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우리끼리라도

일단 시작해보자고

by 심바

우리가 다시 합주 약속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한 것은 니트를 입고 목도리를 두른 후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만났던 여름이었는데 어느새 목도리를 두르는 계절이 된 것이다.


파이팅넘치게 도원결의를 한 후 반년이 흘렀다. 각자의 바쁜 삶은 의지를 꺾기 충분했고, 우리의 의지는 카톡 속에서만 존재하는 듯 했다.



해가 넘어가고 1월이 되면 누구나 그렇듯 의지가 확고해지고 희망찬 삶을 계획한다. 우리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바로 기회를 노렸다. 어쩔 수 없이 깁슨은 빠지게 되었지만 보컬1, 기타1, 베이스1, 건반1, 드럼1명 이렇게 합주를 할 수 있는 구색은 맞춰졌으니 일단 시작해야겠어서 바로 합주실을 예약했다.



2023년 2월.

우리는 강남의 어느 한 합주실에서 모였다.

누군가는 4년 만에, 누군가는 무려 7년 만에 합주를 하게 되었다. 물론 나도 합주실에 들어가면서부터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는 합주라 그런지 합주 시작 전의 적막이 제법 길었다. 그것은 곧 긴장감을 나타내는 거 겠지.

(마치 '휘이이이이잉~~~~ 와 와 와~~'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의 테마곡)이 들리는 느낌?)



우리의 공식적인 첫 합주곡은 브로큰 발렌타인의 알루미늄, 그리고 넬의 3인칭의 중요성이었다.


먼저 맑은 피아노 소리로 시작하는 3인칭의 중요성.

손가락을 네 번 누르며 시작하면 되는데, 그 4분음표 4개가 왜 그렇게 긴장이 되던지...

물론 그 이후로는 어렵지 않게 첫 합주를 끝냈다. 완벽하게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악기들이 쌓여 가며 음악을 만들어 내는 그 순간의 느낌이 충족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감격에 겨워 있는 사이 T의 대명사 펜더의 첫마디는

'스읍... 소리가 확실히 좀 비는데?'였다.


우리 모두 알고있다.

원곡에 비해 세션이 없으니까. 당연한 말이었다.

근데 나는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왔다.


펜더는 고개를 갸웃하며 뭔가 신경 쓰이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저 우리가 지금 합주를 했다는 사실에 취해있었다.


사실 펜더의 지적은 정확했다. 하지만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각자의 삶을 살다가 다시 모인 지 이제 1시간도 안 되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깁슨 합류하면 훨씬 풍성할 거야."라고 베이스가 말했다.


맞아.

첫술에 배부를 수 없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시작했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했다.

합을 맞추면서 삐걱거리기도 했지만 괜찮았고 재밌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음 약속을 잡았다.


3월은 다들 시간이 안 맞아서 건너뛰고 4월로.


이전 02화처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