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의 마지막날 밤 아이들과 가요대제전을 2시간 넘게 시청했다. 라이브방송인데 무려 새벽 1시 40분에 끝나는 엄청난 프로그램이었다. 그맘때에는 그 프로그램이 제일 재미있긴 하지 하며 잘생기고 예쁘고 멋진 아이돌들의 무대를 멍한 눈으로 보았다, 연신 하품을 해대며. 나에게 올해는 꼭 같이 새해 카운트다운을 해야 한다며 절대 먼저 자면 안 된다는 큰 아이.
"작년에도 같이 하지 않았나?" 나의 물음에 아이는 단호히 아니라고 했다. 해마다 집에서든 밖에서든 같이 5,4,3,2,1을 외쳤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작년엔 왜 못했을까 잠시 생각해 보다 그만두었다. 아이돌들과 큰 아이와 같이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우리 복 많이 받자 덕담도 나눈 후 이내 잠을 청했다. 내일 아침, 크루에서 새해맞이 달리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하 10도를 넘나들며 동장군이 맹렬히 기세를 떨친 26년 1월 첫날.
"엄마, 8시 넘었어!" 아이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어젯밤 알람을 맞추고 잔다는 걸 깜빡했나 보다. 9시까지 동작역으로 가야 하는데 둘째가 나를 깨운 건 8시 25분. 큰일이다.
새해 첫날이니만큼 떡국은 먹어야 하니 후다닥 준비해 둔 재료로 10분 만에 끓여 식탁에 차린 후 옷을 갈아입었다. 최대한 서둘렀지만 약속시간보다 15분 정도 늦게 동작역에 도착했다. 열명 남짓의 크루원들이 모여 몸을 풀고 있었고, 지각생은 조용히 합류해 사과한 후 몸풀기 체조를 했다.
유난히 추위에 약한지라 겨울 들어 야외 러닝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빌드업에서 인터벌 훈련까지 모두 다 러닝머신으로 열심히 달렸다. 머신에서 뛰는 게 지겨워서 러닝크루를 찾아 한강변을 달렸던 건데, 추워지고 나니 러닝머신으로라도 이렇게나마 달릴 수 있는 게 감사한 지경.
여기저기서 새해맞이 20.26km 달리기를 하나보다. 1월 1일 아침 9시, 동작역엔 우리들 말고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몸을 풀고 있었다. 나도 지금 여기 나와있긴 하지만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고 내심 생각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 무장을 하고 나왔음에도 한기가 온몸을 파고들었다. "파이팅!"을 외치고 한강변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러닝의 기세는 실로 어마했다. 뺨이 시리다 못해 얼어붙은 것만 같은 추위에도 달리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보통 크루들이 교행 하면 간단히 '파이팅'정도를 외치고는 하는데, 이날 아침엔 특별한 인사가 하나 더 붙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 글자 한 글자 진심을 담아 큰 소리로 외쳤다. '1월 1일부터 갓생 사는 우리 모두 정말 복 받을 거예요'하는 마음으로. 입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던 그 아침, 우리는 각자 20.26km를 달려냈다.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정확히 맞춰줘야 했던 관계로 각자 조심히 러닝을 마무리했다. 0.01km도 더, 혹은 덜 달려서는 안 되니까.
"HAPPY NEW YEAR! 수고하셨습니다!"
새해맞이 러닝을 성공적으로 마친 기념으로 모두들 떡국을 먹으러 갔다. 점심때가 임박해서 나는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허밍웨이길을 걸어가는데 불현듯 왜 작년에 카운트다운을 하지 못했는지 생각이 났다.
작년 1월 1일에 출전했던 새해일출런. 아침 일찍 대회장으로 가야 했던지라 12월 31일 밤 '엄마 먼저 자러 갈게.'하고 억지로 잠을 청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 작년에도 갓생 살았구나.
시작이 좋다. 춥고 힘들었지만 다 끝나고 나면,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모든 것이 대체로 미화된다. 서강대교에서 반환해서 돌아오는 길엔 떠오른 해가 등을 비춰주어 무려 약간의 온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온몸으로 구현해 낸 새해 아침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이 박수를 쳐준다. 그냥 내 삶을 살아낼 뿐인데 칭찬을 받으니 왠지 코끝이 시큰거린다.
20.26km 러닝으로 시작한 2026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