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테네 노포, 조르바의 춤
여행의 기억은 다른 천을 한 장씩 이어 만든 조각보처럼 다채롭습니다.
이 글은 아테네에서 주운 작은 감정들의 조각보입니다.
보라색꽃 자카란다가 즐비한 아테네의 주택가 '네아 스미르니'는 중심가에서 4km쯤 떨어진 작은 오아시스 같은 동네입니다.
광장과 카페, 레스토랑 및 상점이 많아 동네 산책을 여러 번 나갔지요.
정육점에서 양갈비도 사고,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이것저것 소소한 쇼핑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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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후, 길을 걷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범상치 않은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홀린 듯 그쪽으로 향했지요.
어깨엔 기타가 다정히 걸쳐 있고, 두 남자의 목소리가 공기처럼 흘러나오고 있었지요.
담백하고 솔직한 음색이었습니다.
꾸밈도 과장도 없이 담백하여 어쩐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편안한 소리.
그들의 목소리는 음악이라기보다 '마음'에 가까웠어요.
그냥 친구의 등에 기대서 언제까지라도 계속 듣고 싶은 저음은 화려한 기교도 주목받으려는 욕심도 없었습니다.
그저 진심 한 줌을 꺼내어 기타 위에 조심스레 얹은 그런 것이었지요.
"어디서 들어본 노래 같아."
마음 깊은 곳을 슬며시 두드리는 멜로디가 어딘가 익숙합니다.
그들이 부른 노래 중 한 곡은
"De se kitao sta matia" — 너의 눈을 바라보지 않아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나는 노래 제목처럼 그들을 정면에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그 순간의 조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지요.
그저 옆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으니까요.
눈을 보지 않아도 닿을 수 있는 진심이 있다는 것을 믿고 싶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체크무늬 셔츠와 청바지,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은 한 사람,
베이지 셔츠에 카키색 바지, 검정 운동화를 신은 또 한 사람.
그들의 뒤에는 낡은 백팩과 기타 케이스, 그리고 작은 스피커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진심 같은 노래가 잔잔하게 퍼지고 있었지요.
우리는 말을 아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의 시점에서 조용히 동전을 넣었습니다.
마치 악보의 쉼표처럼요.
한 곡만 더 듣고 가자고 몇 번을 다짐했지만 다른 노래가 시작될 때마다 다시 머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물이 맺힐 만큼 행복했거든요.
그 노래들은 공기와 햇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미소와 함께 작은 기적처럼 가슴 안에 스며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그리스의 해바라기(이주호와 유익종의 포크 듀오)'라 불렀습니다.
한때 우리의 감성을 물들였던 해바라기 듀엣처럼, 이들도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니까요.
그들의 목소리에는 그리스 바람의 온기와 삶을 한껏 껴안은 사람만이 낼 수 있는 평온한 저음이 있었고,
기타 줄 위를 미끄러지는 손끝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제 그 장면은 아테네에서 만난 가장 따뜻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여행은 늘 낯선 풍경이 아니라 그 안에서 만난 사람의 울림으로 완성되기도 하더군요.
그 순간 작은 길모퉁이는 지붕 없는 극장이었고 노래 하나하나가 모든 풍경을 채워주었습니다.
***
플라카 지구를 둘러보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음식점을 검색했습니다.
리뷰가 무려 5만 5천 개, 평점 4.7의 음식점 'Aspro Alogo(영어로 white horse)'를 선택했지요.
간판은 태양빛에 탈색되어 있었으며, 탁자와 의자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삐그덕거렸습니다.
테이블과 의자 등받이는 옆 손님들과 거의 맞닿아 있고 어딜 보나 믿기 힘들 만큼 허름하고 작은 음식점.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낡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고 있는 모습이었죠.
아테네의 유명한 노포임이 틀림없습니다.
