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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Nov 14. 2016

플롬, 시간을 그리다

설레는 이름 스칸디나비아  (5. 플롬)





오슬로에서 베르겐행 기차를 탑니다.

그리고 뮈르달에서 내려야 합니다.

중앙역의 티켓 머신에서 예약한 티켓을 발권했지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처럼 빨간색 옷을 입은 기차가 서서히 출발했습니다.       

오늘내일의 여정은 이렇습니다.     


오슬로(Oslo) - 뮈르달(Myrdal) - 플롬(Flåm) - 구드방겐(Gudvangen:송네 피오르드:sognefjord)

- 보스(Voss) - 베르겐(Bergen)     


기차 - 산악열차 - 페리 - 버스 – 기차


이 구간은 노르웨이 인어 넛 쉘 (Norway in a nutshell)이라는 이름의 패키지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간마다 티켓을 사는 게 약간 싸더군요.

조금 번거롭지만 그 방법을 택했습니다.





눈인지, 얼음인지, 대리석 같은 흰 돌인지 구분할 수 없는 하얀 것들이

호수 너머 산자락의 겨드랑이마다 하얗게 펼쳐져 있어요.

철교와 터널을 지나 기차가 달려갈수록 풍경은 다른 옷을 바꿔 입었지요.

기차가 Finse 역에 정차했습니다.

흰색의 정체는 설원, 맞습니다.

뭐에 홀린 듯 다들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호수의 이쪽은 여름이요, 저쪽은 겨울인 기이한 풍경이 이어졌습니다.




아침 일찍 나오느라 식사를 하지 못했어요.

미리 준비한 샌드위치와 커피에 후식으로 요거트 까지 든든히 먹었지요.

아! 기차에서 삶은 달걀을 빼놓으면 섭섭하죠?

기차 여행은 언제나 편하고 여유 있고 낭만이 있습니다.  

몇 개 역을 거쳐 어느덧 뮈르달에 도착했습니다.

4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꿈을 꾼 듯 휘리릭 지나갔지요.

만화 영화에서 볼법한 파스텔 톤의 동화 같은 집들이 드문드문 서 있습니다.

베르겐까지 직접 가지 않고 뮈르달에서 내린 이유가 있어요.

플롬에 들려 하루를 지내고 다음 날 송내 피요르드를 볼 수 있는 페리를 타기 위함이죠.

플롬으로 가기 위해서는 산악 열차로 바꿔 타야 합니다.     




빨간 기차 NSB는 떠났습니다.

NSB는 노르웨이 철도망이에요.

약 467km에 달하는 오슬로-베르겐을 운행하는 파노라마 루트는 해안과 강,

산과 평온한 들판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줍니다.

피요르드 투어는 노르웨이 NSB 기차와 버스와 유람선을 모두 합친 것을 말합니다.

유럽에서 가장 길고 가장 깊은 송네 피요르드를 경유하지요.     

하지만 뮈르달에서 플롬(Flåm)의 비탈진 계곡을 운행하는 기차는 NSB가 아닌 사철입니다.

지금도 간간히 NSB에서 메일이 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미리 예약을 꼭 해야 하는 것들이 많지요.

가령 항공이나 유레일 패스, 장거리 기차, 음악회, 미술관…,

그러다 보니 해외 사이트에 가입한 곳이 점점 늘어나기 마련이죠.

여행이 끝난 곳의 나라에서도 안내 메일은 수시로 날아듭니다.

다국적 메일이죠.

어떤 때는 외국에서 날아든 메일이 더 많은 날도 있어요.

오늘도 NSB에서 메일이 왔습니다.

간간히 추억을 되새김질해 주는 것 같아 나쁘지 않습니다.

가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지휘자나 연주자의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콘서트홀의 메일을 받으면

갈급한 맘에 속상하기도 하지만요.  

또 가게 될 것을 예감한다고 할까?

아니면 다시 가게 되길 희망하는 거랄까?

뭐 그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NSB


공기의 색이 달랐습니다.

해발 866.8 moh라고 쓰여있어요.

확연히 낮아진 기온은 물론이고,

온몸의 세포들이 블라인드를 걷고 다투어 열리듯 상쾌했지요.

