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외전 : 어느 고양이 집사의 일과
※ 어느 고양이 집사의 일과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휴일 기준) /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에 불과하니, 일반화하지 마십시오.
나의 하루다옹!
▷ 8시 ………… 기상 : 저는 불면과 무기력이 우울증의 주된 증상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새벽녘이 되어서 간신히 잠이 드는지라 아침에 일어나는 게 몹시 고통스러웠죠. 하지만 리브를 만나고 나서 이게 웬걸! 새벽 5시만 되면 일어나서 습식 사료를 내놓으라고 손이고 발이고 깨물어대는 통에 강제 미라클 모닝을 하고 있네요. 알람이 필요 없네, 정말 럭키비키하여라!
▷ 9시 ………… 식사 : 아침에는 밥을 하기 귀찮아서 주로 버터를 바른 토스트를 먹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고양이는 밀 속성 고양이었네요. 이젠 파블로프의 개- 아니 고양이가 되었는지 아침 먹을 시간만 되면 토스터 앞에 죽치고 앉아 있어요. 입맛이 고급이라 또 비싼 식빵 아니면 먹지도 않네요. 유기농 식빵 먹어서 몸도 건강해지고, 고양이에게 빵을 양보해서 다이어트도 하고 이런 게 일석이조라는 건가요?!
▷ 10시 ……… 스트레칭 : 오전에는 TV 화면에 유튜브 스트레칭 채널을 띄워놓고 체조를 합니다. 굳어있던 몸의 근육을 깨우기 위해서죠. 그럴 때마다 리브는 발톱을 있는 힘껏 세우고 제 등을 에베레스트 등반하듯 기어오르곤 해요, 아마도 자신도 저와 함께 스트레칭하며 운동 친구가 되어주겠다는 뜻인 것 같은데- 몸에 스트레칭, 아니 스크래치가 생기는 건 왜일까요?
▷ 10시 30분 … 낮잠 : 휴일에는 밀린 잠을 푹 자서 꼭 한 주간의 피로를 풀어 줍니다. 그럴 때면 저의 가장 소중한 친구, 리브 역시 제 곁에서 함께 숙면을 취하죠. 그런데 참 이상해요. 분명히 푹신한 침대가 있는데 왜 리브는 꼭 제 얼굴 위에서 잠을 자는 걸까요? 오늘도 질식하는 듯한 이 느낌은 분명 기분 탓이겠죠?
▷ 12시 ……… 식사 : 남편이 끓인 구수한 된장찌개가 오늘의 점심이었답니다.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으려고 하는데 식탁 위로 폴짝 리브가 뛰어오르더군요. 음식에 호기심이 생겼는지 킁킁- 냄새를 맡는 모습이 몹시 귀여웠어요. 그런데 리브는 왜 제 밥그릇 옆에서 한 발로 부지런히 땅을 파는 시늉을 하는 걸까요? 그건… 리브가 모래로 응가를 덮을 때 하는 행동인데…
▷ 13시 ……… 독서 : 식사를 마친 후에는 역시 마음의 양식을 쌓는 것이 제맛이죠. 따스한 한낮의 햇살 속에서 책장을 넘기는 중, 리브가 오네요. 심심한가- 싶어 낚싯대를 가지러 간 사이 발톱으로 야무지게 긁어버린 책장. 리브야… 그건 스크래쳐가 아니야… 또르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고)
▷ 14시 ……… 자유시간 : 드디어 자.유.시.간.야.호.휴.대.폰.이.나.해.볼.까...어림없는소리- 리브가갑자기내두손을베고잠을자네…
▷ 15시 ……… 낮잠 : 그냥 나도 자자…
▷ 17시 ……… 식사 : 배가 고파 흉폭해진 리브가 일어나서 제 귀를 또 물어뜯네요. 당장 습식을 대령하지 않으면 이 몸이 오늘 저녁 리브의 제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 주인님께 수라상을 올려야 할 때입니다. 방금 신선한 로얄캐닌 스테럴라이즈드 젤리 파우치를 준비하였습니다. (사실 늘 언제나 쭉 먹는 것)
▷ 18시 ……… 학습 : 요즘 아들과 함께 영어 공부를 하고 있어요. 오늘 공부할 책은 ‘Are you okay, kitty?’라는 제목이에요. 물론 바보 리브는 자기에게 묻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네요. 드디어 한 방 먹이는 것 같아 속이 다 시원합니다. 리브는 바보, 영어도 모르는 바보야.
▷ 19시 ……… 샤워 : 어제부터 출근하지 않아 이틀째 씻지 않아 기름진 느낌이 좋았는데,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씻어야겠네요. 두둥- 욕실에 입장하는데 문이 닫히지 않습니다. 웬 털 뭉치 하나가 문에 끼어 있네요. 네, 노란 치즈가 묻어있는 꼬라지를 보아하니 리브로군요. 물벼락을 맞고 싶지 않거들랑 썩 꺼지도록 하여라! 안 나가는군요. 어쩔 수 없지요. 샤워기를 발사합니다!
▷ 20시 ……… 대화 : 가족 모두가 소파에 모여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리브는 한국어도 못하는 주제에 꼭 좁아터진 소파에 턱- 하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들면 꼬리로 소파를 탁탁 치는 버르장머리는 대체 어디서 배운 것일까요? 정말 예의라고는 없는 고양이로군요. 벌로 오늘은 참치 트릿을 주지 말아야겠어요.
▷ 22시 ……… 글쓰기 : 가족 모두가 잠이 든 고요한 시간, 저는 노트북을 이용해서 글을 씁니다. 사실 뭐 거창한 건 아니고 일기예요, 일기. 하루에 있었던 일을 간략히 기록하는 거죠. 예를 들면 오늘 리브가 똥을 싸면서 푸드덕 방귀도 뀌더라- 뭐 이런…
▷ 1시 ………… 수면 : 이제 자러 갈 시간이네요. 옆구리에 고양이 베개 하나 촥 끼고 저는 침대로 가야겠어요. 모두 굿나잇! 리브도 제발 통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