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실보다는 ‘삘’파다. 이성보다는 ‘마음’ 파이며 계획보다는 ‘벼락’ 파이다. 그런 방식으로 꾸준히 살아왔다. 삘과 마음과 벼락치기는 젊은이의 마음을 살만하지 않은가. 꽂히는 화두에 마음이 가는 대로 흠뻑 내어 주고, 온 시간과 땀과 정신을 홀라당 바쳐 밤을 하얗게 불사르는, 그런 식이었다.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던 몇 년간, 영감님이 오시는 날이면 일필휘지로 재기를 발휘해 내 마음에 쏙 드는 (다른 사람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글을 뽑아내는 날도 더러 있었다. 삘이 꽂힐 때, 글은 술술 쉽게 써졌고 흡족한 마음에 글쓰기의 기쁨이 컸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순간의 감동과 글의 실마리를 지면에 가두어 두지 않고, 미루는 날들이 많아졌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머릿속에서 난 언젠가 글을 쓸 거라며 벼르고 있었지만 갈수록 영감님의 방문이 뜸해졌다. 뜨문뜨문 쓰던 글들은 이내 맥이 툭 끊겨 버렸고, 그마저도 쓰지 않는 기나긴 공백이 커졌다. 다시 글을 써야겠다며 펜을 들었을 때는 감을 잃어버려, 무엇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막막했다.
나와 달리 근면 성실파인 한 친구는 처음부터 팡 터지는 글을 쓰지 않았지만, 그침 없이 썼다. 매일 농부가 밭에 나가 일하는 것처럼 글의 씨앗을 심고 또 가꿨다. 그녀는 어느새 글을 올려 작은 상들을 받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독립출판사를 차려 자신의 책도 냈다. 매일 쓰다 보니 그녀의 글들은 점점 독자의 마음에 가 닿는, 팡 터지는 수작이 되었다.
삶의 방식이 쌓인 마흔이 되어 보니 확실히 재기보다 성실이다. 더 어릴 적에는 잘 티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흔이 지나면서는 확실하게 보인다. ‘똑딱똑딱’ 시간의 축척과 함께한 것들의 위력을.
나같이 규칙적이지 못한 자유로운 영혼은 그러면 '이생망'인 건가?
묘안을 내었다. 성실한 사람 곁에 머물러 보았다.
꼬박꼬박 글을 쓰는 모임에 껴서 글벗들과 함께하는 배를 탔다.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며 100일 가까운 대장정을 마쳤다. 또, 그 이후 야행성 대표주자인 나는 '성실한 새벽형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이들 때문에 새벽 시간 아니면 나만의 시간을 갖기 힘든데, '성실한 새벽형 그녀'가 3시에 보내주는 줌 링크를 받고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로 인사를 하고 비대면으로 함께 글을 쓴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것인지라, 루틴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터덜터덜 따라가고 있다. 그녀도 내 덕에 책임감을 느껴 더 잘 일어난다고 했다. 함께함의 힘을 경험하고 있다.
억지로라도 책상에 앉아보면, 굴레 같은 약속이 삶의 지지대요, 받침대가 되어준다. 이것은 비단 글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닌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