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이아의 나흘
아쉬움도 풍경이 된다.
꼭 가보고 싶었던 그 서점은, 이제 이아 마을에 없다.
여행은 늘 그렇다.
닿지 못한 풍경이 오래 남고, 못 들어간 문 하나가 내 마음을 오래 붙잡는다.
산토리니 이아 마을의 절벽 위, 푸른 돔과 하얀 집들 사이의 작은 서점 하나.
아틀란티스 북스(Atlantis Books).
전설처럼 가라앉은 도시의 이름을 품은 신화 같은 책방이다.
2004년, 두 명의 문학청년이 산토리니를 여행하다가 책을 살 곳이 없다는 이유로 직접 차린 서점.
하지만 19년 동안 이아를 지키던 섬의 유일한 책방은 몇 개월 전에 피라(Fira)의 피로스테파니(Firostefani)로 이전한 후였다.
오너인 크레이그 월저는 이렇게 말한다.
"제 가장 큰 경쟁 상대는 산토리니의 아름다움입니다.
그 경치를 즐기는 사람을 설득해서 책을 읽게 하는 건 쉽지 않죠.
아틀란티스 북스에서 20년을 보냈지만, 저는 여전히 독서를 좋아해요.
마치 어부에게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물고기 냄새를 맡고 싶냐고 묻는 것과 같아요.
저는 여전히 물고기 냄새를 맡고 싶어요."
친구가 물었다.
'피라에 갈 거야?, 아틀란티스에 가고 싶어 했잖아.'
'이아에 있으면 가보려고 했는데, 피라까지는 굳이...'
피라(Fira) 앞바다엔 매일매일 다른 색깔의 크루즈들이 그림처럼 떠있다.
크루즈 승객들은 테더 보트에 옮겨 타고 스칼라 항구(Old Port, 스칼라 항구)에 도착한다.
그리고 케이블카나 당나귀를 타고, 또는 600개의 계단을 걸어서 피라 마을에 오른다.
그들이 산토리니에서 주어지는 시간은 고작 6~8시간, 길어도 12시간이다.
칼데라 절벽의 숨결도, 피니키아 골목의 새벽도, 노을이 식탁 위에 스르륵 드리우는 저녁의 고요도 느낄 수 없다.
크루즈의 승객들은 스냅숏을 찍듯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잠깐 포즈를 취하고 제일 유명한 장소, 제일 빠른 동선을 찾아 한 장의 엽서만 남긴 채 돌아가야 하는 게 크루즈 여행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골목이 눈을 뜨고, 바다가 말을 걸고, 하루의 끝에서 달빛이 숨을 고르는 걸 지켜본다.
슬로비디오 같은 이 시간, 부러울 게 없다.
크루즈 여행이 꿈인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다르다.
'크루즈 여행, 굳이...'
욕실에서 양말에 비누칠을 하던 순간.
마치 섬이 한숨을 쉬듯 쿠궁하는 소리가 들렸다.
창밖 햇살은 평온했고 정오의 바람은 커튼을 흔들지 않았다.
잠결에 몸을 일으킨 친구가 말했다.
'방금, 침대가 흔들렸어. 지진 아니야?'
다른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느낌.'
'살짝 출렁였어.'
나는 젖은 양말을 놓고 구글에 ‘산토리니 지진’을 검색했다.
화면 위로 뜨는 익숙한 문장.
'산토리니에서 방금 지진이 감지되었습니다. 진동을 느꼈나요?'
나는 '예'를 눌렀다.
EMSC(유럽지중해지진센터)에서 실시간으로 감지한 지진 발생 직후, 구글 검색이나 안드로이드 알림 창을 통해 사용자 반응을 수집하는 기능이다.
2년 전, 시칠리아의 에트나 화산에 올랐었다.
그날 산은 구름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마치 눈을 감고 걷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커멓고 울퉁불퉁한 바닥만이 그곳이 화산재가 굳어진 땅임을 증명해 주었다.
하늘도 땅도 허공 같았던 그 순간, 거짓말처럼 몇 초간 구름이 갈라지고 화산 아래 풍경이 나타났다.
화산이 품고 있는 세상을 잠깐 열었다가 조용히 닫은 것이다.
며칠 뒤, 로마에서 에트나 화산이 분화했다는 속보를 들었다.
