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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Oct 23. 2016

8. 쁘띠 프랑스

유레일 4,507Km의 끄적임 <스트라스부르>









  예기치 않은 곳, 예기치 않은 만남, 예기치 않은 사랑.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를 연상하게 된 건 앤티크 느낌이 물씬 풍기는 6인실의 붉은 의자와 붉은 커튼 때문이었다. 영화 속의 제인(줄리아 오몬드)은 벌목 기계를 팔기 위해 시카고를 떠나 러시아로 가는 기차의 1등 칸에 타고 있었다. 러시아의 사관생도 안드레이 톨스토이가 그녀가 타고 있는 룸의 문을 열고 들어오며 예기치 않은 만남이 시작된다. 우리는 룩셈부르크를 떠나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로 가기 위해 1등석 기차에 타고 있었다. 안드레이 톨스토이처럼 우리 칸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없었기에 예기 차 않은 만남은 없었다. 그러나 유쾌한 수다와 편안한 여유가 있었다.



 

겨울 여행은 캐리어무게가 만만치 않다.



  하늘과 공기의 인상이 오후 4시쯤 되어 보였다. 기차는 내내 흐린 빛과 텅 빈 벌판으로 줄기차게 달렸다. 그러나 그 풍경이 스산하거나 을씨년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농가의 굴뚝에서 퍼지는 연기의 따스한 펄럭임 때문이었으리라. Paul의 치킨 샐러드와 크루아상, 청포도는 눈에 보이는 색처럼 맛도 또렷했다.        

  스트라스부르 역사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무척 많았다. 그들의 삼엄함으로 인해 여행자의 낭만이 느껴져야 할 역의 풍경이 딱딱해지긴 했지만 안전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라스부르 역은 거대한 누에고치 모양으로 프랑스에선 흔히 볼 수 없는 현대식 건물이었다. ‘길’이라는 뜻의 스트라스(Stras)와 ‘마을’이라는 의미의 부르(bourg)의 합성어인 스트라스부르는 라인 강을 맞대고 독일과 접해 있는 국경도시다. 국경까지는 3km, 자전거를 타도 15분이면 독일로 넘어갈 수 있으므로 독일로 출근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매일 아침 다른 나라로 출근을 하다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스트라스부르 역




  스트라스부르는 도시 곳곳이 라인 강의 운하를 끼고 발달한 도시다. 그런데 도시의 여기저기의 건축물에서 독일스러움이 물씬 풍겼다. 알고 보니 스트라스부르는 1870년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 그곳을 점령한 독일이 광대한 도시계획에 따라 세운 도시였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독일 양식의 건축을 볼 수 있으며 프랑스 속 독일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스트라스부르는 원래 17세기까지 독일에 포함된 지역으로 신성로마제국에 소속된 도시였는데  프랑스가 30년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전리품으로 이 땅을 획득했고 그 후 프랑스와 독일은 이 도시를 차지하기 위해 빈번한 싸움을 했다. 1881년 독일군이 파리까지 쳐들어왔을 때 프랑스는 파리 대신 알자스와 로렌을 독일에 넘겨주었다. 그렇게 알자스는 파리를 살리기 위한 심청이처럼 인당수에 바쳐져 1919년까지 독일 식민 아래에 있었다. 그렇게 긴 역사 동안 알자스는 수없이 독일령이 되었다가 프랑스령이 되었다가 하는 서러운 세월을 겪었다. 2차 세계 대전 중 1940년 무렵 다시 나치가 점령,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다시 프랑스 땅이 되었다. 
 
   스트라스부르는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된 도시이다. 독일이 침공해왔을 때 마지막으로 모국어(프랑스어) 수업을 하는 교실의 풍경을 통해 나라 잃은 설움을 알퐁스 도데가 절절하게 쓴 소설이다. 
 


