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억의 온도 2 (밀라노, 꼬모 라고)
두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밀라노 중앙역 역사는 궁전처럼 어마어마하다. 에스컬레이터로 1층으로 내려가려고 하는 순간 어깨에 맨 크로스 가방 쪽에 어떤 촉감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린 순간 내 가방을 뒤지려다 실패한 눈빛과 마주쳤다. 열댓 살쯤 보이는 여자애다. 청순하고 순수한 낯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재수 없이 걸렸다는 듯 그 당당한 눈빛은 도도하고 거칠었다. 두 명이 한 조였다. 꼼짝 않고 서서 맹수의 기를 꺾을 태세로 째려봤다. 한동안 주변을 배회하던 그들이 포기한 듯 반대편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 걸 확인한 후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기분이 영 찝찝했다. 역사 밖으로 나와 주변을 스캔하던 중 예약한 <호텔 뉴욕>이 바로 포착되었다. 밀라노의 일정이 2박으로 짧은데다가 지하철이 있으니 중앙역 앞이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두오모 쪽은 상대적으로 가격도 비싸고 짐을 끌고 많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일도 힘들 거라 판단한 것이다. 내 예상은 주효했다. 호텔 방은 이름이 풍기듯 대도시가 주는 이미지처럼 작지만 깨끗했다. 체크 인 시각이 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준비된 방이 있어서 일찍 들어갈 수 있었다.
밀라노를 굳이 일정에 넣은 까닭은 두오모와 라 스칼라 극장 때문이다. 10년 전 밀라노를 찾았을 때엔 두오모에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 조차 몰랐고, 라 스칼라 극장은 3년간의 보수 공사에 돌입해 폐쇄한 상태였다. <설국열차>로 더 유명해진 배우 틸다 스윈튼이 영화 <아이 엠 러브>에서 밀라노 두오모에 올라가 밝은 태양과는 반대로 복잡한 심경을 표현했던 장면이 가슴 아리게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밀라노에 다시 가면 두오모에 꼭 올라가리라 작정했었다.
짐을 부려놓고 지도를 얻어 들고 밖으로 나왔다. 사흘 동안 좁은 골목을 걷고 수로로 배를 타고 이동했던 것에 벌써 익숙해진 것일까? 대처에 처음 온 시골뜨기처럼 대도시의 빌딩과 속도가 마뜩했다. 남자들만 예쁜 여자 쳐다보는 게 아니다. 세계적인 패션 도시니 만큼 말쑥하게 코트와 장장을 차려입은 이태리 신사들을 구경하느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은 셀프서비스였다. 식판에 포크와 나이프를 챙겨 든 다음, 빵이나 음료, 샐러드, 피자, 생선 요리, 과일, 젤라토 등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담은 후 마지막에 계산을 하고 먹으면 되었다. 시내 중심가였지만 값싸고 빨리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런 음식점은 여행자들에게도 제격이다. 빵과 콜라, 피자와 그릴에 구운 생선, 샐러드와 모둠 과일로 모처럼 만찬 같은 식사를 했지만 값은 20유로 남짓했다.
이탈리아의 코스 요리는 복잡하고 길다. 식욕을 돋우는 식전주를 마시고 안티 파스토, 즉 파스타 앞에 먹는 요리로 수프나 빵을 먹은 후, 프리모 피아또로 파스타나 리조또, 피자 한 판을 각각 먹는다. 그리고 쎄 콘도 피아또로 육류 요리나 생선 요리, 그다음은 포르마지오 단계로 치즈나 과일, 돌체 단계에서 아이스크림이나 티라미수 같은 달달한 초코 케이크를 먹고 식후주와 커피를 마셔야 끝이 난다. 그러니 격식 있는 레스토랑에 두 사람이 들어가 달랑 피자 하나와 파스타 하나를 주문하는 건 왠지 껄끄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우리는 파스타와 피자를 공유하여 나눠 먹기까지 한다. 그 흔하디 흔한 와인 한 잔도 도무지 시키는 일이 없다. 콜라나 커피 한 잔, 또는 물 한 병을 주문하고 식사를 할라치면 왠지 뒤통수가 가렵기 마련이다.