화산재로 시라쿠사 공항이 폐쇄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내가 머물렀던 그 땅은 며칠 사이 스스로를 다시 한번 뒤집은 것이다.
그때 나는 알았다.
화산은 언제나 우리보다 몇 걸음 먼저 깨어 있는 존재라는 걸.
우리는 잠깐 스쳐가는 여행자이고, 그들은 수천 년간 꿈틀거려온 대지의 기억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산토리니에 있다.
이곳 역시 오래전 거대한 분화로 반쪽이 무너진 화산섬.
하늘은 맑고 바다는 깊지만 언젠가 또 한 번 그 숨결이 이 섬을 흔들지도 모른다.
그 짧고 은밀한 땅의 맥박으로 인해 우리가 살아 있는 존재라는 징후로 느꼈을 뿐.
'굳이~, 불안은 없었다.'
산토리니를, 아니 그리스를 상징하는 화이트와 블루.
이 두 색이 어우러진 이유는 단순히 미학적 선택이 아닌, 그리스의 역사와 환경, 문화적 정서가 스며든 결과이다.
왜 화이트와 블루인가?
그리스의 햇빛은 강렬하다.
건물 외벽을 흰색으로 칠하면 햇빛을 반사해 실내 온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1930년대, 위생 문제로 흰색 석회(라임)를 쓰도록 권장되면서 널리 퍼졌다.
블루는 전통적으로 악귀를 쫓는 색으로 여겨졌고, 그리스 국기에도 쓰이는 색이다.
산토리니의 푸른 지붕은 이 섬을 감싸는 에게해의 색을 닮았다.
흰 벽과 푸른 돔은 곧 그리스의 하늘과 바다를 담아낸 풍경이다.
화이트는 이 섬의 순결한 침묵이고, 블루는 그 위에 적힌 가장 맑은 말 한마디다.
그러나 이아 마을의 속살은 다양한 컬러로 가득했다.
골목마다 칠해진 진노랑, 핑크, 자주는 이렇게 말한다.
'굳이, 속옷까지 화이트일 필요는 없잖아'
이아 마을 절벽 아래의 작은 항구 아모우디 베이(Amoudi Bay)에는 작은 레스토랑들과 다이빙 포인트, 그리고 선착장이 있다.
당나귀들이 매일 아침 사람들을 태우고 올라오는 곳이다.
피라로 가는 로컬 버스가 골목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타지 않았다.
레드, 블랙, 화이트—이름만으로도 유혹적인 해변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지만,
우리는 나흘 동안 한 번도 다른 길로 들어가지 않고 오직 이 마을에 머물렀다
이곳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더 보러 가는 대신 이미 내 앞에 있는 풍경을 더 오래 보고 싶었다.
머무름이 곧 여행이 되는 시간.
눈에 익어가는 풍경이 조금씩 마음속에 들어앉을 때까지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건 여유를 즐기는 우리의 선택이다.
산토리니에서 며칠을 지내면서 떠오르는 그림이 있었다.
로렌스 알마 타데마(Lawrence Alma-Tadema)의 'Summer' (여름).
그 섬에는 유난히도 긴 드레스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여인들이 많았다.
아름다운 풍광과 어울리는 착장으로 인생 샷을 건지려는 여인들의 마음이려니 싶다.
그 여인들을 보면서 연상된 그림일 수도 있다.
햇살이 벽을 더 하얗게 만든다.
푸른 창문이 반사하는 하늘의 빛은, 바다보다 짙다.
산토리니의 거리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바람은 가볍고, 그늘은 드물고, 심장은 천천히 뛴다.
그림 속 여인은 말이 없다.
알마 타데마가 그린 여름 속의 그녀는 바다를 보며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
등 뒤로 흰 대리석 계단이 이어지고,
발끝 아래로는 태양에 데워진 푸른 물결이 넘실거린다.
그녀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거나 상처 입은 것도 아니다.
단지 지금 이 계절의 중심에 앉아 있을 뿐이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사라진 그 순간.
그녀는 여름이고, 나는 그녀였다.
산토리니.
그곳의 하늘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림처럼 고요하다.
그렇게 이아에서 시간을 보냈다.
'굳이'
이 말은 간절하지 않은 것을 선택하지 않음을 말하는 단순한 부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