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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후련한 새해 인사

마흔, 불완전함을 받아들일 것

by 김봉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숱하게 듣는 새해 인사지만, 이맘때면 나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꼭 한 번은 건네는 인사지만, 실은 별 감흥이 없다. 먹을 복이든, 일복이든, 돈복이든 욕심나지 않아 그런 게 아니다.


그건 마치,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산타가 오지 않는다는 걸 아는 내가,

이젠 내 아이에게 산타가 되어주는 일 밖에 남지 않았음을 아는 내가,

새해 인사가 새해 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과,

내가 무엇인가 노오오오력해야 복을 얻고,

내가 무엇인가 노력해도 복이 오지 않을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새해 복을 비는 우리가

가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며칠 전, 십 년 묵은 체증을 날려주는 새해 인사를 발견했다.

출처 : 박총 작가 facebook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0159051963294257&id=541314256




꿈꾸고 애썼던 이상적인 하루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꼬꼬마 시절에도 나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버릇이 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내 방 구석 구석마다 센터 학습처럼 꾸며 놓고 하고 싶은 일들과 놀이를 배치하고는, 그 공간들을 차례로 돌며 시간을 꽉 채워 무언가를 하려 했다.


그때의 마음이 생각난다.

어렸지만, 일종의 패배감을 느꼈다.

날마다 흡족하게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느린 맥박을 타고난 데다

손과 발이 굼뜸에도 불구하고

100가지씩 할 일 목록을 만들었다.

세 살 버릇 마흔까지 왔다.


오늘 목표한 일들의 절반도 처리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다. 회사를 다닐 적엔 그렇게 잡무에 시달렸다. 나중에 공부하면서 알게 된 건데, 원래 노동력 착취가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랬다. 나는 나만 일을 못해서 그런 줄.


가정을 꾸려 아이 둘을 낳고, 요즘에는 코로나 24시 돌봄을 감당하고 있다 보니, 밥 세 끼를 두 끼만 먹는 걸로 줄이고, 노벨 평화상 줘야 할 뽀로로님을 동원한다 해도, 일상이 숨차다.


누가 뭐라 하기 전에

내가 내 성에 차지 않는 것이 괴롭다.

'전업주부' 타이틀을 가진 내가

싱크대를 찬장 삼으며,

먼지는 아이들의 면역력을 키우는데 필수라 주장하고,

대충 키운 자식이 효도하는 거라며 애들 교육에 열 올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간신히 산다.


나만 왜 이렇게 못 할까?

어쩜 이렇게 모자랄까?

스스로 구박하면서.

네이버 블로그 스티커 : 평화로운 미어켓의 하루


이 모습 이대로 사십 년을 꽉 채워가는 중이다.


이제 알 때가 됐다.


나의 이상 속, 내가 추구하는, 완벽하게 부지런하고 근면 성실한 그녀는 실제의 내가 아님을.


반짝반짝하게 집안을 가꾸며,

남편과 자식들에게 웰빙 진수성찬을 차려주고,

아이들을 온화한 미소로 대하며,

엄마표 공부로 학습을 책임지고,

내 꿈을 위한 공부는 가족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새벽에 일찍이 일어나 정복하고,

거기다 돈까지 벌 파이프라인을 마련하는,

신화 속 여인은 내가 아니다.


작심삼일은 내 전공,

용두사미는 내 미덕.


나는 시작도 느리고

과정도 어영부영이며

결과는 미완성일지도 모른다.


이런 나를 누가 응원한단 말인가.


나뿐이다.


괜찮다.

원래 이렇게 불완전하게 지어진 것이 사람이다.


괜찮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이유는

오늘 못다 한 일 때문이다.


장하다.

그럼에도 자꾸만 갈망하는 나여.

추구하는 나여.



To love oneself is the beginning of a lifelong romance.

Oscar Wil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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