배낭에서 긴 셔츠를 꺼내 입었습니다.

플랫폼에 바이크 렌털 샵이 있는 게 이채로웠습니다.

트래킹이나 하이킹을 즐겨하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겠지요.  

뮈르달에서 플롬까지 가는 산악열차는 지정된 좌석이 없습니다.

캐리어 같은 큰 가방은 객실 내에 갖고 탈 수 없어요.

기차에 연결해놓은 수레 같은 화물칸에 따로 싣는 구조더군요.

융프라우에 올라갈 때 스키만 따로 싣던 화물칸처럼요.

배낭을 멘 젊은이들과 자전거를 싣고 온 사이클 족,

얼굴 가득 설렘과 기쁨, 만족이 한데 어우러진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모르는 사람과 그저 우연히 눈이 마주칠 뿐이더라도

서로 미소를 지어주는 눈인사만으로도 엔도르핀을 전해 받듯 행복했습니다.



플롬 행 산악 열차는 수박 껍데기처럼 진한 초록색이에요.

객차의 내부가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기차더군요.

내부 공간이 협소하지만 그 좁은 실내 공간이 아늑했습니다.

산악 열차답게 지그재그인 산길을 곰처럼 어슬렁거리는 느릿느릿 오릅니다.

플롬까지 거리는 겨우 20킬로미터,

그러나 가파른 협곡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모자라

21개의 터널을 통과하기 때문에 1시간이나 걸립니다.


뮈르달에서 플롬까지 운행하는 사철: 기차 내부가 나무로 되어 있다.



기차가 중간에 멈춰 섰습니다.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다투어 내렸지요.

그곳은 키오스 포센,

폭포수가 멋진 물보라를 일으키며 우렁차게 떨어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점입니다.     

유난히 많은 폭포가 발달한 노르웨이는 폭포를 포센이라고 부른다고 해요.

위풍당당한 로테 포센,

거친 아름다움이 넘치는 비링스 포센,

웅장함과 우아함을 겸비한 마르달스 포센이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폭포도 키오스 포센의 박력 넘치는 모습에는 견줄 수 없다고 합니다.  


무려 93미터를 낙하해 절벽을 때리는데 마치 3단 치마처럼 층이 있었습니다.

겹겹의 사람들이 저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 역시 보이는 풍경만큼 장관입니다.

기차가 몇 분 간 정차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 초조했지요.


그런데 산 중턱 오른쪽에 전설의 고향에 나올법한 무너진 벽돌집이 하나 보입니다.

그 옆으로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언뜻언뜻 보였습니다.

춤을 추는 것 같아요.

처음엔 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여행자들을 위한 퍼포먼스로 산속의 요정처럼 나타나

신비하게 나타나 손을 흔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카메라를 한 껏 줌으로 당겨 자세히 보니 춤이더군요.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에 묻혀서 그렇지 언뜻언뜻 음악도 들리는 듯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행객을 위해 폭포의 물보라를 배경으로

노르웨이 목동들의 전설 속 요정인 훌드라(Huldra)를 재현하는 춤 공연이라고 해요.

제 추측이 틀리지 않은 걸 보니 그 무희의 아련하게 보일 듯 말듯했던 춤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것이죠.


훌드라(Huldra)를 재현하는 춤



5분 남짓 서 있었을까?

기적 소리가 들립니다.

‘어서 타세요, 이제 갑니다’ 하는 뜻이죠.

탈출하듯 쏟아져 내렸던 사람들이 속속 기차에 올라타고 다시 출발했습니다.

물살이 거칠게 흐르는 강과 험한 지형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목가적인 풍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간간히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이게도 했어요.

보라색 들꽃이 밭처럼 펼쳐진 들판과 드물게 서 있는 노란, 초록의 집들은

보는 이의 눈을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플롬에 왔습니다.

대체 이렇게 깊은 산골짜기에 물길이 얼마나 크고 넓으면

저렇듯 대형 크루즈가 들어오고 정박할 수 있는지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페리와 기차와 크루즈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형형색색의 옷차림이

피요르드에 핀 오색의 꽃 같아 보였습니다.