메뉴판은 마치 주인의 주머니 속에서 오랫동안 구겨져 있던 것처럼 꼬깃꼬깃하고 얼룩이 묻어있고 표지에는 상호를 설명하듯 백마 한 마리가 해변을 달리는 사진이 담겨있습니다.
그릭 샐러드의 큼직한 토마토와 두부처럼 넓적한 페타 치즈,
갓 구운 피타 빵,
불맛이 은은하게 배인 문어 구이,
차지키 소스에 찍어 먹는 수블라키.
그것은 단순한 요리 그 이상이었습니다.
기름지고 화려한 맛 대신, 햇살 아래에서 자란 재료들이 주는 건강한 풍미가 입안 가득 담백하게 퍼졌고 그 어떤 레스토랑보다 정직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조율하듯 그곳을 지키고 있는 주인 '마크',
제법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손은 번개처럼 빠르고 말투는 유쾌했으며, 눈빛에는 장사꾼이라기보다 친근한 정이 있었죠.
그 식당은 세월에 많이 닳아 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공간이었습니다.
게다가 식사를 마친 손님들에게 생수 한 병씩을 서비스로 나눠주었습니다.
단 하나, 주방만은 들여다보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속마음이었죠.
식사를 마치고 근처 오래된 빵집 72H로 향했습니다,
반죽을 72시간 동안 숙성시킨다는 그곳에는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그득하여 맘이 두근두근하였지요.
깜파뉴와 시나몬 롤 등 몇 개를 구입했습니다.
내일 아침, 오븐에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따뜻하게 구워질 걸 생각하니 벌써 흐뭇합니다.
길 건너편의 마리아 칼라스 뮤지엄에 잠시 들러 디바의 숨결을 느꼈지요.
칼라스는 그리스계 미국인으로 태어나, 20세기 최고의 디바로 불립니다.
그녀와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세계적 해운왕)와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칼라스의 삶을 드라마처럼 만들었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마리아, 2024>는 이 비화를 조용하고도 섬세하게 조명합니다.
칼라스의 삶은 고결하지만 약간 거친 그녀의 목소리와도 닮아 있지요.
오페라 무대 위의 신, 여왕, 때로는 성녀처럼 고결한 목소리를 가진 여자 칼라스와 그리스가 낳은 억만장자, 해운왕, 국제 사교계의 중심에 있던 오나시스는 1957년, 베니스에서 열린 고급 요트 파티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칼라스는 유부녀였고, 오나시스도 결혼한 상태였지만 이 두 그리스인의 만남은 불꽃이 일어난 듯 강렬했지요.
오나시스는 칼라스를 유혹했고 칼라스 역시 그를 사랑했습니다.
오페라보다 더 극적인 그들의 관계는 세상 모든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칼라스는 점점 무대보다 그의 곁에 머물기를 선택했지요.
그녀는 사랑을 위해 목소리를, 아니 세계적인 커리어를 내려놓을 준비를 했지만 오나시스는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했습니다.
칼라스는 그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그 후로도 오나시스를 완전히 잊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지만, 여전히 사랑해요."
마치 아리아처럼 울리는 이 문장은 그녀의 후반 생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오나시스가 심장마비를 일으킨 후 간병을 위해 다시 그의 곁에 돌아가기까지 했습니다.
사랑은 아픔도 끝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파리의 묘지, 뉴욕의 무대, 아테네의 바람 속에 흩날리고 있습니다.
플리마켓을 구경하고 중심가로 향하던 길목에 흥겨운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식당 앞에서 남녀 대여섯 명이 어깨에 팔을 두르고 그릭 댄스를 추고 있었죠.
신발이 아스팔트를 스치며 들리는 리듬, 가볍게 들썩이는 웃음들, 힘을 뺀 어깨지만 절도 있던 남자의 춤사위...
그 모든 것들은 히랍인 조르바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여행의 맛입니다.
조르바의 춤은 그리스의 전통적인 조르바 춤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 춤은 자유, 정열, 인간의 격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며 영화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입니다.
