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보증기간 아직 안 끝났는데 저거 저거 녹아버린 거, 지금 실제 상황 맞지? 내가 제대로 본 거 맞지?”
“대표님, 지금 눈앞에서 정확히 오천오백오십만 원이 녹았네요. 1차 대금 오천만 원에, 상품에 숨이 담겨야 한대서 인공 허파 넣는다고 오백만 원 추가금 받았고요. 부가세 10% 해서 오십만 원 더. 이거 어쩌나요… 환불해 드려야 하나요…….”
“아니, 이게 지금 무슨 난리냐고! 지금 당장 사태 원인부터 파악하자. 지수 너, 빨리 견적서 뒤져서 뭐에서 이 사달 났는지 파악해. 나 지금 이전 고객님들께 연락 돌려서 이런 문제 발생한 경우 있는지 알아볼 테니까!"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이들의 감성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나 보다. 현과 지수는 동영상에 등장한 시현의 리얼돌이 며칠 만에 오작동하다 종국에는 소실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눈물을 글썽일 만큼 낙심했다. 비단 돈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지켜온 MyDoLL의 위상에 티끌만큼이라도 흠집이 생기는 걸 용납할 수 없어서였다. 일종의 장인 정신이랄까—
꼬박 만 하루하고도 두 시간 사십오 분 동안의 끈질긴 추적 끝에 그들은 의심이 가는 원인을 하나로 좁힐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원재료 중 인조 피부로 사용했던 ‘노멀라이프 스킨’이었다.
“그러니까 실링 바이오텍스가 아닌 노멀라이프 스킨으로 바꾼 거 빼곤 기존 제품과 전혀 차이점이 없다는 거지?”
“네. 표피의 솜털까지 구현을 원하셔서, 신생 회사에서 새로 출시한 인조 피부로 변경했습니다.”
“지금 그 회사 홈페이지 좀 들어가 봐.”
*
“하… 황산염에 취약…?”
“아무래도 빗물과 연못물에 포함된 황산염에 반응해서 녹은 모양인데요….”
“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현은 웃었다. 아주 크게 소리 내서 웃고 또 웃었다. 지금은 웃는 것 말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 웃다 보니 눈가에는 눈물까지 맺혔다. 그런 현을 어쩐지 안쓰러운 표정으로 지수는 바라보았다.
“지수 씨.”
갑자기 현이 웃음을 멈추고 정색하며 지수에게 향했다. 고무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듯한 분위기가 둘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신지영 씨 카톡으로 전액 환불 조치해. 한 번에 송금 안 되면 나눠서라도 이체하고.”
“네, 대표님.”
말을 마친 현은 자신의 자리로 가 무너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너무 웃느라 온몸의 기운이 쭉 빠졌지만, 머릿속은 불순물이 모조리 빠져나간 듯 깨끗했다.
‘시현이가 나타난 건 절대 우연이 아니야. 엄마에게 용서를 빌 기회를 마지막으로 주고 싶었던 거야. 이렇게 모든 게 맞아떨어질 수는 없어. 이건… 그래, 이건 운명이야.’
*
“대표님, 대표님!”
그렇게 까무룩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잠든 현을 지수가 다급하게 흔들어 깨웠다.
“응…?”
“대표님, 휴대폰으로 연락이 안 된다고 사무실로 전화가 왔어요. 호수요양병원 전화예요.”
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