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이름 스칸디나비아 (1. 스톡홀름)
'훌쩍 떠났습니다'
라고 하면 이런 생각이 들겠죠?
남아도는 시간과 돈과 여유의 삼박자가 철철 넘치는 사람 인가 보다...
'훌쩍'의 답은 싶음에서 시작합니다.
저는 싶음을 싶음으로 놔두지 않습니다.
나와의 타협을 마치면
떠나는 거죠.
오늘은 언제나 단 한 번뿐,
오늘의 싶음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므로
훌쩍
떠났습니다.
왠지 그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스칸디나비아는
어떤 이유 때문인지 푸르름이 느껴집니다.
그리그의 음악과 뭉크의 그림 같은 차가움,
아바와 말괄량이 삐삐, 입센과 안데르센의 온화함,
노벨의 너른 사랑과 배포,
심플하고 미니멀한 가구와 주택이 주는 여백의 미,
그리고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은 노르웨이 피오르드
스칸디나비아는 오래도록 아껴두었고
두고두고 그리워하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훌쩍 떠났어요'
라는 표현은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게 스칸디나비아에 스미던 시간을 되짚는 이 끄적임이
행복할 것을 믿습니다.
스톡홀름 알란다 국제공항에서 알란다 익스프레스를 타고 도착한
중앙역에서 나오자마자 눈에 들어온 이름
Nordic C
북유럽 여행의 첫 호텔로 너무나 맘에 들던 이름,
디자인 호텔답게 심플하면서 화려했습니다.
그런데
창문이 없어요.
지하도 아닌데, 하물며 호텔인데 창문이 어떻게 창문이 없지?
그러나 창으로 보일법한 풍경이 한 장의 사진으로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다름을 긍정으로 여기며 스톡홀름을 품기로 했지요.
평소 소식을 하는 편입니다.
그 대신 자주 뭔가를 먹는 습관이 있지요.
그런데 여행을 떠나면 평소보다 많이 먹게 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요.
먹는 게 늘 즐거우니 여행자로서 일단 합격이지 싶습니다.
스톡홀름은 발틱해와 마라렌 호수가 만나는 곳에 1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 위의 아름다움'이란 이름이 늘 따라다니고 60 여개의 박물관이 있다고 해요.
박물관과 미술관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감성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톡홀름'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스톡홀름 신드롬,
그리고 노벨상입니다.
1973년 스웨덴에서 은행에 무장강도 4명이 침입했다고 합니다.
은행 직원들을 볼모로 잡고 있으면서 6일간을 경찰들과 대치한 사건으로
처음 관찰되었기 때문에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인질로 잡힌 사람들도 범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범인들에게 동화되면서 구출해주려는
경찰들에게 적대시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인해 사건이 끝났음에도 계속적으로
범인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질로 잡힌 사람이 범인에게 호감과 지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이와 같은 심리현상을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합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떼돈을 벌어들인 노벨은 스톡홀름에서 태어났습니다.
과학의 진보와 세계의 평화를 염원했던 그는
유산의 94%를 '노벨상' 설립에 남겼고
매년 인류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들에게 영광의 메달을 건네주도록 했지요.
노벨이 죽기 1년 전인 1895년, 그의 유언에 따라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
여섯 개 분야에서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을 수여하는데요.
노벨은 유언장에서 스톡홀름에 있는 스웨덴 왕립과학원 4개 기관을 노벨상 수여 기관으로 지목했고
노벨의 사망 5주기인 1901년 12월 10일부터 상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매년 10월 초에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그해의 수상자를 발표하고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는 평화상을 제외한 모든 시상식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열립니다.
다소 어두운 붉은 벽돌과 초록 지붕에 높다란 탑까지
언뜻 보면 성당이나 교회로 보이는 건물은 시청입니다.
시청사는 물이 보이는 리다르프예르덴의 제방 위에 아름답게 서 있습니다.
붉은 벽에는 초록색 담쟁이덩굴로 만든 여름옷을 입고 있더군요.
건물을 받들고 있는 대리석 열주는 베니스의 듀칼레 궁전을 연상시켰습니다.
섬세한 창문, 개방형 주랑, 그리고 꾸볼 모양의 탑 위의 황금 초승달 등
시청사는 언뜻 보기엔 투박해 보이지만 찬찬히 뜯어볼수록 아름다웠습니다.
노벨이 사망한 날인 12월 10일, 매년 스톡홀름 시청 블루홀에서는
노벨상(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문학상)이 시상됩니다.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가 밥딜런이라는 뉴스를 듣고 얼마나 감동했던지요.
문학상을 결정하는 스웨덴 아카데미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톡홀름 시청 블루홀은 이름과 달리 푸른색이 아니어서 의아했지요.
원래 설계 당시에는 벽돌 위에 푸른색으로 칠하기로 계획되어서 블루홀이라 명명되었으나
완공 후에 붉은 벽돌의 색이 아름다워 그대로 두었다고 합니다.
