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프 오베 안스네스와 노르웨이 체임버 오케스트라
서울 요금소 입구의 전광판 예고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판교에서 서초 13km, 차량 증가로 정체> 10분이면 넉넉할 거리지만 1시간이 넘도록 도착하지 못했지요.
간다기보다 서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습니다. 가까스로 과천 방면으로 나가서 우면산 터널로 들어갔지만 그곳 역시 밀리더군요. 자동차에 들어있는 여섯 장의 CD가 큰 위안이었습니다. 그중 한 장은 굴드 에디션 중 줄리어드 현악 4중주단과 굴드의 연주로 슈만 피아노 4중주 OP.47과 브람스 피아노 5중주 OP.34,
웬일인지 굴드 특유의 허밍이 굴러 나오지 않더군요.
클라라 슈만, 그녀는 슈만과 브람스 두 사람 모두를 사랑했을까 궁금하더군요.
컴컴해진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 가지에 돋아난 새잎이 선명히 보였습니다. 어떻게 저 작고 연한 잎이 거칠고 딱딱한 나무껍질을 뚫고 나온 걸까?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기는 법이지 하다가 나무가 제 몸을 터 주었으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랑입니다. 어미가 제 새끼를 세상에 내놓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요.
노르웨이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첫 곡은 모차르트 교향곡 no.35, K.385 <하프너>였습니다. 이 곡은 모차르트가 한 악장 한 악장 완성될 때마다 잘츠부르크에 계신 아버지께 악보를 보냈는데 그 후 이 곡의 총보가 반송되어 왔을 때는 그 교향곡을 작곡했던 기억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합니다. 모차르트의 면모를 느끼게 해 주는 에피소드지요. 연주는 지휘 없이 음악감독 겸 악장인 이자벨 반 쾰른의 리드로 시작되었습니다. 남녀의 비율은 18대 18이었는데 모차르트의 부드러움과 섬세함, 시원하면서도 칼큼함이 두드러지더군요. 씨실과 날실의 구조가 잘 짜진 화합과 결속이 눈에 띄는 연주였습니다. 각이 살아나는 3악장 리듬은 고딕 건축이요, 화끈한 4악장에선 손에 땀이 배더군요.
시각적으로 그들은 여느 오케스트라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빨강 포인트? 레드 엑센트? 바이올리니스트 한 명은 빨간 구두를 신었고 첼리스트의 어느 누구는 빨간 헤어핀을 호른 주자는 빨간 스타킹을 신었더군요. 비올리스트는 빨강 블라우스, 바순은 빨강 코르사주, 그리고 다른 이는 이어링과 립스틱이 레드였습니다. 처음엔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과하지 않은 악센트는 연주가 꽃 피도록 생기를 불어넣는 힘처럼 느껴졌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차례입니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좌우 앞쪽에 1 바이올린이 앉고 첼로와 베이스가 피아노의 왼쪽 대각선으로 위치를 바꾸었습니다. 뚜껑을 떼어낸 피아노를 중심으로 현악기들이 둘러앉은 모양이 되었습니다.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어린이들처럼 말입니다. 신세대 가운데 최고의 위치를 확립한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가 나왔습니다. ‘영혼에 다가서는 섬세하고 청명한 타건’, ‘황홀한 음색’, ‘시적인 해석’ 명징한 타건과 시적인 해석이 돋보이는 그는 음악계의 오스카상으로 비유되는 그라모폰상을 세 차례 받은 피아니스트입니다. 뉴욕타임스가 매년 뽑는 베스트 CD 리스트에 세 번 이상 이름을 올렸고 깔끔하고 아이디어 넘치는 연주 스타일로 세계 각국 무대에서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의 연주 중 50%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데 오늘은 지휘와 피아노를 동시에 하게 되어 있습니다.
소리가 살아있는 느낌의 1악장이 꿈꾸듯 정겹고 따스한 그림으로 그려졌습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는 것은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음악이 완벽히 몸에 배어있는 안스네스는 보고 듣는 청중들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았습니다. 2악장이 시작될 때 눈을 감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시칠리아노 풍의 멜로디를 좋아합니다. 8분의 6박자의 펼친 화음에 점 리듬으로 연주되는 서정적인 선율이 느릿하고 편하게 흐르는 특징이 있지요. 바흐나 포레의 시칠리아노 역시 감성적인 아다지오로 편안함을 주지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K.488의 2악장의 시칠리아노 풍 리듬을 특히 좋아하는 저로서는 그저 온몸의 세포를 열어 놓고 느끼고 싶었습니다. 빈속에 마신 알코올 한 방울처럼 짜릿하더군요. 플루트 선율에 반 박자 쉬고 딴따따따따 딴따 로 이어지는 피아노 선율의 여운을 느끼는 짜릿함은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인터메조 후 첫 곡은 그리그의 홀베르크 모음곡이었습니다. 그리그는 바흐와 같은 시대 시인이었던 홀베르크를 무척 숭배하였다고 합니다. 프렐류드, 사라방드, 가보트, 아리아, 리고동 등 다섯 개의 무곡을 모은 것으로 바흐의 첼로 모음곡을 연상시키는 형식입니다. 음악감독과 그의 단원들은 초원의 경마처럼 경쾌했습니다. 지휘 없이 서로 눈짓 몸짓으로 교신하며 시간을 달리는 음악을 만들었지요. 그리그의 페르귄트 같은 북구의 정서는 우리와 맞는 느낌입니다. 3악장, 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낭비도 아니었죠. 나막신에 전통의상을 입고 민속무용을 추듯 뮤제트는 사랑스러웠습니다. 소리가 가슴을 헤집는 기분 좋은 아픔? 슬픈 행복? 4악장은 악장이 아리아를 제시하면 첼로 수석이 풍부한 표정으로 답하며 재현하는 맛이 애잔했습니다. 5악장 바이올린 솔로는 우산 위에 떨어지는 우박처럼 통통 거림으로 연주가 아니라 즐거운 유희로 느껴졌습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K.491는 놀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요 같은 선율이었지요. 음악회에서 연주한 모든 곡이 모두 좋은 음악회는 드뭅니다. 그러나 안스네스와 노르웨이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모두 좋았습니다. 수차례의 커튼콜에 이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4번 3악장을 앙코르 연주했지요. “음악은 함께 나누는 것의 의미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히 훌륭한 음악작품을 들었을 때 우리는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됩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멋진 소리로 우리들이 내면에 갖고 있는 슬픔과 절망, 즐거움과 기쁨, 삶과 죽음을 표현할 수 있었음을 느끼게 되니까요.” 안스네스의 말이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모두가 공감하리라 여겨집니다. 음악은 착한 모르핀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