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라스트 콜

16. 카오스 같던 아테네공항

by 전나무




part 1.


이럴 줄 몰랐다.

아니, 사실… 이럴 줄 알았다.

아침 8시 25분, 산토리니를 떠나는 비행기를 탔다.

9시 20분 아테네 도착.

그런데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는 마치 '오늘 하루 쉽니다' 표정이고 시간은 미친 듯 흘러갔다.

1분이 아까운 상황에서 내 캐리어는 거의 폐점 직전에 덜그럭거리며 굴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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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미션은 명확했다.

친구들은 오후 2시 비행기로 서울로, 나는 11시 이지젯을 타고 밀라노로 간다.

온라인 체크인은 완료, 하지만 수하물은 다시 부쳐야 하는 상황이다.

아테네 공항은 각국 저가 항공사들의 카운터로 꽉 찼고, 내 비행기 백드롭 마감은 10시 20분, 파이널 콜은 10시 30분.

그때가 정확히 10시 10분.


LJ가 내 옆을 지키고 서있다.

‘이러다 진짜 비행기 놓치겠다.’

그때, 안내 방송이 들렸다.

너무나 또렷하게...


"밀라노 가는 승객 ***님, 계십니까?"


우린 번개처럼 손을 들었다.

사람들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그러나 그따윈 상관없다.


"빨리 앞으로 나오세요."


순간, 줄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사람들이 차례로 벨트를 착착 들어 올려 길을 열어준 것이다.

나는 구급차 지나가듯 멈춤 없이 전진할 수 있었다.

공항판 '라스트 콜의 기적'이었다.

수하물 탑재 성공!

하지만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다.



Part 2.


수하물을 부치고 친구들과 짧은 포옹.

눈물은 차치하고, 게이트 C17로 전력질주할 시간이다.

그런데 50미터쯤 갔을까?

핸드폰이 없다는 걸 알았다.


'설마…'


진짜.

없다.

수하물 부칠 때 모바일 탑승권을 보여주느라 직원에게 건네주었던 기억이 아찔하게 되살아났다.

여권만 챙기고 폰은 놓고 온 것이 분명하다.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다.

이번엔 반대 방향으로 전력질주.

카운터가 어디였는지도 가물가물하다.

두리번거리다 발견!

한쪽 구석에 살포시 놓인 내 스마트폰.

그 와중에 감사 멘트는 잊지 않았다.


이제 진짜 빠르게 게이트로 가야 한다.

문제는… 나는 달리기를 정말 못한다.

헉헉대며 달리는데, 계속 'C →'만 보이고 게이트는 안 나온다.

1km쯤 뛰었을까.

드디어 C구역 입성.

그런데 이번엔 보안검색대의 난관이 기다린다.


"제발 도와주세요, 밀라노행 비행기 타야 해요!"


내 몰골이 딱했는지, 직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패스트트랙 벨트를 풀어줬다.

이번에도 빠르게 통과.

이제 진짜 17번 게이트만 남았다.

모퉁이를 돌자, 반짝이는 숫자 17이 보였다.

다행히 탑승구는 아직 열려있었다.

그렇게 기적처럼 나는 마지막 탑승자가 되었다.

좌석에 털썩 앉자마자 문이 닫히고, 비행기는 출발했다.

어딜 가나 언제든 여유롭게 움직이던 나도 이런 날이 있구나.

영화 찍었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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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art 3


다리는 후들거리고 입은 바싹바싹 말랐다.

물 한 모금 마시고 그대로 기절.

기내 판매 카트에서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산토리니에서 받은 에게안 항공 에너지바와 함께 그야말로 에너지 충전하니,

달달한 당이 온몸에 퍼지며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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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말펜사 공항 도착.

딱 1년 만이다.

이번엔 내 수하물이 제일 먼저 나왔다.

마지막에 실었으니 당연하다.


이제 렌터카를 찾으러 가야 한다.

문제는, 나는 터미널 2에 도착했고 렌터카는 터미널 1에 있으니 그곳으로 이동할 일이 남았다.

