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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보다 일상을 더 위협했던 것은...

전업 엄마가 뭐 좀 해 보려고 할 때 생기는 일들

by 김봉란

학교에서 또! 긴급 문자가 왔다. 코로나 2단계 격상에 따라 또! 일주일에 한두 번만 등교를 한다고.

처음에야 학교를 못 간다니?!! 하고 놀랐지만, 이제는 또! 안 가나보다, 하고 받아들인다.


코로나 때문에 일상이 파괴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내 삶은 비슷하다. 경제적인 직격타를 맞은 자영업자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우리 집 상황은 그렇지 않고, 월급쟁이인 남편의 업도 힘들긴 매한가지이나 다행히 굶지 않고 지낸다. 2달간 둘째가 다녔던 어린이집이 폐원하고, 1학년에 입학하고도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첫째를 돌보느라 풀타임 육아 기간이 좀 더 길어졌을 뿐이다. 집 지키는 개처럼, 같은 자리에서, 아내와 엄마의 일을 동일하게 감당하고 있다. 전업 주부인 나는 원래도 집순이 체질이라 실외로 나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잘 놀고, 답답하면 아이들과 인적 드문 동네 뒷산에 올라 야호를 외친다.


아기를 키우는 내내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다니지 못했다. 만나고 싶은 절친이 있어도 1년에 몇 번 못 보고 산지 오래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으니, 다니고 싶은 운동이나 듣고 싶은 강의도 삼키는 게 평범한 일상이었다. 마지막으로 찾았던 공연장, 영화관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아 맞다! 재작년이었구나. 레이철 야마가타 콘서트가 간절하게 보고 싶어, 간신히 친정엄마 찬스를 얻어냈는데, 가슴 벅차게 공연을 보다가, 아이가 계속 운다는 문자에 신데렐라처럼 헐레벌떡 뛰어들어갔었지.)

그러니까, 생각해보니, 코로나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이미 출산을 함과 동시에 내게 임했던 것이다.

어쩌면 코로나 블루스라고 떠들썩한 상황은 이미 많은 산후우울증과 육아 우울증을 경험한 여자들에겐 새삼스럽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정마다 상황은 달라서 양가의 도움을 받는 집도 있을 테고, 운 좋게 좋은 보육시설을 만나, 자유부인의 여유를 잠깐씩 맛보는 이들도 있겠지만, 가끔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나오는 길이라고, 기분이 너무 이상하다고 하는 엄마를 만날 때도 있다.


"그냥 하나 낳자. 어피 낳을 텐데 싫은 소리 참을 거 없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낳아서 키우자."

정대현 씨는 마치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사자, 라든가 클림트의 키스 퍼즐 액자를 걸자, 같은 말을 하는 것처럼 큰 고민 없이 가볍게 말했다. (... 중략) 그래도 지영아,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게 되는 걸 생각해 봐.” (... 중략)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라며.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 82년생 김지영 중




마흔을 특별하게 마무리하고 싶어 70일간 매일 글을 쓰는 모임에 참여했다. 작가라는 오랜 꿈을 붙잡아 보려 발버둥 치는 시간이었다. 창고방에 계속 묵혀두고 미루어 놓았던 소원을 꺼내, 현실에서 실현해 보겠노라고 도전했다. 토해내는 글쓰기 스터디, 일명 '토글스' 온라인 세상에 발을 들여 보니,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여자, 엄마들이 꿈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있었다. 놀라웠다. 힘이 되었다. 같은 처지의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든 글 한 줄 쓰겠다고 용쓰는 그녀들이 정말 멋졌다. 함께함의 힘으로 나도 70일을 빼먹지 않고 완주했다.


그런데, 이 70일간의 글쓰기가 코로나보다 더 큰 위력으로 내 일상을 침범했다. 전업 엄마가 육아와 가사 외에 하고 싶은 것을 해 본다는 것은, 아이에겐 책 하나 덜 읽어주고 뽀로로를 한 편 보여주는 일이었다. 한 편뿐이랴. 30분이 1시간을 넘기도 했다. 가족의 입에 들어갈 미역국을 준비하여 끓이는 대신, 먹지 마라 엄포 놓던 라면을 끓여 아이들의 환심을 사는 일이었다. 치킨과 피자 상자가 늘었다. 어쩌면 아이들은 엄마의 글쓰기를 열렬히 응원할지도. 베란다에 쌓여버린 재활용 쓰레기에는 눈을 질끈 감으면 될 일이었다.


모든 것을 부지런히 다 해내는 슈퍼맘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세기에 남을 명작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아무튼 에너지가 딸렸다. 짜릿한 글쓰기의 맛을 뒤로한 채 , 어서 다시 집안일에 복귀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에게는 좀 미안하고, 남편이 참고 있다는 느낌에 안절부절못하는 순간들이 쌓였다. 아직, 글쓰기가 내 일상에 루틴으로 완전히 흡수되지 못했다. 때로는, 이렇게 집이 난장판인데 글을 쓰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을 때도 있었고, 나는 왜 이렇게 살림을 뚝딱뚝딱해내지 못하는가, 자괴감이 들었다. 마흔 무렵 책을 써보고, 족적 하나 남기고 싶은 마음은 그냥 좀 쉬고 싶어 졌다.


책 82년생 김지영은 불안한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정신과 상담을 받던 김지영 씨가 완쾌되지는 못했다고. 그녀를 상담하던 이해심 많은 정신과 의사는, 6년 만에 어렵게 애를 가진 병원의 에이스 여직원이 급하게 일을 그만두었으니,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는 독백을 남긴다. 작위적인 것 같으나, 가장 현실적인 엔딩이 아니었나 싶다.


나의 이야기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처럼 되면 좋겠다. 아들에게 잔소리하느라 집안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를 세상에도 들려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함께 글을 쓰는 그녀들의 책들도 모두 볼 수 있기를. 무용하지만 파이팅이라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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