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어제, 정말 근 2년 만에 만난 지인이 아주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언니, 혹시 어디 아픈 데 있진 않죠?”
“아니, 전혀. 왜?”
“아... 그게 언니가 갑자기 살이 많이 찐 것 같아서... 혹시 건강이 안 좋나 해서요.”
그럴 만도 했다. 최근 2년 동안 난 20kg이나 살이 쪘으니- 너무나 달라진 내 모습이 그녀는 적잖이 놀랐으리라.
“아냐. 순전히 잘 먹어서 찐 거야.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행복하다니 보기 좋아요.”
언제나 다정한 그녀는 나의 대답에 안심하며 머뭇머뭇하던 고개를 수줍게 떨구었다.
나는 성인으로서의 일생 대부분을 50kg로 살았다. 그것이 내 몸무게의 세팅된 값이라 여겼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체중계의 수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한 이후부터였다.
사실 병원 문턱을 넘기 전부터 내가 우울하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요동치는 감정의 널, 좀처럼 이루지 못하는 수면의 굴레, 가까운 타인에게 송곳처럼 찌르는 언어- 모든 것들은 의사가 나를 환자로 진단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처음 받은 진단서의 병명은 ’상세 불명의 우울병 에피소드‘, 이것이었다.
처음부터 살이 찌진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치료를 받을수록 더욱 병이 깊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치료를 받아도 나를 괴롭히는 외부의 부정적 자극들은 제거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 덕분에 진단서에 나의 병명은 하나씩 더 추가되었다. 그래서 내가 처방받는 캡슐도 늘어났다.
그때부터 내 상태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극단으로 치닫는 나를 안정시키기 위해 늘어난 알약은 더 이상 예전처럼 그저 고요한 바다처럼 감정을 잔잔히 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나른하고, 몽롱해졌고, 온종일 잠이 쏟아졌다. 잠을 쫓기 위해 나는 자꾸만 먹었다. 먹으면 세상의 일부가 되어 깨어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라도 나는 살아야 했다. 그렇게 나는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덕분에 나는 그냥 우울증 환자에서 우울한 비만 환자가 되었다. 하, 이 무슨 서글픈 일인가. 남들에게는 차마 털어놓을 수 없는 뚱보의 속사정.
지금은 약을 조금 줄였지만 나는 여전히 우울하다. 내게 주어진 천형 같은 굴레, 우울증. 이런 나도 아이를 기르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어엿한 성인의 꼴을 하고 사회에 뒤섞여 살아간다니- 가끔 그 어이없음에 눈물이 난다.
어디선가 헛웃음을 지으며 지나가는 뚱보 여인을 보거들랑 웃으며 인사해 줘요. 그게 바로 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