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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Oct 23. 2016

문자 카메라로
마음을 찍는 사진

브런치, 176일





  한 권의 책, 거기서 읽은 하나의 문장으로 세상의 온갖 좋은 것, 사소한 것, 심오한 것들이 시작되었음을 나는 배웠다. 그 한 문장이 나를 다른 책으로 이끌고 다시 그 책이 훨씬 더 많은 다른 책으로 이끄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서점의 긴 의자에 푹 파묻혀 있으면 나는 케냐나 페루를 여행할 수 있었고 영국식 정원에서 방탕에 빠질 수도 있었으며 배에 실려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갈 수도 있었다. 나는 자유자재로 남자나 여자, 아니면 어린아이 혹은 유령이 될 수 있었다.     -    루이스 버즈비의 「노란 불빛의 서점」 중


    

  




책을 선택한 후 요금은 자율적으로 요금함에 넣는 무인 서점
웨일즈, Honesty Bookshop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76일,

57개의 글을 올렸고 132명이 내가 쓴 글을  다시 보겠다고 했다. 

브런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유럽 어디나 왕복 항공권’이라는 광고 문구 때문이었다. 

브런치의 개념이나 운영 방식도 모르는 채 작가 신청을 했다. 

그리고 사흘 후, 작가가 되었다는 답을 받았다. (사실 작가라는 단어가 불편하다)


그렇게 루프트한자와 론리플래닛 매거진의 공모전에 3편의 글을 응모했다.

젊고 싱그러운 작가들의 톡톡 튀는 글 솜씨와 감각적인 사진들이 수두룩했다.

'에구~~ 내가 무슨 상을 받을 수 있겠어?'  

수상작 발표 일주일 전, 브런치에서 E메일을 받았다. 

'우수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https://brunch.co.kr/@brunch/44

기분이 묘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기억할 수 없을 것들에 대한 기록의 의미.


음악은 시간 예술이다. 

시간과 함께 지나가고 끝이 난다. 

음악이 내게 주었던 순간적인 느낌을 쓰고 싶었다. 

음악회에 다녀오면 새벽까지 리뷰를 쓰곤 했다. 

CD와 DVD는 소리의 기록일 뿐이다.

나는 소리의 느낌을 기록하고 싶었다. 


 

필하모니 드 파리



그림도 마찬가지다.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명화를 본다. 

그 감동 역시 지나간다. 

지워진다. 


좋아하는 영화를 쓰기 시작했다. 

여행을 좋아한다. 

아름답거나 힘들거나 행복했거나 모두 지나간다. 

그런저런 곳엔 갔었지 하며 기억할 수 없을 것이 될 것을 안다.

그러므로 여행도 쓴다.  


기차를 타고 지나가며 보았던 겨울나무에 붙은 겨우살이를,

친절한 길 안내를 해주었던 한 소년을,

온갖 창과 문의 표정을,

다투어 피어 있던 꽃들의 웃음 소리를,

낡은 골목의 세월을...     


이탈리아 작곡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악보



사진은 시간의 기록이다. 

1살 때의 내 모습을 카메라가 기록했듯, 

글 또한 시시각각의 생각과 느낌, 발걸음의 궤적을 낱낱이 남길 수 있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문자라는 카메라로 마음을 찍는 사진이다.  

그러므로 쓴다. 


글은 마음을 기록하는 사진이다. 

기록은 나를 깨어있게 한다.

기록은 나를 편하게 해준다.

머리 속에 들어있는 서랍 정리 같은 의미이다.



낡은 타이프 라이터의 묵직하면서 경쾌한 소리가 그립다.



음악이 팔랑팔랑 지나가고 찻잔이 식어가도 

몇 글자 끄적이는 이 몸짓이 그냥...

좋다.



필하모니 드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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