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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한집사 Oct 14. 2024

당신에게도 고양이가 있나요?

5화. 페르소나

“신은 인간이 나약해 보여 고양이를 주셨다.”

-워렌 에크라인 -   


 

알고 있어?

얘 털에 코 박는 게 그렇게 기분 최고야.

털 맛집 소개합니다.



 우울증 환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오며 지키는 나름의 철칙이 있다.


 <내 우울증을 남에게 알리지 말라>     


 상당수 정신 질환들은 유전적 소인과 맞물려 있다고 한다. 나 역시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환자라는 진단이 내려지기 전부터 우울함이란 감정에 늘 사로잡힌 채 살았다. 

 물론 가치관이 여물기도 전부터 내가 이러한 철칙을 고수했던 것은 아니다. 열일곱쯤이었던가- 때늦은 중2병과 우울증이 이끄는 쌍두마차를 타고 염병 천병을 떨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도 소위 타인에게 멋처럼 드러내는 ‘패션 우울증’이 있는 것처럼 당시의 나 역시 마이너스 감정을 사방에 내던지기 일쑤였고, 주변 사람들은 괜스레 그것에 맞아 봉변을 당하곤 했다.

 결국 돌아온 결과는 손절, 당연한 결과였다.

 “너랑 다니면 나까지 그런 사람이 되는 거잖아.”

 나와 기꺼이 감정을 공유한다고 여겼던 친구가 마지막으로 전한 편지 속 문장, 이는 꽤 깊은 상처였다. 그 진심을 전하기까지 친구 역시 부단한 아픔과 고민이 있었을 테지만…

 이후 나는 결심했다. 누구든 내게 지치지 않도록 나 역시 드러내지 말자고.     


 그래서 페르소나-

 나는 다양한 가면을 쓰고 산다.     


① 아내 : 가정을 이끄는 남편의 곁에 선 동반자

② 엄마 :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조력하는 양육자

③ 딸 : 홀로 된 아버지의 결핍을 채우는 K-장녀

④ 며느리 : 살갑진 못해도 제 살림은 어찌 꾸리는 애

⑤ 교사 : 바른 지식과 인성을 가르치는(꼭 그래야만 하는) 지도자 

.

.

.     

 적어두고 보니 무엇 하나 미친 폼이 아닌 것이 없다. 

 그렇다.

 나는 늘 폼 한 번 미쳐버리게 살고 싶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지향하는 가면 속 인물처럼- 하자 없는 인간으로 세상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주치의와의 면담에서도 그간의 생활과 감정 변화에 대해 전달할 때 최대한 푸념은 덜고 냉정하게 설명하려 노력했다. ‘이번 주에는 자살 충동이 심했어요.’라는 말조차도.     


 하지만 ‘집사’라는 가면은 달랐다.

 깊은 밤, 가족에게조차 들키고 싶지 않아 변기에 쪼그려 수도꼭지를 틀고 흐르는 물소리에 울음을 숨길 때, 슬그머니 내 곁에 다가와 앞발의 말랑한 젤리로 머리를 토닥여주는 리브 앞에서 운 적이 몇 번이던지… 나이가 마흔이 되어가도록 바보 천치처럼 눈물 콧물 빼는 바보가 나라는 비밀은 이 세상에서 오직 리브만이 알 것이다.

 언젠가부터 내 취미는 보들한 고양이의 털에 코를 파묻기가 되었다. 리브를 꼭 끌어안고 훈훈한 체온을 느끼며 숨이 막힐 정도로 깊숙하게 코를 털에 묻으면, 그 순간만은 불안도 걱정도 초조함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리브는 나의 항우울제였다.     

 대체 누가 나처럼 한없이 불완전한 인간에게 고양이란 존재를 하사한 것일까? 

 이것은 그저 봄비가 내리던 날, 죽은 고양이의 유령에 홀려 벌어진 거대한 음모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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