드리는 카유보트의 <비오는 파리> 같은 그림들도 떠오릅니다.


돌은 기억합니다.

그 위를 수천 년간 누가 지나갔는지, 무슨 말을 했고, 무엇을 두고 다투었는지를.

나는 지금 그 돌을 밟고 서 있습니다.


이 도시엔 신들이 살았습니다.

올림포스의 그림자 아래, 인간의 질서를 시험하던 신들.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수호하고, 그 이름이 도시가 된 그곳.

그러나 이곳에서 진짜 위대한 것은 신이 아닌 인간이 처음으로 스스로의 삶을 묻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아고라.

그 단어는 낮고 둥근 햇살처럼 느껴집니다.

아테네 시민들이 모여, 말하고, 논쟁하고, 결정하던 곳.

신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으로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그 자리.

돌 위에 새겨진 그들의 발자국 사이로 나는 오늘을 걷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낡은 시간 속에 살았지만, 더 먼 미래를 상상할 줄 알았는지도 모르지요.

신들이 떠난 도시에서 인간의 시간을 찾아 떠난 한 나절의 산책, 하늘 빛도 무너진 지붕과 기둥을 닮았습니다.

시간은 무너졌지만 질문은 여전히 서 있는 곳,

여기는 아크로 폴리스입니다.



아고라 내에 있는 헤파이스토스 신전(아크로 폴리스에서 원거리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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