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심한집사 Oct 21. 2024

어느 랙돌 이야기

2화. 너와 나, 유년의 기억

 리브와 츄츄, 첫째냥과 둘째냥의 합사는 정석대로 진행되었다. 각자의 공간에 분리하고 서서히 체취부터 존재를 인식케 하는 방식으로- 덕분에 지금은 종종 아웅다웅하기도 하지만,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공존하는 냥자매가 되었다.


 처음 츄츄에게 주어진 공간은 과거에 자신이 생활하던 케이지보다 훨씬 넓은 방이었다. 이전보다 더 큰 먹이 그릇, 더 큰 화장실, 그리고 여태껏 사용해 본 적 없던 쿠션이 새로 놓였음에도 한없이 어린 털뭉치는 모든 것이 두렵기만 한지 자꾸만 구석으로 또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더니 새벽녘 갑자기 이전에 쓰던 조그만 두부모래 화장실 안에 파고들어 잠이 들었다. 때로는 그것을 오독오독 씹어먹기도 하면서-


 문득 나는 그 모습에서 가슴 시리던 나의 유년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6학년, 엄마도 아빠도 나를 서로 맡지 않겠다고 싸우며 그럼 그냥 고아원에 보내버리자고 꽥 고함치던 밤의 두려움. 그날 나는 작은방에서 문을 꼭 닫고 오들오들 떨며 당장에라도 낯선 곳에 내동댕이쳐질 것만 같아 숨죽여 울었다.


 아마 저 어린 고양이도 지금 제 어미도 아빠도 잃고 생전 처음 가보는 어딘가를 몇 군데나 전전하며 병들고 지친 몸으로 여기까지 온 것일 테지. 엄마의 얼굴조차 잊었을지 몰라, 지금의 나처럼.


 햇살이 좋은 날이면 창가에서 식빵을 굽는 리브와 다르게- 츄츄는 바람이 소슬한 날, 나뭇잎 스치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건 아마도 츄츄 너에게는 뽀얀 털 속에 숨겨진 가슴 깊은 곳 바람결에 씻어내고픈 이야기가 많아서는 아닐는지-

작가의 이전글 어느 랙돌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