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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Oct 03. 2016

지우개가 필요한 인생의 어떤 기억

<영화 셔터 아일랜드, 말러 피아노 4중주 가단조>



  누군가 사라졌다. 미국의 연방보안관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수사를 위해 동료, 척(마크 러팔로)과 함께 셔터 아일랜드로 향한다. 영화의 원작은 <살인자들의 섬>,『미스틱 리버』의 작가 데니스 루헤인의 최신 범죄 스릴러로 탄탄한 구성과 충격적인 결말을 갖춘 흡인력 있는 추리소설이다. 옅은 안개와 암울한 구름이 뒤덮인 바다, 드센 비바람 속에 나치를 연상시키는 제복의 감시인, 육중하고 차가운 회색 담장, 볼품없는 잔디밭 사이에 서있는 기괴한 건물, 차가운 표정의 박사들에게서, 풀리지 않는 사건과 불확실한 상황들이 곧 전개될 것이란 암시를 갖게 한다. 그곳, 셔터 아일랜드는 중범죄를 저지른 정신병자를 격리하는 곳으로 탈출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다. 




  어느 날 세 명의 자식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레이철 솔란도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녀의 방에서 67이란 숫자가 써진 쪽지가 발견된다. 수용된 환자 수는 66명, 67은 다음에 수용될 환자의 번호인데 그는 과연 누구일까? 테디는 수사를 위해 병원 종사자들을 심문하지만 모두 꾸며 낸듯한 말만 하고, 뭔가를 감추고 있는 병원 종사자들 때문에 수사는 진척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테디는 아내를 죽인 방화범 앤드류 레이디스를 찾으려는 심리적 혼란으로 환영이 보이며 극심한 편두통에 정신착란 증세까지 보인다. 마침내 정신분열증으로 전이되면서 불안과 공포는 끝까지 그를 집요하게 물어뜯는다. 



  폐쇄된 공간과 회색 심리, 영혼을 잠식해나가는 기억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서 주인공의  끊임없는 추적과 반전이 영화의 매력이다. 특히 인물과 사물을 배치하는 구도와 색상은 스릴러답지 않게 아름다운 미장센을 느끼게 하는데, 그중 음악의 역할은 보다 특별하다. 음표 같은 종잇장들이 공중에 날리는 불안한 장면에서 흐르는 구스타프 말러의 피아노 4중주 가단조의 선율이 그렇다. 영화를 통해 이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닫혀 있던 가슴과 머리의 창문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왜 말러인가? 그건, 딸의 죽음과 유대인으로서의 소외감, 아내와의 트러블로 인해 평생 고통스러웠던 말러와 영화 주인공의 공통적인 트라우마를 보여줌으로써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운 메시지를 읽게 한 게 아닌가 했다. 



  말러 이외에도 피아노 건반으로만 표현된 단순한 음악들과 기괴할 정도로 음산한 음악들이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더 풍성하게 채워준다. 폴란드의 현대음악 작곡가 펜데레츠키의 심포니 3번, 존 케이지의 마르셀 뒤샹을 위한 음악,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존 케이지에게 바치는 경의 등이 반전을 거듭하며 강렬한 긴장감과 불길한 예감을 북돋우는 훌륭한 장치가 된다. 이러한 영상과 음악은 특수한 환자들만을 수용하는 C병동에 대한 강렬한 묘사에서 두드러진다. “고통은 육체가 아닌 뇌에서 비롯되죠. 상처는 사람을 괴물로 만들지요. 당신은 상처를 입었고 당신 안에 괴물을 보았다면 이제 그만두어야 합니다.”라는 대사는, 주인공 테디가 품고 있는 진실과 비밀을 풀어헤치는 답이며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오쇼 라즈니쉬는 “인간의 역사가 아는 것은 갈등뿐이고, 악행뿐이며, 악인뿐이며, 폭력뿐이며, 미친 사람뿐이다. 역사는 뭔가가 잘못되었을 때만 기록을 하기 때문이다. 물 흐르듯 모든 일이 잘 될 때 역사는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바람에 책장이 넘어가듯 자연스러운 일상은 기억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상처와 슬픔, 기쁨 등을 기억 주머니에 넣어 두고 있을 뿐이다. 체코 프라작 콰르텟이 연주하는 “Quartet For Strings And Piano In A Minor”를 슬픈 기억의 지우개 삼아 듣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 생각나는 영화 셔터 아일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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