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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Oct 18. 2016

 그러므로 여행은 언제나 옳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여행(12. ending)






괴테 하우스의 두 여인






‘실례합니다, 혹시 우체국이 어딘지 아세요?’

‘미안한데 저는 몰라요.’

같은 질문과 대답이 반복해서 오갔다.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여 우체국을 러시아어로 무엇인지 찾았다.

‘우체국이 어딘지 아세요?

‘네, 카잔 성당 주변, 카잔 스트릿에 있어요.’

‘아~, 카잔 성당 알아요, 감사합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우체국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무슨 창고처럼 생긴 작은 건물이다. 역시나 육중한 철문을 밀고 들어갔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우체국




  우리의 동네 우체국보다 작았다. 직원은 3명, 무슨 일을 하는지 키보드 소리가 아닌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와 도트 프린터 찍찍거리는 소리가 흑백 영화 속 사운드처럼 낯설게 들렸다.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이 창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 너머엔 입을 굳게 닫은 여직원이 뭔가를 한다. 한 사람은 문을 열고 창구 밖으로 나갔다, 또 한 사람 역시 왔다 갔다 뭔가를 한다.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우리에게 ‘도와드릴까요?’ 또는 ‘무엇을 하실 거 에요?’는커녕 눈길도 주지 않는다. 앞사람은 우편 업무를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40여 분의 시간이 지나갔다.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다. 다짜고짜 물었다.     

‘실례합니다. 한국으로 소포를 보내려고 하는데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서 직원은 택배에 필요한 서식을 주면서 쓰라고 한다. 그런데 그 서식이 몽땅 키릴 문자이다. 아~, 문맹이란 얼마나 갑갑한 것인가? 혹시나 몰라 미리 찾아 놓았던 블로그를 찾아 칸을 채워나갔다. 주소, 이름, 우편 번호 등등….


  물건을 보내려면 박스가 필요한데 그들의 우체국엔 박스조차 창구 저쪽, 그러니까 업무를 보는 그들이 갖고 있다. ‘6호 박스 하나 부세요.’ 박스를 받기까지 또 30여분을 기다렸다. 물건을 박스에 넣었지만 덕 테이프가 없다. 그냥 창구로 들이밀었다. 앞사람의 용무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 사이 두 명의 고객이 더 왔다. 가까스로 택배 상자가 직원의 손에 넘겨지고 그녀가 직접 테이핑을 했다. 그런데 어설프기 짝이 없다. 저게 무사히 한국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생겼다. 작성한 서류를 보더니 빈칸을 가리키며 빠짐없이 쓰라고 한다. 우리 곁에 있던 젊은 청년이 눈치 빠르게 영어로 알려주었다.

‘박스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뭔지 쓰시면 돼요.’

‘아~, 감사합니다.’

<books, cloths, shoes, bags, scarf>

중량은 10kg, 운송료는 약 40,000원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10분이면 끝낼 일이 그곳에선 2시간쯤 걸렸다. 하루에 그 우체국에서 처리할 수 있는 업무는 10명도 안 될 듯, 느리고 비체계적이고, 비능률적이다. 아무튼 물건을 받아보기까지 약 2주 정도 걸린다는 대답을 듣고서 우체국을 나왔다. 그렇게 어렵게 보낸 택배는 그날부터 꼭 열흘 후 무사히 도착했다. 단 박스가 일부 터졌는지 우체국 국제특송이라는 한글이 써진 덕 테이프가 박스를 묶고 있었다.     



무사히 받은 택배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환전을 하러 은행에 들어갔을 때였다. 창구에 직원은 여럿인데 도무지 일을 하는 건지 40분을 기다려도 번호표의 숫자가 변하지 않았다. 옆에 앉아있는 여성이 혹시 환전을 하러 왔느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하니, 길 건너 다른 은행을 가르쳐주었다. 그곳에 가면 빨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곳은 마치 한국은행이나 기업은행처럼 일반적인 업무를 보는 곳이 아니었나 보았다.      



  남은 루블도 쓸 겸, 러시아 인형 마트로시카 라도 살 요량으로 네프스키 대로변에 있는 아케이드로 갔다. 그 상가의 이름은 <고스트니 드보르> 건물의 정면에서 보면 가로로 긴 직사각형 같지만 뒤쪽으로 길이가 1km 가까운 역삼각형 모양으로 넓이가 만 오천 평에 이르는 거대한 상가이다. 175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최초의 아케이드(실내 상가)이다. 처음엔 마차를 몰고 다니던 상인들의 숙소로 출발했는데 현재는 200개의 점포가 들어선 쇼핑몰로 번창했다. 마침 곳곳에서 세일을 해서 인형과 부츠 등, 각자 필요한 물건을 저렴하게 샀다.   


