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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한집사 Oct 24. 2024

너무 늦지 않았기를

 모처럼 만끽하는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고요함, 조금의 흐트러짐, 그리고 커피 향기— 현과 지수는 각자의 자리에서 에어팟으로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계약 한 건을 마치면 최소 10일은 업무 휴식기를 갖는 게 MyDoLL의 불문율이었다. 유급 휴가를 가도 상관없지만, 둘은 매번 사무실에 나와 각자 혼자만의 놀이를 즐겼다. 함께 여행 갈 사람이 없는 게 보나 마나 뻔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그런데 한참 판타지 소설 읽기에 여념이 없는 현의 눈앞에 손 하나가 불쑥 나타나더니 무례하게도 책을 덮어버리는 게 아닌가.

 “아니, 이게 무슨—”

 현은 발끈하여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서 있는 이는 바로 소설가이자, 전 고객인 신지영 씨였다. 현과 지수 모두 에어팟을 고막에 밀착시켜 음악을 듣느라 그녀가 사무실에 들어왔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제 소설은 읽지 않으시는군요.”

 지영 씨는 오늘도 까만 원피스 차림이었다. 얼굴은 여전히 창백해서 핏기라곤 없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제품에 이상이라도…?”

 현은 불쾌감을 꾹 누르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어깨에 달랑 멘 핸드백에서 또 USB 하나를 꺼냈다.

 “이걸 전해드리려고 왔어요.”

 현은 어안이 벙벙했다. 제품 제작은 물론이고 배송까지 다 완료된 마당에 대체 왜? 정말 이 여잔 미친 게 아닐까.

 “실례지만 저장된 파일이 어떤 걸까요?”

 지영 씨는 훗, 하고 웃었다.

 “다 알고 배송해 주신 거 아니었어요? 이제 와서 모른 척하시다니— 뭐, 덕분에 저도 생각을 많이 하고 좋았죠. 아들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고……. 이건 그냥… 모든 일이 잘 마무리되었다고 알려드리려 가져온 거예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말만 잔뜩 늘어놓던 지영 씨는 갑자기 감정이 북받치는지 눈물을 한 방울 떨궜다. 그러고는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휙 사무실을 떠나고 말았다.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본 지수가 쭈뼛대며 현 옆으로 다가왔다.

 “저 여자… 뭔 소리예요, 대체?”

 “난들 알아? 뭘 가져왔는지 한 번 보기나 하자.”

*

 캠코더로 촬영한 듯한 화면은 햇살이 아스라이 꺼져 들어가는 무렵, 정원의 연못가를 비추고 있었다. 하얀 철제 테이블에는 지영 씨와 그녀의 아들, 시현의 리얼돌이 마주 앉아 있었다. 영정 사진에서처럼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시현에게 지영 씨는 자꾸만 말을 건넸다.

 “오늘은 우리 아들이 웃어서 엄마가 기분이 좋아. 엄마가 항상 웃으랬잖아. 웃으면 이렇게 예쁜데…….”

 지영 씨는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고는 콧노래를 흥얼대기 시작했다.

    

♩ 쉽게 흘려진 눈물 눈가에 가득히 고여 / 거리는 온통 투명한 유리알 속 ♬

 - 박선자, <귀로> 中 -     


 노랫말이 가락을 타고 흐르는 이때, 진실로 작고 투명한 유리알이 테이블 위로 톡 떨어졌다. 안녕을 고하는 태양을 배웅하며 아쉬움에 떨어지는 빗방울이었다. 지영 씨는 본능적으로 아들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시현을 끌어안았다.

 “아들, 들어가자. 비 맞을라.”

 순간, 듣고도 믿지 못하는 말소리가 지영 씨의 귓가에 스쳤다.

 “엄마.”

 시현이었다.

 “…시현아?!”

 시현의 리얼돌이 지영 씨를 부르고 있었다. 분명 엄마— 라고.

 “엄마. 이제 그만, 날 보내줘.”

 시현은 온화하게 미소 띤 얼굴로 그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이 물 흐르듯 말했다. 지영 씨는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시현아, 시현이 맞니? 시현이 맞아?”

 “나야, 시현이.”

 “시현아, 시현아! 엄마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잖아.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왜, 왜! 아냐, 이젠 괜찮아. 이제 너 돌아왔으니까 다시 예전처럼 지내면 돼. 시현아, 다 괜찮아.”

 “엄마.”

 “응?”

 “그러지 마. 이제 나 그만 보내 줘. 나 가고 싶어.”

 “왜 그래… 왜 그래!”

 “나, 이제 정말 가고 싶어. 미안해, 엄마. 그래도 나 엄마 정말 사랑해. 하지만 나, 이제 정말 가고 싶어. 서로를 이해하자. 미안해, 엄마.”

 비를 맞으며 지영 씨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는 시현의 몸은 마치 설탕 덩어리처럼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런 시현을 보며 지영 씨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애썼다. 시현은 의자에서 일어나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점점 녹아 희미해지더니 연못으로 풍덩 뛰어들고 말았다. 시현은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현아, 엄마가 미안해.”

 지영 씨는 모기만 한 목소리를 쥐어짜서 마지막으로 시현을 불렀다. 그러고는 이내 허물어지고 말았다.

*

 “여기서 끝이네요.”

 지수는 노트북으로 보던 영상을 종료했다. 현과 지수 모두 눈가가 촉촉이 젖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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