점심을 먹고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라 스칼라 극장이다. 다음 날, 오페라를 관람할 곳이다. 극장 앞 작은 광장 중앙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네 명의 제자 동상이 있다. 각국의 여행자들이 깃발을 따라 움직인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몇 분 간 사진을 찍고 어디론가 바삐 떠나곤 했다. 다른 여행지와 비슷하게 대부분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관광객들이 많다.
“깃대 부대 또 왔네, 저 사람들은 규슈에서 약초 캐다가 온 거 같아”
“어떻게 알아”
“얼굴이 꼭 호미로 밭 갈아 논 거 같잖아”
남편은 그들 틈에 끼어있지 않은 사실이 꽤 좋은 모양이다. 단체 여행자들을 제외하고도 우리처럼 벤치에 앉아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현지인들이 많았다. 명소이긴 하지만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그날 그곳에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피렌체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라 스칼라 극장 정면에서 약간 대각선으로 보면 대형 아케이드가 있다. 1870년, 영웅 가리발디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는데 후원한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가 초대 왕이 되었음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이다. 현재는 프라다며 구찌, 고급 카페가 도열해 있는 쇼핑몰이다. 그림 같은 대리석으로 치장해 놓은 바닥 하며 유리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천장은 휘황찬란하다. 그곳을 통과하면 광장과 함께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이 떡 하니 마법처럼 등장한다.
밀라노의 두오모를 처음 보는 사람이면 일단 그 덩치에서 입이 떡 하니 벌어지기 마련이다. ‘와아~~’ 남편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어 광장 중앙에 있는 동상을 보더니 호기심 많은 다섯 살짜리 꼬마처럼
“저 사람이 누구야?” 묻는다.
유독 동상이 많은 유럽에서 그들이 모두 누구인지 알 수는 없는 일이련만 그때마다 내게 묻는다. 하지만 매번 스마트한 답을 주지 못하는 나는 더욱 갑갑하다.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였다. 무려 500년 동안 건축을 했다는 두오모는 1882년에 시작하여 아직도 건축 중인 바르셀로나의 파밀리아 사그리다 성당보다 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오백 년이라니…? 조선 왕조 오백 년 아닌가? 이 사람들은 스케일과 마인드가 우리와 다르다.
밀라노의 두오모 꼭대기는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가면 8유로,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12유로. 공짜라면 혹시 모르지만 돈 내고 굳이… 하며 엘리베이터를 택했다. 3-4명이 겨우 탈 수 있는 소형 엘리베이터로 옥상 테라스까지 올라갔다. 어떠냐고? 결론은 ‘밀라노의 두오모 지붕에 올라가지 않고서 두오모를 봤다고 하지 마라’. 정면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첨탑이 높이와 모양을 달리 하고 서있다. 그 끄트머리엔 저마다 다른 성인들의 조각이 세워져 있다. 돌조각이 레이스처럼 치밀하게 아름답다. 루카 구아다그니노 감독에게 고맙다. 그가 영화 <아이 엠 러브>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곳에 올라가지 않았을 테니까.
수많은 영화들이 마음의 궤적과 파장을 스크린에 담아내기 위해 애쓴다. 새로 찾아온 감정이 삶의 행로 자체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전까지 누적된 기나긴 시간 전체와 겨뤄서 이겨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영화들은 순간이 세월을 삼키는 모습을 너무나 쉽게 가정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아이 엠 러브>는 그 순간의 에너지와 방향성을 창의적이고도 폭발적인 방식으로 제시하고 묘사한다. 그러므로 고전적이고 우아하면서 야단스러울 정도로 감각적인 이 영화는 무시로 내 마음을 일렁거리게 했다. 영화 <아이 엠 러브>는 도덕을 넘어서는 것이 악이 아니라 어두운 게 악이라고 말하는 영화다. 그건 이 영화가 눈부신 생의 찬가라는 사실과 일치한다.
