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외출 02화

비행기는 병,
여행은 약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여행(1. 바르샤바)

by 전나무






비행기 유리창 밖의 성에가 보석처럼 아름답다






나는 비행기를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에 50여 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보낸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스스로 타는 거다. 최근 10년 간 빠짐없이 그랬다.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병원에 가는 건 필수 사항, 공황장애 약을 처방받기 위해서이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나면 어떤 날은 이륙하기 전부터 증상이 나타난다. 갑자기 숨이 막힌다. 가슴이 조여 오며 매스껍기 시작한다. 밤 비행일 때는 어김없이 그렇다. 기내식을 마치고 기내 등이 꺼지면 사람들은 하나둘 잠을 청하거나 앞좌석의 등받이에 달린 모니터로 영화를 본다. 몇 개의 독서 등만 켜져 있을 뿐 사위가 죽은 듯 고요해지면 나의 고통은 어김없이 시작된다.


박스에 담긴 마카롱처럼 줄 맞춰서 빼곡하게 앉아있는 사람들의 평화가 내겐 로봇처럼 무섭다. 순간 내가 앉은 의자 밑에 스카이 콩콩 같은 스프링이 달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뿅 하고 튀어 올라 비행기를 뚫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제지시킬 수가 없다. 그 증세가 이미 시작되었다면 약도 없다. 온몸이 옥죄는 걸 참으려면 그야말로 일각이 여삼추다. 그러므로 나는 비행기에 타자마자 신경 안정제를 먹는다. 의사가 처방한 그 약이 대부분 효과가 없다. 그것으로는 안 되는 걸 알기에 처음부터 독한 수면제를 먹는다. 그래도 완전히 잠들지 못한다. 비몽사몽 취한 상태로 그냥 견디는 수밖에 없다. 그토록 어려운 시간들을 견디며 여행한 곳이 50여 개국. 여행은 그러한 고통을 견딜만한 충분한 그 무엇을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떠날 수 있다. 떠남은 계속될 것이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환승을 기다리는 중 만난 가족


그림자를 찍으며 비행기를 기다리던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공항





여행은 약이다. 여행은 술이다. 여행은 내게 주는 시간 선물이다.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이라는 의미이다. 떠나지 않으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망설임은 없다. 여행지의 향방이 정해지면 일정을 짜고 항공, 숙소, 기차 등의 예약을 시작한다. 그게 내 여행의 방식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예전처럼 무엇을 보고 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고적한 곳에서 생각을 놓아두고 시간을 더디고 무디게 보내는 것, 그게 이번 여행의 바람이었다.


유레일 4,507킬로미터의 끄적임, 그 제목처럼 차마 쓴다는 표현이 아닌 끄적임 수준의 글을 브런치에 올리고 있었다. 아직 1,000킬로미터도 쓰지 못했는데 다시 여행을 떠났고 돌아왔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프랑스,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그리고 지난겨울 26일간의 독일 여행까지 써야 할 여행기들을 줄을 세워야 할 지경이다. 숙제 안 한 학생처럼, 빚쟁이에게 독촉받는 채무자처럼 맘이 편치 않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기억력도 걱정의 하나다. 그러자면 가장 따끈한 거, 즉 신상부터 쓰는 게 옳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중, 연일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라는 문자가 날아들었다. 그때 우리는 20도가 채 넘지 않는 곳에 있었다. 심지어 따뜻한 옷을 사 입어야 할 정도였다. 이제 아름다웠던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며 세 번째 여행을 시작한다. 왜 세 번째 여행일까? 첫 번 째는 계획을 짜면서 상상으로 미리 가보는 여행이요, 두 번 째는 실제 여행, 그리고 기록을 하며 지난 시간을 더듬는 이 일이 나의 세 번째 여행이다. 이것이 끝나야 나의 여행은 마무리된다.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공항 활주로






‘안녕하세요, 저희 아파트에 예약문의를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객님께서 요청하신 날짜는 세계 가톨릭 청년대회가 열리는 기간임을 알려드립니다. 이곳은 아주 작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이 대회로 인해 기간 중, 적어도 최소 300만 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만일 가톨릭 청년대회와 무관하게 단순히 여행을 하실 거라면 다른 날짜로 변경하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또한 저는 그 기간 동안 한 팀이 계속 저희 아파트에 묵게 되기를 원합니다. 원하시면 다른 숙소를 추천해 드릴 수 있으니 연락해 주십시오.’