    



원래 북유럽의 물가가 무섭게 비싸기도 하지만

플롬의 호텔은 우리에겐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유스호스텔,

middle age가 youth에게 살짝 미안한 맘은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답니다.

투 베드의 싱글 룸에 시트와 타월 요금을 포함시키니 그 또한 호텔 1박 요금에 버금갔지요.(13만 원)

다리를 건너고 흐드러진 꽃들이 피어있는 유스호스텔은 멀지 않았습니다.

방갈로처럼 조그만 리셉션 건물에서 키를 받았어요.

사과나무에 파란 애기 사과들이 올망졸망 달려있습니다.

호스텔 나무 벽에 마르셸 뒤샹의 샘을 연상시키듯 소변기가 달려 있어요.

그곳에 피튜니아가 심어져 있어요.

재미있는 발상이 유쾌했습니다.



어쩌면 캠핑카에까지 꽃바구니를 걸어놓을 생각을 했을까요?

옅은 회색의 러그, 그 위에 두 개의 블랙 암체어(접이식)가

흰색의 사각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있습니다.   

캠핑장 입구에 주차한 호텔 스위트룸처럼 하얀색으로 꾸민 캠핑카를 지나가며

그네들의 여유롭고 아름다운 생각이 부러웠어요.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꾸며 놓아 아름다운 캠핑 카


우리가 묶을 방은 2층 끝 방이고 거실과 욕실, 주방은 셰어 하는 구조로,

도미토리가 아닌 단독 트윈 룸이라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벽과 가구가 모두 밝은 색 단풍나무여서 쾌적하고 깔끔한 분위기가 맘에 들었어요.

창문엔 자잘한 꽃무늬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나름 목가적인 운치를 보여주었죠.

작으나마 발코니도 있고요.

플롬 호스텔은 가격 대비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 만족스러웠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밖으로 나갔지요.

내일 구드방겐으로 갈 페리 시간표도 알아보고 먹거리도 사야 했으니까요.


호스텔 방에서 내다 본 풍경



그런데 이걸 어쩌면 좋아요.

집들이 모두 예쁨 예쁨,

색도 모양도 하물며 간판의 글씨체도 모두 다른데 그게 다 예쁜 거예요.

물고기 비늘 모양의 지붕까지요.

정박 중인 크루즈의 이름이 ‘오케스트라’

그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하나의 악기가 되어 하모니를 이룬다는 뜻이겠죠?

물길과 철로와 도로가 나란히 갑니다.


수퍼 마켓 쿱


     

산그늘이 점점 늘어 가는데 불이 켜진 듯 가운데만 환한 곳이 보였어요.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물 건너 저편 나무 테이블에 노부부가 앉아있습니다.

두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몇 살인지,

지금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아무 상관이 없었지요.

그들은 그대로 풍경이었습니다.  

마치 만 년 전 빙하가 깎아 만든 계곡에 바닷물이 흘러들어 만들어진

신의 조각품인 피요르드 옆으로 우뚝 솟은 산처럼

그들도 그 옛날부터 그곳에 있어온 듯 풍경처럼 아득하고 자연스레 앉아있었습니다.

참 보기 좋은 모습이었어요.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더이다.     





기념품 샵에 들어갔어요.

눈의 결정체 모양의 수가 놓인 회색 펠트 모자에 빨간색 바이어스가 둘러져 있습니다.

노르웨이 풍이더군요.

주저 없이 기쁜 마음으로 샀지요.

스위스 마켓 체인인 COOP이 있더군요.

그곳에 들러 저녁 먹거리로 빵과 소시지, 우유, 과일 들을 사서 호스텔로 돌아갔습니다.


500여 명의 주민이 산다는 플롬의 마을 산책은 아침으로 남겨두었어요.

눈이 맛있는 걸 너무 한 번에 다 봐버리는 게 아까워서일지도 몰라요.

아무튼 친구와 난 여행 중 아침 산책을 즐기니까요.

호젓하고 조용한 거리, 또는 골목, 산길도 좋고요.


플롬~

입에서 상큼한 풀 냄새가 나면서 고소하게 느껴지는 마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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