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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한집사 Oct 24. 2024

그 여자는 미쳤어

 “저는 아무튼 작업 못합니다, 못 한다고요!”

 아침부터 202호 현 유통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지수의 목소리였다. 지영 씨의 주문을 받아 계약하고, 자료를 받은 후, 고객 인터뷰까지 다 한 마당에 지수는 지금 계약을 취소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난리를 피우는 중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지수 씨. 아니, 지수야. 우리 분명히 고객님과 계약서 쓰고 대금 오천만 원 이체받았어. 심지어 그걸 네가 했다고! 그런데 갑자기 못 하겠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현도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정말이지 이번 계약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게 분명하다. 왜 이리 순탄하게 흘러가는 법이 없는 걸까. 지수와의 싸움, 아니 대화가 끝나면 타이레놀부터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는 현이었다.  

 “몇 번을 말씀드려요. 그 여자는 미쳤다니까요? 우리가 그 여자 주문대로 작업을 해주면 고인의 죽음을 모독하는 거밖에 안 돼요.”

 “미친 건 미친 거고, 계약은 계약 아냐? 우리 지금까지 계약 이행 안 한 적 없어. 신뢰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그 여자 이상한 건 나도 알아. 그래도 돈 받았잖아. 그럼 해야지, 어쩌란 거야!”

 “그래도 할 일이 있고 안 할 일이 있죠! 대표님도 보셨잖아요. 그 여자 집 안에 쌓여 있는 그 앨범들이며 USB며… 제가 어제 USB에 저장된 CCTV 촬영본을 봤는데, 진짜 그 여자 미쳤다니까요!”

 “그래. 아들 매일 촬영했겠지. 사진도 찍고, CCTV로 감시도 했겠지. 그런데 이미 계약을 했다고! 그 미친 소설가하고, 바로 우리가!”

 둘의 실랑이는 계속되었다. 결국 끝이 나지 않은 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파티션으로 가려진 자신만의 동굴 속에서 현과 지수는 조용히 헐떡이는 숨을 골랐다. 모두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화를, 이제는 가라앉혀야 할 때였다.

*

 똑딱똑딱―

 시계 침이 움직이는 소리.

 “…커피 한잔할래?”

 현이 물었다.

 “네, 진하게요.”

 지수가 대답했다. 원두의 구수한 향이 사무실의 공기 속으로 점점 스며들었다. 둘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정시현, 걔 신지영이 죽인 거예요.”

 아까보다 많이 덤덤해진 목소리로 지수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현은 그저 묵묵히 듣기로 했다.

 “USB에 저장된 건 딱 하루, 5월 2일. 그것도 겨우 4시간 분량의 촬영본이었어요. 그런데 그 애 방에 설치된 CCTV는 무려 8개였어요. 방에만 CCTV 8개라니……. 다른 곳에는 얼마나 많을지 상상도 안 가요. 그 애는 늘 그렇게 감시당하며 살았다고요. 기록? 웃기지 말라고 해요. 그 애가 죽기 전에 왜 모든 걸 다 없애고 싶어 했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이야기의 뒤로 갈수록 지수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아마도 분노 때문인 듯했다.

 “그 여자에 대해 찾아봤어요. 남편과는 일찍 사별하고, 아들을 혼자 키우면서 소설을 몇 권 쓰긴 했더군요. 그런데 그 소설이 전부 엄마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한 권을 어제 e-book으로 잠깐 읽다 말았는데… 작가의 말에서 아들이 자신의 뮤즈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때 구역질이 나오려는 거예요. 생각했어요. 이 여자는 미친 여자구나, 진짜 미쳤구나.”

 현이 들고 있던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지수의 어깨를 살짝 토닥였다.

 “그래서 못하겠다고 했구나. 이해해, 그 마음. 인간이라면 충분히 분노할 만해. 우리에겐 윤리와 도덕이란 게 있으니까.”

 지수도 커피잔을 내려놓더니 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현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나도 신지영 씨에 대한 내용, 알고 있었어.”

 “네?!”

  순간 지수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놀라움, 당황, 배신감, 충격 등의 여러 감정이 뒤섞여 이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반응을 취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는 듯했다.

 “그러니까 더 고인의 리얼돌― 만들어야 한다는 거야.”

  지수는 그게 무슨 같지도 않은 말이냐는 표정으로 현을 바라보았다. 현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주장을 이어갔다.

 “지금 신지영, 그 여자는 자기의 뮤즈라고 주장하는 아들의 죽음을 부정하는 거야. 그래서 아들이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실물과 같은 리얼돌을 만들려는 거지. 그러나 인형은 인형일 뿐이야. 절대 살아있는 아들이 될 수 없어. 신지영이 우리가 만든 리얼돌을 보게 된다면 분명 아들의 죽음을 직시하게 될 거야. 운이 정말 좋으면… 아들에게 죄책감도 가질 수 있겠지만… 미친 여자에게 그걸 바라는 것까진 무리겠지.”

 꽤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다. 지수의 눈빛도 조금 전과는 분명 달랐다.

 “천천히 생각해. 우리 아직 커피도 다 안 마셨어.”

 이야기를 마친 현은 다시 잔을 들고 홀짝대기 시작했다. 다만 지수는 잔을 쥐고만 있을 뿐, 뭔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고인에 대한 모독은 아니겠죠?”

 현은 자신 있게, 목소리에 힘을 주어 대답했다.

 “우리는 그런 인형은 만들지 않아.”

 비로소 지수가 O.K.를 외쳤다.

 “알겠어요.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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