   

아케이드, 고스트니 드보르

  

알렉산드린스키 극장 앞 쪽으로 예카테리나 여제의 동상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예카테리나 동상, 뒤에 보이는 노란 색 건물은 알렉산드린스키 극장

  



  헬싱키로 가려면 핀란디스키 역으로 가야 한다. 여전히 비가 많이 내렸다. 호스트에게 콜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택시가 내려준 곳의 역사로 들어갔다. 나이 지긋한 경찰이 따라오라고 한다. ‘왜 또~~?’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헬싱키 가는데요.’ 여기가 아니란다. 밖으로 나가서 200m쯤 가면 회색 빌딩이 있는데 거기서 타야 한단다.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라 M과 내가 먼저 그곳의 위치와 플래 폼 넘버를 확인하러 갔다. 우산은 쓰나 마나 옷이 다 젖어들었다. 그곳이 맞았다. 하지만 좁은 역사엔 사람들이 가득 차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기차를 타기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으니 그쪽에서 기다리다가 이동하기로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헬싱키로 가는 고속 기차 이름은 알레그로, 기차에 탄 사람들의 면모가 달랐다. 기차가 가진 안락한 품격만큼 조용하고 지적이었다. 이제야 좀 우리 세상 같았다. 헬싱키 역의 익숙한 풍경이 반가웠다. 다음 날 헬싱키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자면 4시에는 호텔에서 나가야 한다. 공항 노숙은 무리다 싶어 짧은 시간이나마 호텔을 선택한 것이다. 헬싱키 스칸딕 마스키 호텔의 엘리베이터가 반가웠다. 4인실이지만 넓고 쾌적한 현대식 호텔이다. 호텔 조식을 못 먹고 떠나야 하는 게 아쉬웠지만 시원하게 쏟아지는 뜨거운 샤워와 포근한 침구가 피로를 깨끗이 몰아내 주었다.      





  세 번째 헬싱키 방문이다. 백색의 신부처럼 단아한 헬싱키 대성당을 찾아갔다. 그곳 역시 보수 중이라 건물 일부에 가림막이 쳐 있었다. 아쉬웠다. 대성당 근처 거리에는 컬러풀한 벤치가 곳곳에 있다. 친구들은 파란 의자, 노란 의자, 초록 의자, 분홍 의자, 다른 색이 보일 때마다 돌아가며 앉아 사진을 찍으며 깔깔거렸다. 그런 사소함 마저 기쁨으로 다가오는 게 여행의 매력이다.     



헬싱키 대성당
성당 앞 광장
8월 중순, 헬싱키는 가을
북유럽을 오가는 크루즈
헬싱키 에스플라나디 거리,  핀란드의 대표 시인 요한 루네베리 동상

  





  내가 애용하는 항공기 루프트한자는 대부분 뮌헨이나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환승시간이 무려 10시간이나 된다. 공항에 마냥 앉아있을 필요가 없다. 공항 내 수화물 보관소에 배낭을 맡기고 S반을 탔다. 8월 12일, 외부 온도는 8도. 거의 늦가을 기온이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내리니 빨간색의 sightseeing 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여행지마다 다 있는 버스지만 한 번도 타본 일이 없다. 그저 두 발로 걷고 또 걸어 다녔었다. 친구들 역시 타 본 일이 없다고 했다. 마침 여행에 동참하지 않은 친구 T의 찬조금이 그대로 남아있던 터라 그 돈으로 버스를 타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역 앞의 중국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총무를 맡느라 머리 아프고 수고했을 M이 값을 치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프랑크푸르트의 Hope on Hope off 버스는 비추! 맨해튼도 아닌 그렇다고 서울보다 훌륭하지도 않은 빌딩 숲을 투어 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나마 올드 타운인 뢰머 광장과 괴테 하우스까지 걷지 않고 편히 갈 수 있던 한 가지가 다행이었다.     


프랑크푸르트 빌딩 숲
뢰머 광장
 
마인강




  괴테 하우스는 첫 방문이다. 부유한 가문 출신답게 각각의 방은 아름답고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벽지와 창, 가구와 커튼, 꽃들의 색감이 모두 얼마나 예쁜지 그중 하나가 내 방이었으면 했다. 괴테 하우스의 뒤편 작은 정원에 놓여있는 나무 벤치가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그 벤치 사진을 따뜻하게 본 기억 때문일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여행자를 마중 나온 가족들
공항 탑승구 앞 Leisure Zone




여행에서 돌아오면 한동안 이곳이 낯설다.

 

사진을 본다.

그 속의 공기가 느껴진다.

그립다.

낡음이어서 아름다웠던 골목의 색깔들,  

날짜가 아닌 어떤 시점으로 남아있는 지나감.

거기 새겨진 감정의 기억은 오직 자신의 것이다.

여행은 단순할수록 아름답다.


여행은 어떤 이유나 의미를 찾지 않을 때 빛난다.

그냥 걷고,

하늘을 바라보고,

따뜻한 커피와 빵 한 조각의 사소함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오직 그것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여행이 좋은 이유, 비어있음이다.

내 마음의 곳간을 채우는 순간이요, 마음 속에 괄호 하나 만드는 시간이다.      


빌뉴스 아침, 시굴다 요일, 리가 날, 브로츠와프 저녁,      

카우나스빌뉴스 거리에서 산 아이보리 원피스,

크라쿠프에서 산 재색 린넨실에 호박이 조랑조랑 달린 목걸이,

바르샤바 신세계 거리에서 산 겨자색과 회색이 어우러진 스카프,

메이드 인 빌뉴스, 아이보리 색실로 굵은 수를 놓은 초콜릿색 린넨 가방,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산 짙은 에스프레소 컬러의 부티,     

그렇게 나는 발트가 되었다.


나는 다시

또다른 지도 속을 거닐고 있다.    


여행은 언제나 옳다.

       





* 늘 맛있는 빵을 사고, 장을 보고, 지도 보고, 티켓 사러 다니며 회계 보느라 애쓴 친구 M

   건강한 식사 준비와 힘쓰는 일 도맡아 하느라 애쓴 친구 D

   상큼한 웃음 바이러스로 늘 눈물 나게 웃게 해주었던 예능 담당 친구 J에게

   사랑과 감사의 말을 전하며….


 

D, J,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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