여행할 인원이 4명이니 호텔보다 아파트가 낫다는 건 이미 경험하여 알고 있는 터, 아파트의 위치와 인테리어 및 금액이 적당한 곳을 골라 호스트에게 메일을 보낸 후 받은 답장이었다. 물가가 저렴하다고 알려진 폴란드의 호텔이나 아파트의 숙박 요금이 예상보다 비싸서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는데 그런 국제적인 큰 행사가 예정되어 있는 것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대회의 요지와 규모를 자세히 알아보았다. 교황님이 참석하시며 우리나라에서도 천여 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참석하는 세계적인 행사였다. 폴란드 일정을 다소 변경해야만 했다. 이동할 도시 간의 기차와 버스 예약을 아직 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아파트의 체크인이 규정된 시각보다 늦어지면 별도의 추가 요금을 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호텔은 간판이 있으니 찾기가 쉽지만 아파트는 그렇지 않다. 공항 도착이 밤 10시가 가까운 터라 호스트에게 미리 메일을 보냈다. 요청대로 미니밴이 우리를 픽업하러 왔고 그 덕에 편안하고 쉽게 바르샤바 숙소에 도착했다. 고층 빌딩의 화려한 불빛이 낯 선 바르샤바 신시가지 근처였다. 독립된 두 개의 침실과 주방과 욕실이 딸린 아파트는 화려하거나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만족한 수준이었다.



바르샤바 올드 타운 어느 골목





폴란드어로 ‘폴스카’라고 불리는 폴란드는 ‘넓은 초원의 땅’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동유럽과 서유럽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로 그은 듯 직선에 가까운 사각형의 형태를 지닌 영토는 유럽에서 여덟 번째로 크다. 푸른 들판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곳곳의 호수들이 운치를 더한다. 폴란드 바르샤바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의하여 도시 전체가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거의 대부분 재건되었다. 베를린과 비슷하다. 베를린도 연합군과 소련군의 폭격에 의하여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고 재건했다.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 <쿠오바디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퀴리 부인,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비롯하여 많은 인재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바르샤바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바르샤바를 대표할 수 있는 공원인 라지엔키 공원 (Lazienki Park)을 찾아가는 일은 쉬우면서 쉽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방향을 물을 때마다 사람들의 대답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길모퉁이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과일을 팔고 있는 할머니, 잘 익은 해바라기 씨를 통째로 팔고 있는 아저씨를 지나쳐서, 동네 빵집에서 방금 나온 곡물 빵 몇 개를 동네 주민처럼 사들고 공원을 찾아가는 소박한 아침이 호사스러운 시간처럼 여겨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입가에서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길에서 베리 파는 할머니


꽃과 과일, 씨앗과 채소를 파는 노점상





노릇노릇한 이파리들이 울창한 나무 사이로 떨어지고 있다. 유모차를 밀며 한가롭게 산책을 하는 아빠가 지나가고, 자전거를 탄 아가씨 둘이 우리를 스쳐 지나갈 무렵, 쿠오바디스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헨리크 시엔비치의 동상이 보였다. 조금 더 걸어가니 커다란 분수의 중앙에 쇼팽(1810-1849, 폴란드) 조각상이 멋있게 자리 잡고 있다. 어찌 보면 쇼팽의 큰 손이 그를 감싸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마치 비바람에 휘어진 듯 보이기도 했다. 비바람은 외세, 즉 망국의 시련을 겪는 폴란드와 함께 하는 쇼팽이라는 뜻일까? 근처에는 쇼팽과 쌍벽을 이루던 피아노의 시인 리스트(1811-1886, 헝가리)의 흉상이 보였다.



