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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바 Mar 30. 2024

수취인 불명?!

은 아닐 나의 편지

‘국군 장병 아저씨께’로 시작하는, 누가 읽는지조차 모르는 편지를 썼던 때가 흐리게 떠올라.
너는 아마 경험하지 못할지도 모르겠구나.
엄마가 초등학교에 다녔을 땐
(엄마는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국민학교를 졸업한 옛날 사람이야)
국어 시간에 다 같이 똑같은 문구로 시작하는 편지를 써야 했었어.
너에게 편지를 쓰는 지금 그때가 생각나는 걸 보면,
이 편지도 수신자에 상관없이 여느 책에서 봄 직한 비슷한 이야기로 채워지진 않을까 나 스스로 약간의 걱정을 하고 있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네.

 어제는 너의 담임 선생님을 만나 중학교 첫 상담을 마치고 왔어.  다시 학부모 총회에 가는 기분으로 옷장에서 가장 단정해 보이는 옷을 골라 입고 교무실로 향했지.
체육 선생님이자 학년 부장 선생님이신 너의 담임 선생님은
삼선이 곱게 어깨를 타고 내려오는 트레이닝복을 입으시고는 활짝 웃으시며 엄마를 맞아주셨어.
마음속으로 어찌나 웃었던지 첫 상담이라는 부담감이 눈 녹듯 사라졌고, 상담시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단다.
선생님께서 ‘ㅇㅇ이가 어머님을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라고 하시더라고. 형광펜으로 여기저기 표시를 해둔 엄마의 상담지는 네가 학교에서 작성한 상담지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
너의 성격도, 부모-자녀 간의 관계에 대해 적은 내용도 비슷하더구나. 자식을 가장 모르는 게 부모라고 하지만,
그래도 내가 너라는 아이에 대해 영 모르는 건 아니구나 싶어
안심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야.
사춘기라는 파도를 정면으로 맞서 헤쳐 나가고 있는 너를
엄마인 내가 잘 파악하고 있다는 걸 선생님이 공증해 주신 셈이니까!

요즘의 엄마는 하루의 끝자락에서 종종 이런 생각을 해.
나중에 네가 내 나이즈음이 되었을 때
나는 너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될까 하는.
어쩌면 타인의 눈에 나의 삶이 어떻게 비칠까
그 시선을 신경 쓰며 사는 걸지도 모르겠네.
근데 그거 알아?
이 생각의 끝엔 사실 엄마가 정해놓은 답이 있다는 거.
“좋은 엄마”
너의 엄마로 살고 있는 지금의 내 삶은
저 답을 향해 가고 있는 여정이야.
떠올리기만 해도 옆구리가 저릿하게 그리운,
참 멋있었던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는 욕심이
내 하루하루를 만들어 주고 있단다.
참 좋은 욕심이지.
답을 정해놓고 살고 있는 이 순간이 쌓이고, 하루가 쌓이고, 일 년이 쌓이면 나는 너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코디언 주름처럼 시간을 접어 답을 보고 싶구나.
맞추면 더 짜릿하겠지.

매일 조금씩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 주는 네 덕분에, 엄마는 회사에서 꼰대력이 상승했어.
아직 미혼인 후배들에게 ‘꼭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마법 같은 경험’을 해보라며 결혼을 장려하고 있단다.

덕분에 후배들이 엄마를 슬금슬금 피하는 것 같기도 해.
그렇지만 정말 좋은 건 좋다고 해야 하지 않나 싶어.
지금의 나는 인생 2회 차의 복권을 뽑은 것 같은 느낌이거든.  네 나이 때의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모조리 다 떠올라,  그때의 내가 필요로 했던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답지를 보고 문제를 풀고 있는 느낌이랄까?
우리가 종종 다투는 걸 보면 너에게 꼭 맞는 답은 아닌 걸 거야.
그렇지만 이 시간 덕분에 엄마는,
어렸던 엄마의 그 시간이 보살핌의 손길을 받는 기분이란다.
이건 정말 ‘안 키워봤으면 아는 체하지 마세요’라고 밖엔 할 말이 없네. 그러니 자꾸 여기저기 결혼을 닦달하고 다닐 수밖에. 그냥 쭉 결혼 전파의 아이콘 꼰대로 살아야겠어.


‘난 엄마랑 얘기하는 게 너무 좋아’

며칠 전 네가 나에게 해준 말.

그 꿀 같은 목소리가 귀에 맴도는 밤이야.

참 좋다, 내가 네 엄마일 수 있어서.

하늘에서 천사로 있던 네가 엄마에게 와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사랑해, 또 편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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