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이름 스칸디나비아 (8. 헬싱괴르)
삶은 여행입니다.
그러니 이런 의문은 필요 없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궁금하데요.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서 돌아오는 걸까?
큰 숨 몰아쉬며 연신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창 밖으로 내다봅니다.
각각의 사연과 이야기를 갖고 떠나고 돌아오는 공항은 늘 설레게 합니다.
저 또한 그 하늘길로 내려왔고 이틀 후면 다시 저 하늘 위에 떠 있을 테지요.
아침에 햄릿의 성으로 가기로 했어요.
사실 셰익스피어는 덴마크는 물론, 헬싱 게르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크론보르 성에도 당연히 가본 적이 없죠.
그런데 햄릿에 나오는 성의 구조나 분위기가 크론보르와 너무 같아서 소설을 본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고 해요.
셰익스피어는 덴마크의 전설적인 영웅인 홀거 단스케의 이야기를 듣고 햄릿을 썼습니다.
단스케는 덴마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잠에서 깨어나 조국을 지켜주었다고 해요.
그 단적인 이야기만으로도 햄릿이 연상되죠?
햄릿은 스칸디나비아의 전설 속에 나오는 왕자 이름 암렛(Amleth)에서 마지막 철자인 'h'를 앞으로 가져다가 햄릿(Hamlet)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 햄릿의 무대가 되었다고 전해지는 크론보르 성은 헬싱 게르라는 도시에 있어요.
헬싱 게르는 코펜하겐의 북쪽에 있는 조그만 항구도시로 헬싱족이 사는 성이라는 뜻입니다.
기차를 타고 30분쯤 갔지요.
비가 내리거나 그치거나를 반복해서 조금은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8월의 북유럽은 초가을 날씨예요.
기차에서 내려 해안선을 따라 걷습니다.
바다를 끼고도는 구부러진 철로가 부드러운 직선 같아요.
해안선 끝, 낮은 언덕에 성이 보였습니다.
누런 밀밭을 배경으로 서 있는 크론보르 성이 오래된 유화처럼 따뜻해 보입니다.
햄릿의 배경이 되었다는 이유로 여름에는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종종 상연된다고 해요.
또한 덴마크 국왕 부부의 중요한 왕실 행사도 열린다고 합니다.
2016은 셰익스피어(1564~1616) 서거 400주년이에요.
햄릿 다시 한번 봐야겠네요.
우리는 성으로 들어가지 않고 시가지로 곧장 걸어갔어요.
시내 중심에 올라이 교회가 우뚝 서 있습니다.
시청도 보이네요.
우리가 너무 부지런한가요?
아니면 주민들 모두 느긋한 아침잠을 즐기는 걸까요?
거리엔 사람들이 거의 없더군요.
그런데요.
건물들의 컬러가 너무 예쁜 거예요.
사진 찍기 좋았죠.
저는 개인적으로 흐린 날의 사진 색감을 더 좋아한답니다.
명도가 떨어지면 채도가 올라가거든요.
대들보는 아니지만 벽 지지대의 나무와 회벽을 한꺼번에 뭉뚱그려 거칠게 페인트칠을 해놓은 자연스러움이 너무나 맘에 들었지요.
그건 분명 전문 칠쟁이가 아닌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솜씨이겠거니 짐작했어요.
와인색, 노란색, 초록색, 보라색…
촌스러운 듯하나 더 정이 느껴지는, 그래서 더 눈이 가는 허름한 집들은 한결같이 깨끗하고 예뻤습니다.
이게 무슨 이름 같으세요?
<뉘 칼스버그 글립토테크>
떠오르는 게 있죠?
칼스버그는 아시죠?
엷은 황금색, 몰트 맛이 지배적이나 약한 감귤 맛도 조금 나타난다.
바디는 가벼우며 끝에서 약간의 홉 맛도 느껴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네덜란드에 하이네켄이 있다면 덴마크에는 칼스버그가 있습니다.
칼스버그 맥주회사는 1847년에 창업했는데요.
<뉘 칼스버그 글립토테크>는 칼스버그 가문에서 만든 미술관입니다.
뉘는 새로운(新), 글립토테크(Glytotek)는 ‘조각관’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예요.
그러니까 <뉘 칼스버그 글립토테크>는 새로운 칼스버그네 조각관이라는 뜻이죠.
칼스버그는 아들의 이름 칼(Carl)을 따서 만든 양조장인데요, 지금은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맥주회사가 되었습니다.
이곳은 원래 개인 저택이었는데 정원을 장식하는 조각들을 수집하다 보니 이토록 방대해졌다고 합니다.
미술관의 소장품들은 대부분 조각들이지만 고대 이집트, 로마, 그리스의 미술품들과 로댕의 작품 등 실로 방대한대요, 소장품이 무려 1만 여점이랍니다.
또한 덴마크를 대표하는 화가와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고흐, 세잔, 드가, 르누아르 등)을 프랑스 다음으로 많이 소장하고 있답니다.
미술관에 들어가면 이젠 너무 자연스럽게 가방을 맡기는 라커를 찾게 됩니다.
지하에 마련된 티켓 오피스와 라커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주는 표식마저 예술이네요
전시관은 정말 너무 많아서 우리는 과감하게 조각을 포기하고 회화 쪽을 택했습니다.
전시 공간의 벽 색깔이 고상하고 은은하고 세련미가 넘치니 그림도 보기 전에 감탄사가 나와요.
관람객도 많지 않고 쾌적한 공간이 많아서 쉬엄쉬엄 그림 보는 맛이 쏠쏠했어요.
덴마크 국립 박물관의 유리로 만들어진 천창이 압도적으로 시선을 끌었습니다.
구석기시대부터 1840년대까지의 덴마크의 역사적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데 우린 고대 유물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수박 겉 핥기로 그쳤어요.
로젠 보로그 성은 덴마크의 국왕이던 크리스티안 4세(1577~1648년)가 만들었어요.
그는 문화, 특히 건축과 음악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증권거래소와 원탑 그리고 로젠 보로그 성이 그의 지시로 만든 건축물이래요.
로젠 보로그는 여름 궁전으로 세운 것인데 정원은 왕이 직접 설계를 했다고 해요.
화려하지 않고 담백한 미가 느껴지는 연못입니다.
자연색의 붉은 벽돌, 잿빛 사암, 녹청색 구리 지붕을 함께 사용한 건물이 고풍스러웠어요.
호화로운 바로크 양식의 전시실에는 왕이 입었던 의복과 왕관, 보석들이 전시되어 있어요.
옛 궁전들을 보면 동서양 막론하고 옛날이 훨씬 화려했어요.
민초들은 열악한 삶을 살거나 말거나 그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니 당연하게 여겼겠지요.
그러나 로열패밀리로 살아간다는 건 또 얼마나 많은 제약과 통제가 뒤따랐을까요?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한 가지도 맘대로 못하는 것들이 더 많았을 테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살아감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