여자의 남편 탄크레디는 사위가 평탄한 지역의 대저택에 살고, 그 여자의 애인 안토니오는 좁고 굽은 길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산 위 오두막에 산다. 딸 베타가 남자친구 그레고리오가 아닌 동료 여선생 앙가라드를 사랑한다는 편지를 우연히 읽은 엠마는 밀라노 두오모 계단을 거침없이 오른다. 칼날 같은 햇빛이 피뢰침 같은 첨두를 때리고 있다. 성당 벽면은 마리아와 예수, 성인들의 성화로 가득하다. 그녀는 빨려 들어가듯 성큼성큼 두오모에 오른다. 레이스 같이 조각해 놓은 두오모의 첨탑이 도열하듯 그녀를 맞이한다.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성당의 첨탑은 주인공의 화를 한층 끌어올리는데 안성맞춤이다. 그곳은 겉과 속이 다른 도시의 불신과도 같다. 옹색한 내면을 감추기 위해 겉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재벌가의 불안과도 닮아있다. 그녀에게 두오모는 도시의 처음과 끝이었다. 밀라노에서 가장 높은 그곳에서 그녀는 감옥에 갇힌 듯 옴짝달싹 못하는 자기 자신을 만난다. 편지를 손에 쥔 채 더 높은 첨탑을 올려다보는 장면에 이어진 씬은 산레모의 산속 안토니오의 집이다. 자유롭게 사는 사람은 무너질 삶이 없다. 반대로 완고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무너지면 치명적이다. 돌이킬 방도가 없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메트로를 타고 가리발디 역으로 가서 꼬모 라고로 가는 기차를 탔다. 레지오날레 기차는 좌석이 지정되어 있지 않으니 아무 데나 맘에 드는 곳에 앉으면 된다. 2층으로 올라갔다. 텅 빈 2층 좌석엔 오직 남녀 한 쌍 만이 있었다. 그들은 좌석 깊숙이 몸을 묻고 입맞춤에 빠져 있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 다른 칸 2층으로 올라갔다.
꼬모 호수는 빙하가 녹은 물로 형성된 것으로 길이가 45Km나 된다. 바다 같다. 호수 주변엔 그림 같은 집들이 산자락을 휘감고 들어서 있다. 10년 전, 여름에 그 아름다운 호숫가의 전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사진 몇 장 찍고 떠나야 했던 그 짧은 만남의 아쉬움이 다시 그곳을 찾게 했는지도 모른다. 겨울이라 여행자는 거의 없다. 푸니쿨라를 타고 산의 정상으로 올라가는 방법도 있지만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아마도 그건 쓸쓸함을 즐기기 위한 방편이었을 거다. 원래는 벨라지오까지 가려고 했으나 왕복 4시간의 시간도 부담스럽고 출항하는 배 시간도 안 맞았다. 그 대신 한 시간 거리의 토르노까지 가는 배를 탔다. 배는 여러 마을을 차례로 들르며 호수 구석구석의 집들을 보여주었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고 희부연 안개 때문에 시계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화가가 화창한 날에만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다. 흐림 속에서도 수 백, 수천의 집들은 모양과 색깔, 크기가 모두 다르게 호수를 수놓으며 은은히 빛을 내고 있었다. 그중 많은 집들이 계절 별장으로 쓰이는 것이리라 짐작했다. 좁은 골목엔 인적의 온기가 없다. 그러나 굳게 닫힌 어느 창문 안에서 작은 음악 소리가 자란자란 들리기도 했다. 똑같은 문도 똑같은 지붕도 없다. 작은 성당 내부는 밖에서 예견되었던 소박함과는 달리 무척 고상한 아름다움으로 색다른 묘미를 주었다. 토르노에서 놀아와 둘러본 꼬모 시가지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광장이 있고 두오모는 운치 있고 조용했다.
꼬모에서 화덕에 구운 피자로 맛난 점심을 먹고 밀라노로 돌아왔다. 산타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성당에 가려고 까도르나역에서 내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 진품이 있는 곳이다. 그림을 보려면 예약이 필수다. 여행 전, 예약할 날짜를 달력에 표시해놨으나 어찌하다 놓쳐 버렸다. 이틀 후 웹사이트에 들어가니 내가 가려고 예정한 날의 예약은 이미 모두 끝나버린 상태였다. 그림을 볼 수는 없지만 성당이라도 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도무지 지도를 봐도 방향을 잡지 못하겠다. 그럴 때는 묻는 게 최고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아는 길도 물어가라. 돌다리도 두드려라 하지 않던가. 메트로에서 내려 몇몇 사람에게 물어보고 이쪽저쪽으로 다 가봤지만 웬일인지 교회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웅장하고 위엄 있는 다갈색의 거대한 건축물을 발견했다. 비스콘티 가문 소유의 스포르 체스 코 성이다.