출처 : www.occalivre.be(좌), www. babbllio.com(우)


   서양의 최초 금속활자와 활판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가 활동한 도시 역시 스트라스부르이다. 구시가지에 세계 최초로 독일어 성경을 찍어낸 구텐베르크 동상이 있다. 회전목마와 노점상 수레들이 광장을 메우고 있어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구텐베르크 동상


전 세관 사무소지만 현재는 로컬 푸드 직매장

 

로컬 푸드 직매장 입구






 ‘1000 ans’라고 써진 반짝이 현수막이 걸려있다. 노트르담으로 향하는 골목엔 성당을 짓기 시작한 지 1,0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는 하얀 천사와 눈꽃 송이 모양의 조명들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마치 붉은 돌로 짠 레이스처럼 붉은 사암의 노트르담의 조각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종교하고 섬세했다. 1015년에 짓기 시작하여 1439에 완성된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천문 시계를 가지고 있다. 매 시각 15분마다 성당 천문 시계탑에서는 아기, 소년, 어른이 시간을 알리고 마지막은 죽음의 신이 나와 인간의 일생을 재현한다. 이 대성당은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진 문들과 비대칭 정면으로 구성돼 있으며 루앙 대성당 다음으로 높다고 한다. 모차르트가 스트라스부르에 머무는 3주 동안 연주한 성당이기도 하다.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 성당
항상 정겨운 우체국



  스트라스부르는 노트르담 말고도 쁘띠 프랑스가 유명하다. 쁘띠(petite)는 작고 귀여운, 사랑스러운 이라는 뜻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게 단순히 우리는 작고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을법한 곳을 찾아다녔었다. 그러나 쁘띠 프랑스는 그 뜻이 아니었다.      



  한 때 유럽에서 프랑스병으로 불리던 매독에서 유래한다. 1495년 나폴리 원정에서 돌아온 프랑스 군인들에 의해 유럽 전역에 매독이 급속히 퍼졌다. 그때 당시에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가죽을 손질할 때 많이 쓰던 수은을 매독의 치료약으로 썼다. 그리고 스트라스부르에 환자들을 격리시키기 위한 요양소를 세웠는데 이 요양소를 독일인들이 조롱하는 의미로 쁘띠 프랑스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스트라스부르는 독일어로 매독을 ‘프랑스인 병’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 주변이 작은 프랑스란 별칭이 생기게 된 것이다.



     

2015년 1월 23일 금  비 내린 후 흐림
보방 댐

  


  스트라스부르에선 예쁜 목조 가옥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정확하게는 뼈대가 나무로 된 목골 가옥이다. 스트라스부르는 유독 지붕의 경사가 심하고 창이 많다. 그 이유는 잦은 외세의 침입에 대비한 비상식량을 다락방에 저장하는 것을 법으로 정했고 음식이 썩지 않도록 지붕에 환기창을 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벽에 나무 격자가 있는 독일 전통 가옥의 형태인 파흐베르크 하우스(Fachwerkhaus)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시가지가 예쁘다.  집의 기둥, 들보 따위를 나무로 만들고 그 사이사이에 벽돌, 흙을 채워 메우는 건축 구조인 하프팀버는 북유럽과 영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들과 다르게 근대화의 이름으로 짧은 시간에 사라진, 아니 없애 버린 우리나라의 초가집과 기와집이 아쉽기만 하다. 오래된 나무 대문, 서까래와 마루, 돌확과 다듬이돌, 외양간의 여물통 얼마나 정겨운 이름인지...



오래된 목조 건물들


  코르보 다리는 애원의 다리'라고도 불리는데 과거에 주요 범죄자들이 익살형에 처해졌던 곳으로 유명하다. 죄수를 집어넣은 케이지를 물 밑으로 빠트려 익사시켰다고 하는데 주로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들이 물고문을 받던 장소였다고 한다. '너희 중에 조 짓지 아니한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했다. 고문을 했던 남자들은 과연 얼마나 바른생활 사나이 었을지...          




묵직한 흐름

수 백 년을 버텨온 집, 

천 년의 성당,

묵묵히 흐르는 강,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축축함,

따뜻한 불빛, 

차가운 공기,

별다른 대화 없이 강가를 거닐던 시간

지나감일지언정 아름다웠으로므

입가에 미소가 어른거린다. 


아름다운 코발트, 흐림 속의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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