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속에 담은 음악, 신발에 담은 바람
유럽 어느 한적한 마을,
고요한 산책과
가벼운 침묵으로 살고 싶다
음악에 빚을 지고 돌아오면
쓰다만 글이 나를 반기는 곳,
여행의 뒷길처럼
누군가를 그리워할 것이다.
가끔씩 남아도는 시간을 즐기며
설핏 잠이 드는 쓸쓸함까지
기꺼이 껴안을 것이다
이끼 낀 돌 벤치에 기대앉아 책을 읽다가
하늘을 바라보는 게으름을 즐길 것이다
큰 창으로 가을빛이 자욱하게 고여 들고
별빛이 자잘한 꽃잎처럼
잔디에 부어지는 걸
오롯이 차지하는 사치를 누릴 것이다
숲의 고요가 지치는 날엔 시장에 나가
파란 사과 몇 알과 빵 한 바구니,
물망초나 델피니움을 사 가지고 올 것이다
더러,
여백이 끝나는 곳에서
목소리가 그리운 시간이면
머플러 속에 고여 있던
겨울의 기다림을 쏟아내어
가끔은 무효가 된 전화 벨을
울릴 것이다
얼음장 같은 하늘이
쩌렁쩌렁 시리고 푸른 소리를 내는 새벽엔
네모난 사진첩을 넘길 것이다
착각 같은 봄이 오면
멍한 시선을 비끄러매고
발뒤꿈치에서 설레는 바람을 데리고 나가
꿈에게 마음을 맡기기도 할 것이다
비 온 후 올리브 나무 사이로
옅은 구름이 쓸려가는
푸른 하늘 냄새라든가
가랑비 자욱한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노을 냄새를 섞어
바람에 날려 보내면
생명에 가장 가까운 색
연두와 초록을 데려올 것이다
모두에게 휴식이 내리는 가을엔,
귀에 걸린 라피스 라줄리를 닮은
저녁 빛을 불러 앉히고
모든 흘러간 과거가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편지로 쓸 것이다
그 편지는 부재 속으로 찾아드는
침묵의 목소리인지라
길어져도 수다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때 쓰는 글은 음악이 되고
가끔 만나는 한밤의 침묵과
마음속 깊이 진동하는 책을 읽는 시간은
내가 숨 쉬는 공기가 될 것이다
시시로 바람의 고향을 찾아
국경을 넘어 포지타노로 향하거나
몽생미셸에 가서
바다의 엄마가 누군지
하늘의 아버지는 어디 있는지
허적허적 찾아다니는
어린 왕자가 되기도 할 것이다
생각에 빠져
얼 그레이가 다 식어버리는
흐름처럼
어젠 여름이었고
오늘은 가을인 나날을 보낼 것이다
그건
내 신발엔 언제나 바람이 그득한 까닭이며
가방 속에 든 음악과
음악 속에 담긴 술과
술에 떨어지는 비 때문일 것이다
내 눈 속에 사는 새 한 마리가
낮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갈까 생각하는 건
소리 없는 반란이자 부활,
살아있는 이유일 것이다.
붉은 달이 뜬다고 했다
신발에 바람을 담는다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