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요즘 사람들은 저도주를 마실까, 감성적인 이유를 들어 분석하라.
대학교를 졸업한 후, 당시 동고동락했던 밴드부 사람들을 가끔 만나면 빠지지 않고 하는 추억팔이가 있다.
"야 너 그때 기억나냐"라는 말로 우리는 과거로 떠난다.
12시에 학교 앞 술집 사장님이 마감을 알리면, 취한 애들을 부축해서 기숙사에 들여보내고 나머지 아쉬운애들, 멀쩡한 애들이 남아 서로 눈치를 본다. 그러다가 초코우유나 하나씩 먹자며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해룡슈퍼에 가서 조금만 더 먹자며 검은 비닐봉지에 달그락거리면서 소주와 종이컵을 사서 돌아온다. 후문 쪽에 있는 지역 운동장에 둘러앉아 주변을 보면 군데군데 초록색 빛이 밝혀져 있다. 그 깜깜한 데서 조금 더 놀아보겠다고 핸드폰 후레시 불빛 위에 소주병을 올려놓고 조명으로 활용하다니, 참 기가 막힌 열정이었다.
버스도 차도 다니지 않게 된 새벽의 외길엔 시내에서 술을 먹고 들어오면서 깔깔대는 애들을 태운 택시뿐이었다. 지금까지 아이돌 노래를 들으면서 신나게 놀던 우리는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를 틀고, 그다음 곡을 신청하며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당시 우리가 꽂혀 있었던 것은 자몽에 이슬이었다. 조은데이 블루베리 맛을 먹어봤냐, 소주는 프레시다 등등 많은 말들을 하면서도, 거기서 거기인 과일 소주 중에 뭐가 낫다며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면서 우리는 밤의 낭만을 함께 쌓아갔다. 술맛을 알면 얼마나 알게 되었다고 20살, 21살이 술맛을 논하는가 싶지만 그 씁쓰름한 자몽소주엔 알코올뿐이 아니라 낭만이 들어있었고, 미래와 추억을 넣고 있었다.
13도인 자몽에 이슬에 왜 그렇게 꽂혀있었나 생각해 보면 친구들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이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덜 취해있으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하고, 평소라면 하지 못했을 우리 인생에 대한 고민도 나누고, 알딸딸한 취기로 무장해서 좋아하는 선배에 대해서도 얘기도 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우정을 다지며 함께이기가 점점 힘들어짊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일까? 그래서 우리는 자몽에 이슬을 매개체로 이 순간을 불태워 기억해 보자는 듯 후회 없이 함께였다.
요즘 사람들은 저도주를 찾는다고 한다. 그 이유도 나와 같은 맥락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분 좋은 상태로 오랫동안 애정하는 상대와 함께이고 싶은 마음. 나중에 떠올렸을 때 "운동장에서 자몽에 이슬 먹었던 날"로 기억할 수 있게 저도주의 낭만을 빌리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