기온은 무려 31도.

길을 나서기 전에 준비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선 새벽에 나오느라 걸쳐 입었던 셔츠를 벗어 배낭에 넣고 물 한 병을 샀다.

그리고 셔틀버스를 타고 터미널 1로 이동.

이태리 카렌트 사무실로 찾아가 계약서 작성 후 주차장으로 향했다.



계약은 폭스바겐 T-Roc으로 했는데 배정받은 차는 폭스바겐 Taigo.

렌터카는 늘 풀 커버 보험에 가입하지만 렌터카 회사마다 차를 인계인수하는 방법이 모두 다르다.

이곳 Italy Car rent는 외관 확인? 그런 거 없다.

그냥 키만 건네줄 뿐, 그걸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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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9일 동안 나의 동반자가 되어줄 차와 친해질 시간이다.

총 주행 거리는 9만, 기어, 오토 라이트, 주유구, 비상등, 에어컨 등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안드로이드 오토의 USB 포트가 A to C가 아니다.

얼핏 보기에 C to C로 보인다.


스마트폰 거치대도 없고 햇살은 작렬하여 폰의 구글맵 화면이 잘 보일까 싶다.

결국, 가죽 기어 커버에 폰을 끼우고 물병으로 고정하는 방법을 택했다.

밀라노 도착 2시간 만에 겨우 공항을 출발했다.

이건 무슨 생존 게임도 아니고...

그래도 그 상황이 즐거운 나, 진짜 여행을 좋아하긴 하나보다.


Part 4.


공항을 벗어나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행 가능 거리 660km.

출발할 때도 그랬는데 거의 70km를 달려왔는데도 그대로 660km다.

연료 게이지의 하얀 점선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똑같다.


‘분명히 연료가 꽉 차있다고 했는데, 혹시 고장인가? 연료가 없는데 나만 모르는 거 아냐?’


불안하다.

이럴 땐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한다.

도움은 타이밍이다.

가장 가까운 주유소로 진입했다.


트렁크를 뒤적이는 현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주 공손하게, 그리고 상냥하게...


"실례합니다, 저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되고 말고요, 무슨 일이신가요?”


계기판을 본 그는 자신 있게 말한다.

"기름이 없네요. 주유하셔야 해요.

기름이 들어있으면 이 하얀 선에 불이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지금 불이 모두 꺼져 있죠?"


당장 주유기로 이동하여 셀프 주유를 시작했다.

그런데 또 이건 무슨 일인가?

호스를 꽂자마자, 약 10초 만에 멈추더니 더 이상 안 들어간다.

그때 유니폼 입은 직원을 발견했다.


"기름이 안 들어가요."


직원이 직접 해봐도 마찬가지다.


"탱크가 꽉 찼네요."

"네?"


아까 그 남자, 진단은 완전 틀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름이 꽉 차있다니 다행이다.

10유로도 안 되는 주유비를 결제하고 다시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들어서자, 드디어 이탈리아의 찐 풍경이 펼쳐진다.

넓은 들판, 동그란 나무 두 그루, 빨간 기와지붕이 드문드문 보인다.


"바로 이거지, 이탈리아가 진짜지."


언제 그리스에 갔었냐며 그새 까맣게 잊어버리고 이태리의 익숙한 풍경에 푹 빠져 버렸다.

속도를 줄였다.

여기도 예쁘잖아. 저기도 예쁜데?

지나치는 작은 마을들이 눈을 뗄 수가 없이 아름답다.


드디어 가르다 호수의 인근 작은 마을, 마네르바 델 가르다에 있는 숙소 마당에 도착.

산토리니를 떠난 지 정확히 11시간 만이다.

이제야 안도의 숨이 쉬어진다.

실비아의 집은 말로는 부족하다.

창문을 열자 오른쪽엔 가르다 호수, 왼쪽엔 겹겹이 산 능선이 보상처럼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때, 몸이 보내온 다급한 신호.


"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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