그곳엔 미켈란젤로가 죽기 사흘 전까지 조각을 하다 멈춰진 미완의 대작 <론다 니니의 피에타>가 있다. 성을 한 바퀴 돌고 나와 드디어 산타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성당을 찾을 수 있었다.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그림을 볼 수 있냐고 물어보니 그날 관람은 막 끝났다고 했다. 아쉽지만 아름다운 성당 외관을 둘러보고 나와 달달한 도넛과 카푸치노로 저녁 식사를 대신했다. 모처럼 와이파이 프리 카페를 만나서 스마트폰으로 느긋하게 국내 뉴스를 검색할 수 있었다.
라 스칼라 극장에 도착하니 오페라가 시작하기까지는 대략 한 시간 이상 남아 있다. 서울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 문화회관 같은 곳은 로비가 넓으니 공연 시간과 상관없이 거의 언제나 오픈되어 있다. 그러나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유럽의 공연장들은 딱히 로비라는 개념의 공간이 없다. 공연 20-30분 전에 문이 열리면 티켓을 확인한 후 좌석이 있는 쪽의 입구를 통해 직접 들어가는 시스템이다. 문이 열리길 기다리다가 아트 샵에서 CD와 기념품을 구경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박스 전집이며 DVD 등이 유난히 눈에 많이 보였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 자니까 그렇겠지 생각했다. 그때까지도 별다르게 의아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날의 프로그램은 이태리 작곡가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이다. 여행 일정을 맘에 드는 음악회 프로그램에 맞출 수는 없다. 음악회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백미는 간주곡인데 영화 <대부>에서 알 파치노의 딸이 살해당했을 때 흐르던 음악이다. 그 오페라는 아직 본 적이 없고 지휘자 다니엘 하딩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나름 기대감이 컸다. 하딩은 영국 사람으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객원 지휘자이며 말러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지휘자이다.
각층엔 역시 여타 공연장과 다를 바 없이 의상 보관소가 있다. 코트를 맡기고 좌석을 찾아 앉았다. 값싼 4층 좌석이지만 무대가 바로 아래쪽에 보이는 위치의 발코니석이다. 오케스트라 박스의 지휘자 모습도 훤히 보인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처럼 극장 내부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막이 열렸다. 아름다운 발레리나가 하얀 의상을 입고 죽은 듯 카우치에 기대어 앉아있다. 음악이 시작되자 등장한 발레리노가 여인을 깨운다. 영화 <베니스에서 죽다>에 나온 슬픔의 환희를 표현한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이다. ‘왜 오페라가 아니고 말러 음악에 발레?’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을 뿐이다. 천상의 아름다움으로 펼쳐지는 발레와 음악에 오페라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휘자의 손 사위마저 춤을 추듯 우아하다. 어떻게 음악이 지나갔는지 기억에 없다. 박수에 이어진 곡은 베버의 <무도에의 권유>, 또 다른 남녀 무희가 나와 춤을 춘다. 한 바탕 왈츠를 즐긴 후, 신사를 의미하는 첼로와 숙녀를 의미하는 플루트가 마지막 인사를 한 뒤 음악은 끝이 났다. 그리고 인터미션이다. 복도로 나가 브로우셔를 가져다 읽어보고 궁금증이 풀렸다.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단막으로 한 시간 남짓한 짧은 극이다. 그러므로 두 곡의 음악과 발레가 보너스처럼 들어있던 것이다.
지금까지 라 스칼라 극장의 무대에 선 우리나라 성악가는 조수미를 비롯하여 8명뿐이다. 그곳에서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세계가 인정한 가수라는 뜻이다. 과연 오페라 가수들의 연기와 노래, 오케스트라는 수준급이었다. 게다가 의자 앞쪽에 오페라 가사를 영어 자막으로 보여주는 개별 스크린이 부착되어 있어 무척 편리했다. 아침 일찍부터 꼬모 호수를 시작으로 하루 종일 쏘다닌 피로가 스르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발바닥과 종아리가 아우성을 쳐댔다. 그러나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마켓에 들렸다. 장기간의 여행에서 속옷과 양말 세탁은 필수, 세탁용 비누와 오이피클, 1회용 컵 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