조르바(앤서니 퀸)가 춤을 출 때 그는 삶의 기쁨과 자유를 몸으로 표현하며, 그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조르바의 춤은 단순한 동작의 반복과 리듬을 통해 구속되지 않는 삶의 표현을 드러냅니다.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춤을 추는 장면에 사용된 음악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 1925-2021)가 작곡한 것으로 그리스 전통 음악의 요소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한 곡입니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마치 그리스 자체라고 할만한 작곡가로 민속의 정서와 현대적 감성, 저항과 그리움, 그리고 지중해의 빛과 그림자를 품고 있어요.
역시 그가 만든 곡, '기차는 8시에 떠나고(To Treno Fevgi Stis Okto)’는 특히 애틋하여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그 노래의 배경인 카테리니(Katerini)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요.
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므로 순전히 개인의 취향인 곳을 선택하는 건 옳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가보지 못한 장소인데도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가슴 한편이 저릿한 이유는 아쉬움 때문이겠지요?
그 노래, '기차는 8시에 떠나고'를 부른 세계적인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 1944~ )' 역시 그리스인입니다.
아주 작은 교회가 보입니다.
언뜻 보아도 수백 년은 훌쩍 지났을법한 그곳은 작아도 아주 야무져 보였지요.
알고 보니 아테네에서 가장 오래된 '파나기아 카프니카레아 교회'로 11세가 중반에 지어진 걸로 추정한답니다.
이 어르신 교회는 천 년 동안 누군가의 기도와 발걸음을 묵묵히 받아냈을 테지요.
마치 도심 한가운데 핀 오래된 꽃처럼 부서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존재만으로 단단한 위로가 되는 그런 곳 말입니다.
교회에서 나오니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렸지요.
겉보기엔 남미 사람들로 보이나 이태리 노래를 부르는 3인조 버스커들이었습니다.
개구쟁이처럼 볼캡을 거꾸로 쓴 작달막한 남자가 모여든 구경꾼들 앞에서 가볍게 스텝을 밞으며 춤사위를 펼치더군요.
흥겨운 노래 '차오 벨라'가 시작되고 한 여인이 덩달아 몸을 흔들며 춤판에 끼어들었습니다.
즉흥적이지만 자유로운 그 몸짓은 그리스를 사랑하게 만드는 풍경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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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다 보니 한쪽에 익숙한 실루엣이 둠칫거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내 친구 J였지요.
여늬 때와 마찬가지로 웃음을 참아가며 친구의 춤사위를 동영상으로 담습니다.
어떤 버스커 앞에서도 음악의 종류와 상관없이 리듬 맞추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그녀.
한 손에는 바람, 양쪽 발에는 리듬, 표정에는 순정만화 속의 소녀 같은 미소가 한가득, 누가 보면 그냥 세상 태평한 흥부자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경쾌한 리듬 뒤에는 90을 훌쩍 넘긴 시모님과의 숨바꼭질 같은 일상이 있답니다.
하루를 살면서 두 번, 세 번, 아니 열두 번쯤은 '며느리 모드'로 변신해야 하는 삶.
그럼에도 친구는 여행지 길거리든, 숙소에서든, 음악만 들려오면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춥니다.
어쩌면 그 춤은 단순한 흥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작고 유쾌한 저항일지도 모르죠.
버스커 앞에서 잠시나마 며느리 타이틀을 내려놓고, '그냥 나'로 두둠칫 하는 친구가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찡했습니다.
이토록 자유롭고 가벼우면서도 깊은 감각들을 느끼며 신타그마 광장에 도착했을 때, 이 도시 전체가 한 편의 무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막이 내려지진 않았습니다.
지금도 아테네의 어디선가 누군가의 노래와 춤이 계속될 테니까요.
우리의 인생은 때론 물들고, 찢긴 상처를 꿰매며 살아갑니다.
여행은 바로 그때 필요한 바늘 같은 게 아닐까요?
유적보다 더 빛났던 아테네의 조각들을 잇는 시간도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