쿠오바디스를 쓴 헨리크 시엔비치 동상
와지엔키 공원의 쇼팽 동상


쇼팽 동상의 분수


리스트 흉상




유럽은 공원이라는 개념이 우리와 사뭇 다르다. 일단 면적이 그렇다. 울창하고 넓은 숲길에 한가롭게 놓여있는 긴 벤치들, 그곳에 앉아 책을 읽다가 가져간 샌드위치와 음료를 먹고, 새소리를 듣다가 낮잠에 빠져들어도 그 누구의 방해나 관심을 받지 않아도 좋을 그런 곳, 텅 빈 의자들이 평화롭고 한가롭다. 숲 속의 카페에서 한껏 우아하게 젤라토를 먹으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청설모가 나무를 타고 호수엔 오리들이 헤엄을 친다. 기다란 꼬리를 늘인 채 걸어 다니는 공작도 보였다.


그림처럼 서있는 공작
와지엔키 공원의 카페








버스를 타고 올드 타운 잠 코비 광장으로 향했다. 잠 코비 광장 바로 앞에 바르샤바 왕궁 (Zamek Królewski)이 있다. 17세기에 바로크 건축으로 지어졌지만 2차 대전 때 독일 나치에 크게 파괴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는데 복원되었다. 광장의 중심에 서 있는 바사 기둥의 지그문트 3세 청동상 역시 복원된 것이다. 세계 가톨릭 청년대회에 참가한 각국의 젊은이들 인해 인산인해를 이룬다. 생기와 활기로 가득한 올드 타운이 젊어진 느낌이다.


올드 타운으로 통하는 신세계 거리
잠코비 광장
지그문트 3세 청동상






여행 중 가장 좋아하는 일은 오래된 구 시가지의 골목을 둘러보는 것이다. 명소가 없어도 좋다. 그저 오래된 시간의 느낌이 좋다. 수백 년을 지나온 골목의 아우라, 그 분위기가 좋다. 도시 대부분이 전쟁 때 폐허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부 골목들은 전쟁 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구시가지 메인 스퀘어 중앙에 칼과 방패를 들고 있는 인어상 (Warszawska Syrenka)이 있다. 사람들은 이 인어상이 도시를 지켜주는 수호신이자 하나의 상징으로 크게 믿고 있다. 토요일이어서인지 결혼식을 하는 신랑 신부가 곳곳에 보였다.


칼과 방패를 들고 있는 인어상


가톨릭 청년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곳곳에 모여 모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고 구호를 외친다.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앰블램이 프린트된 배낭을 메고 있는데 색깔이 노랑, 파랑, 빨강 등 다르다. 성당 앞에서 이탈리아 청년들의 유쾌한 춤과 노래가 너무 경쾌하고 아름다워 짧으나마 동영상을 찍었다. 동그랗게 모여 손을 잡고 같은 스텝으로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그들 틈에 끼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건 비단 나뿐이 아니었는지 많은 여행자들이 발길을 멈추고 그들의 노래와 춤을 보고 들으며 즐거워했다. 걷다 보면 자연스레 쇼팽의 녹턴 20번이 귓가에 들리는 도시, 바르샤바는 아름다웠다.



세계 가톨릭 청년대회에 참가한 이탈리아 청년들의 노래







Since 1913, 자피에첵(Zapiecek)은 100년이 넘은 폴란드 전통 음식점이다. 좁은 실내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음식점과 면한 골목의 노천 테이블에 앉았다. 손뜨개로 만든 하얀 레이스 받침을 깔고 앉은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병이 앙증맞고 예쁘다. 폴란드 그릇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우선 청량한 음료가 필요했다. 초록색의 작은 허브 잎과 노란 레몬이 들어있는 상큼한 레모네이드를 가져다주었다. 아직 마시지 않았는데 그 시원함과 상큼함이 눈으로 전해졌다. 그 맛 역시 시원하고 깔끔했다.


