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다시 만난 바이올린
2023년 새해가 밝은 기념으로 바이올린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바이올린을 배웠던 게 2002년 겨울이었으니, 무려 20년 만에 다시 바이올린을 잡게 된 셈이다.
학창 시절 나는 국어, 영어, 수학 같은 주요 과목부터 음악, 미술, 체육 같은 예체능까지 여러 교육을 받았는데, 그중 바이올린을 가장 사랑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돌이켜보면 바이올린 그 자체보다는 바이올린을 켜는 내 모습에 심취했던 것도 같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있어빌리티'가 중요한 사람이었으니까. 피아노처럼 또래 집단 사이에서 흔하지도 않으면서 뭐랄까 교양 있어 보이는 바이올린이 나는 좋았다.
바이올린 사랑에 불을 지폈던 건 학원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바이올린 학원 선생님은 어린 시절 나를 어여삐 여긴 어른 TOP 10 안에 드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학원에 가는 일이 더 즐거웠던 것 같다. 피아노 학원은 가고 싶지 않아 여러 잔꾀를 부렸던 것에 비하면, 그 시절의 나는 확실히 바이올린을 좋아했다.
또 당시 내가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다고도 생각했었다. 나는 학원에서 하는 레슨, 연습 외에 집에서 따로 연습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선생님께 연습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킨 적이 없다. 선생님이 알면서 모른 척을 하신 건지 정말 몰랐던 건지는 모르겠다. 전자라면 선생님은 나를 잘 영업하신 것이고, 후자라면 연습을 더 열심히 했다면 난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20년이나 지났으니 당연히 연주하는 방법을 잊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몸의 기억은 생각보다 선명했다. 당연히 악기를 다루지 않은 시간이 길었던 만큼 서툴렀지만 곡 하나를 완주하기에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 (새삼 느끼는 조기교육의 중요성). 덕분에 교재 진도도 착착 나가게 되어서 배우는 즐거움까지 있는 요즘이다.
바이올린을 다시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악기를 다루는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곡을 만들어 나가는 데 집중하게 된다는 거다. 다음에 올 음계와 박자를 눈으로 인풋(input)하면 운지를 하는 왼손과 활을 켜는 오른손에 아웃풋(output)하는 과정만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연주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몰입하게 된다. 일상을 늘 함께하는 여러 고민들은 사라진다. 한동안 이런 즐거움을 모르고 살았다는 게 아쉬울 정도다.
또 다른 즐거움은 성장을 체감하는 데 있다. 연습을 할수록 미세하게나마 연주의 질이 높아진다. 그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살면서 느끼는 점 중 하나는, 성취감을 느낄 만한 장치를 삶의 여러 곳에 설계해 두는 것이 현명하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완전히 몰입할 수 있으면서 또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취미 하나는 현대인의 삶에 필수가 아닐까 싶다.
바이올린을 언제까지 계속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퇴근 후에 고정된 스케줄이 있다는 게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 고비만 넘긴다면 계속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