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의 밤, 원먼스 x 레드 지퍼스

by 심바

2월 22일.

여느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처럼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일어나자마자 오늘 날씨가 화창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침대에서 한참을 밍기적 거렸다.

"드디어 오늘이구나"


씻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괜히 반창고가 필요하진 않을지, 공연장 조명에 더워 땀이 흘러 손수건이 필요하지는 않을지하는 걱정인형 보부상의 모먼트가 발현되어 가방이 묵직해졌다. 다행히 촬영은 후배들이 맡아서 해준다고 해서 촬영 짐이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공연장으로 가는 길.

강남역의 공연장으로 빨간 광역 버스를 타고 가는데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공연을 꼭 가고 싶었는데 다음날이 자격증 시험이라 못갈거 같으니 밴드 멤버들이랑 커피 나눠 마시라고 기프티콘을 보내왔다. 친구 덕에 면이 선다는 말이 이런걸까. 스타벅스에서 각자 먹고 싶은 커피를 주문 받아 바리바리 들고 공연장에 도착했다.


역시나 장비가 많고 체크할 것이 많은 기타맨들(펜더와 깁슨)이 제일 먼저 도착해서 사운드 체크를 하고 있었다.

“왔어?”

“응. 너네는 언제 온 거야?”

“좀 전에. 어차피 우리가 제일 오래 걸려서"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들도 하나둘 도착했고, 공연장 안은 금세 익숙한 농담과 긴장감이 섞인 분위기로 채워졌다. 무대에서 악기를 세팅 우리가 정말 공연을 하는구나 하는 실감이 조금씩 밀려왔다. 어제 전체 리허설 때 다들 많이 긴장했던 것에 비해 오늘은 약간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지하의 합주실에서 하던 것과 달리 개방된 무대에서 서로의 호흡이 맞아 들어가는 순간, 지난 합주들이 한 장면으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공연 시작 전 여컬이 너무 떨린다며 청심환을 먹어야겠다며 물을 찾았다. 오랜만에 하는 공연이라 손이 굳을까 펜더와 깁슨, 베이스와 나는 손가락 스트레칭을 계속했고, 남컬은 목을 풀고 가사를 외우고 드럼은 팔을 풀며 웃었다.


“나 너무 떨려.”

“ㅋㅋㅋㅋㅋ 즐겨!!! 재밌게!!! 실수해도 어디 떨어지는거 아니니까!!”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사회자가 공연 시작을 알리며 관객 입장 문이 닫혔다. 무대 옆 조그만 대기실에서 결의를 다졌다.

"원먼스! 하면 악! 하고 손 밑으로 내리자"

"ㅋㅋㅋㅋㅋ기운 빠지는거아냐?"

"악을 크게해"

"원먼스"

"아!!!!!악!"


소리를 마지막으로 여컬의 무대를 시작했다. 첫 곡은 '민수는 혼란스럽다'. 저음으로 리드미컬하게 시작하고 벅찬 느낌의 유다빈밴드의 '좋지 아니한가'로 공연을 마무리했다.


다음은 후배들의 공연 차례였다.

끼가 넘치는 후배들을 관객석에서 보니 대학교 동아리 중에서 '우리 애들'이 왜 인기가 좋고 많은지 느끼게 되었다. 무대에 서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보이고 무엇보다 실력이 출중했다.


마지막으로 남컬의 무대. 발라드에 강한 음색 좋은 남컬의 목소리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곡이 끝날 때마다 들려오는 박수 소리와 환호가 짜릿했다. 기타로 주름잡았던 펜더와 깁슨의 기타 솔로가 지나고 나면 입을 벌리고 박수를 치는 관객들(그리고 후배들)의 모습을 보고 내가 다 뿌듯했다.





같은 동아리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여 무대를 하는 것,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의 관객이 되어주는 경험이 누구나 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까지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리는 무겁고 목은 쉬어 있었지만 기분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일상의 대부분은 평범하고 반복적이지만 이런 날이 가끔 끼어 있는 삶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사진첩 속에, 누군가의 스토리 속에, 그리고 우리의 대화 속에. 언제 다시 모일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또 자연스럽게 음악을 핑계 삼아 모일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