폴란드식 만두인 피에로기를 주문하려고 하는데 메뉴에 할머니 피에로기와 할아버지 피에로기라는 표기가 각각 있다. 두 가지의 차이는 9개와 11개의 만두 개수 차이, 재미있는 발상이다. 치킨 샐러드, 전통 수프, 스테이크와 소시지 요리들을 주문했다. 자잘한 파란 꽃잎이 그려진 소박한 접시에 하얀 피에로기가 담겨 나왔다. 작은 나무 도마 모양에 주물 손잡이가 달린 그릇에는 수프 보울과 구운 소시지가 보기 좋게 담겨있다. 피에로기는 만두피가 좀 도톰했지만 곁들여 나온 샤워 크림에 찍어먹으니 꽤 맛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김치 같은 양배추 절임도 시큼하면서도 감칠맛이 나서 입맛을 돋우었다.


100년의 전통을 자랑하듯 전통 의상을 입고 서빙하는 자피에첵


폴란드 전통 음식
벽과 어울리는 엽서 색깔






아파트로 돌아가 잠시 쉬었다. 저녁을 만들어 먹고 이번엔 걸어서 올드 타운을 찾아갔다. 신세계라는 이름의 거리를 따라 걸어가면 올드 타운이다. 층층의 난간 아래에서 위로 비추이는 조명으로 인해 돌로 건축된 건물이 더 은은하게 아름답다. 낮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쏘다녔다. 성 십자가 성당 (Holy Cross Church)이 보였다. 바르샤바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 중에 하나인데 쇼팽의 심장을 보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B41A5620.JPG 쇼팽의 심장이 보관되어 있는 성 십자가 성당





일곱 살에 폴로네이즈 G단조와 B장조를 작곡했던 폴란드가 낳은 피아노의 시인 쇼팽, 그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예견한 듯 “죽기 위해 떠나는 것 같다”라는 말을 남기며 1830년 바르샤바 국립극장에서 그가 만든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그의 나이 스무 살이었다. 그게 조국에서의 마지막 연주회가 되었다. “나의 몸은 비록 파리에 있지만, 나의 영혼은 언제나 늘 나의 조국 폴란드와 함께 할 거야” 말을 남긴 쇼팽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파리에서 살았다. 1849년 10월, 39세의 쇼팽은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하며 누나에게 마지막 소원을 남겼다. “누나, 내가 조국에 묻힐 수 없다면 내 심장만이라도 꺼내어 폴란드 품에 안기게 해줘!” 그의 장례식은 심장 없이 거행되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장례식에서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연주됐다. 그의 누이는 그의 심장을 알코올에 담긴 단지에 넣어 조국으로 가져와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했다.


쇼팽 전문 피아니스트는 많다. 그중 추천할 만한 최고의 연주자는 단연 폴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이다. 짐머만은 5년마다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쇼팽 콩쿠르에서 1975년에 최연소의 나이(19세)로 우승한 전력을 갖고 있다. 지난 17회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의 대선배이다. 짐머만은 조성진의 연주가 끝나자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평생 들었던 쇼팽 중 조성진이 가장 완벽했습니다!” 쇼팽 해석에 있어 세계 최고의 권위자가 보낸 문자다.


성 십자가 성당 근처에 바르샤바 대학이 있다. 또한 교황을 지낸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추앙받는 인사로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동상도 보였다. 폴란드 위인으로 빼놓을 수 없는 퀴리 부인은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1903년)과 노벨 화학상(1911년)을 받았으니 다양한 위인을 배출한 나라이다.


코페르니쿠스 동상


바르샤바 대학



100년 정도는 우습다는 듯 Since 1869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카페 A.Blikle에서 젤라토와 커피를 마셨다. 옆 테이블에 어린 딸과 빵을 먹던 남자가 말을 건넸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비행기 티켓의 가격을 물었다. 대답을 들은 젊은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래전부터 한국에 가고 싶었지만 여행비가 너무 비싸서 아직 못 갔다고 했다. 우리가 앞으로 가게 될 도시들을 말하니 무척 아름다운 도시라는 말을 강조했다. 젊은 아빠도 언젠가 한국에 가게 되면 좋겠다.