노벨상 시상식 후 연회가 열리는 황금의 방(GoldenHall)에는 1900만 개의 금박 모자이크 장식이 있습니다.
시청사 앞에 있는 멜라렌 호수에 비친 스톡홀름의 모습을 파노라마로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모래를 재료로 사용했는데 그림을 그리는 데 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오래된 마을이라는 뜻의 감라스탄은 13세기경부터 형성된 마을이라고 합니다.
좁디좁은 골목들이 아름답더군요.
앙증맞게 작은 가게들,
갤러리와 앤티크 샵,
개성을 가진 작은 나무 간판,
테이블과 의자들이 넘쳐나는 광장과 골목의 카페들,
수 백 년을 건너온 실핏줄 같은 골목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서 저마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복잡한 걸 싫어합니다.
사람이 많으면 당연히 복잡하고 혼란스럽지요.
감라스탄의 분주함과 복잡함이 그다지 기분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침 일찍이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금만 흐렸으면 골목의 운치가 살아날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감라스탄의 모든 골목들은 스토르토리에트 광장으로 모입니다.
그닥 큰 광장은 아니더군요.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즐비한 광장 한편에 ‘해골의 샘’이라 불리는 우물이 있습니다.
1520년 스웨덴을 지배하던 덴마크 왕이 스톡홀름의 귀족 90명의 목을 벤 후 모아 묻고
‘해골의 샘’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광장 한쪽에는 1776년에 세워진 증권거래소가 있습니다.
건물의 맨 위층에는 노벨상 수상자를 뽑는 스웨덴 아카데미 본부가 있고
1층은 노벨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소박한 간식 - 시나몬 롤과 커피, 그리고 과일(낡은 테이블과 의자가 맘에 들던 골목 한쪽)
한 청년이 행 드럼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그 악기를 처음 보고 들었지요.
소리와 모양이 하도 신기해서 연주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이름이 뭐냐고 물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행 드럼을 연주하는 버스커들이
전 세계 어디서나 쉽게 만나 지더군요.
몽롱한 음색 때문에 뭔가에 취하듯 쉽게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있습니다.
당장 하나 구해서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는데
악기 값이 꽤 비싸더군요.
‘행’이라는 이름은 핸드(hand)의 독일식 발음으로 손으로 연주하는 드럼입니다.
2000년 스위스 악기 제작사에서 만들었으며 행이라는 이름을 상표로 등록하였고
200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뮤직 메세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소개되었습니다.
타원형의 비행접시, 또는 우리나라의 솥뚜껑 두 개를 위아래로 마주 보게 붙인 모양으로
제가 본 경험에 의하면 사이즈가 다양합니다.
악기의 윗부분을 딩(Ding), 아랫부분을 구(Gu)라고 하며 딩의 원심인 꼭지에 솟아 있는 것을 돔,
그 주위를 둘러싼 평평한 부분을 숄더(Shoulder)라 합니다.
딩의 나머지 부분은 코러스라 하는데 이 부분에 7~8개의 홈이 일정한 간격으로 딩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홈들이 바로 소리를 내는 보이스입니다.
보통 연주자의 무릎 위나 스탠드에 올려놓고 연주하는데,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딩과 보이스를 두드리거나 표면을 문질러 소리를 냅니다.
딩의 돔 부분이 가장 저음이고 그 주위의 보이스들을 통해 7~8개의 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13세기에 세워진 대성당은 스톡홀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입니다.
왕실의 주요 행사가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로 검은 제단이 인상적이더군요.
그날 저녁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가 있다는 안내를 보았지요.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성당을 찾기로 했습니다.
휴식도 휴식이지만 얌전한 원피스로 갈아입을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감라스탄에서는 무엇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 없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물결 따라 흘러가다 보면 뭔가가 나타나니까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이 뭔가를 기다리고 섰더군요.
그곳은 스톡홀름 왕궁이었습니다.
국왕은 1983년부터 드로트닝홀름에 있는 궁전에 살고 있고,
이 궁전은 국빈을 위한 만찬장으로 사용된다는군요.
마침 근위병 교대식이 이루어질 시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땡볕에 몇십 분을 서서 기다렸을 텐데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교대식이 열린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일 정오 왕궁 광장에서 근위병 교대식이 1시간가량 개최되는데,
유럽 왕궁중 가장 긴 시간 근위병 교대식이라고 하더군요.
운수 좋은 날이라 할까요?
근위병 교대식은 흰색의 제복을 입은 군악대 마칭밴드를 선두로
푸른 제복을 입은 근위병들과 함께 대대적으로 실시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의식보다 더 볼만한 건
너 나할 것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들은 매우 진지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나라에서
얼마나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있는지
그들의 표정을 바라보는 것이 더 즐겁고 유쾌했답니다.
여기가 북유럽 맞아?
2년 전 같은 시기의 북유럽 날씨와는 판이하게 달랐지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햇살에 당할 재간이 없었습니다.
서늘한 저녁 대성당에 울려퍼질 요한 재바스찬의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을 기대하며
호텔로 돌아갔습니다.
스톡홀름, 뜨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