1869년부터 이어오는 카페
스푼으로 퍼서 먹어야 했던 젤라또






발트, 독일, 체코, 우크라이나 등과 접해있는 폴란드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안팎으로 침략이 잦았다. 그들이 온전한 자유를 얻게 된 건 1945년,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그들도 아픔을 걷어낸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경쟁보다는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골고루 갈 수 있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또 변화보다는 안정, 효율보다는 평등을 우선시한다. 국가에서 교육과 의료를 보장하다 보니 비록 월급은 적어도 상대적으로 큰돈이 들어갈 일이 없을 터, 그러므로 시민들은 여유 있게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다. 그들의 삶의 활력소는 바로 여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여행 중 쇼핑은 잘 하지 않는다. 이유는 두 가지, 값이 비싸거나 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가가 싼 폴란드에서 더구나 50%를 할인한다는 문구를 본 우리는 냉큼 가게로 들어갔다. 맘에 드는 모자와 스카프를 사고 나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아파트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브로츠와프로 가는 날,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야 한다. 중앙역으로 가다 보면 문화 과학 궁전 (Pałac Kultury i Nauki)을 지나간다. 바르샤바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건축물이다. 높으니까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이정표 역할도 한다. 1952년 러시아(구소련)에서 파견된 3500명의 기술자들에 의해 건축되어 1955년 완공됐다. 러시아가 폴란드 국민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명목이었기에 건축물의 이름이 스탈린 궁전이 될 뻔했다고 한다. 그러나 폴란드인들은 이러한 치욕적인 일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도 바르샤바 시민들은 이 건축물을 싫어한다고 한다. 도시를 강제로 점령하고 수많은 국민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핍박한 것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건물 하나로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멀리 시계가 보이는 건물이 문화 과학 궁전


건물의 유리에 반영된 문화과학 궁전





2차 세계대전 때 바르샤바 시민들은 나치를 상대로 2개월 동안 사투를 벌였다. 그들의 격렬한 저항에 놀란 독일군은 화염 방사기로 건물들을 불태워 버렸고 50여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유대인 피아니스트 슈필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진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면 너무나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80퍼센트가 잿더미가 된 바르샤바는 주저앉을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잿더미가 된 도시 위에 주저앉지 않았다. 역사의 기록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벽돌 한 장, 갈라진 벽 하나하나까지 충실하게 복원해나갔다. 눈물겨운 애국심이 바로 지금의 바르샤바를 탄생시킨 것이다. 비록 전쟁에서는 졌지만 그들의 노력은 승리했다. 그렇게 바르샤바 역사지구는 1980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다.


바르샤바 중앙역






바르샤바 중앙역 안에서 <Paul>을 발견했다. 2년 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우리의 Paul 사랑은 시작되었다. 프랑스 곳곳의 도시는 물론 독일 등 어디서든 paul을 만나면 어김없이 까만색 모래 같이 자잘한 치아 시드가 붙어있는 바게트 샌드위치를 사 먹곤 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맛있으니까’ 그러나 물가가 싼 바르샤바에서 Paul은 사치에 가까울 정도로 비쌌다. 서유럽이나 북유럽에서의 Paul과 가격이 같으니 당연 바르샤바 물가로 비교할 때 무척 고가인 것이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기차에서 먹을 바게트 샌드위치와 크루아상, 애플파이 등 몇 개의 빵과 치킨 샐러드를 구입했다.


바르샤바 중앙역 플랫폼
유럽에는 자전거를 기차에 싣고다니는 여행자가 많다.





기차는 쿠셋은 아니지만 3명씩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6인용 룸이었다. 우리 넷과 2명의 수다스러운 폴란드 아가씨 둘이 한 칸에 앉았다. 그녀들은 깔깔거리며 쉼 없이 떠들어댔다. 그때 우리 칸의 문이 열리며 커피와 티를 서비스하는 남자가 무엇을 마시겠는지 물었다. 문쪽에 앉았던 나는 카트 아래쪽에 오렌지 주스와 맥주가 있는 걸 보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주스도 있어.”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남자가 마치 한국말을 알아듣은 듯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No Juice!”

그 순간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폭소를 터트렸다.

주스와 맥주는 판매용이고 커피와 티만 서비스였던 것이다. 때 마침 커피를 서비스해서 빵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어느새 기차가 브로츠와프 역에 도착하고 있었다.


아름답게 낡은 벽을 만나면 심장이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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