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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는 안 풀리는 연애

첫 투고 도전기

by 김봉란

글을 쓰고 싶다고 마음먹은 것과 책을 내고 싶다고 소원을 품은 것 사이에는 꽤나 큰 간극이 있었다. 혼자 쏟아내는 뭉텅이들이야 소싯적 일기를 쓸 때부터 기록했다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읽혔으면 하는 글을 쓰는 것, 그다음으로는 손으로 만지고 펼치고 넘기고 줄 칠 수 있는 책으로 펴내는 것이 각각 다른 무게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요즘같이 SNS가 발달한 시대에는 손꾸럭 꼬물거릴 힘만 있다면야, 글 쓰는 게 뭐 어려운 일인가. 다만, 내 만족에만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는 글은 무얼까 고민했다.


마흔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다. ‘마흔’이 특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 생에 한 번뿐인 시기에 좀 색다른 도전들을 해 보며 기록해 두고 싶었다. 뒤따라오며, 마흔을 거쳐 가는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굉장한 아이디어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온라인 서점에 이미 나온 마흔에 관한 책을 한 번 검색해 봤을 뿐인데, 주눅이 들었다. 시중에 이미 마흔에 관한 책은 왜 그리 많은지. 바꾸어 말하는 불혹에 관한 책도 그랬다. 또, 함께 글을 쓰는 이들 중에도 마흔이 되면 너나없이 똑같은 야심을 품는 것을 보며 웃었다. 심지어, 마흔에 관한 글들을 쓰고 6개월쯤 지나 다시 온라인 서점에 검색해보니 그 사이에도 또! 새로운 마흔 책들이 올라와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마흔’ 키워드로 가장 판매량이 많은 1,2위는 주식과 부동산 관련 책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순위의 책으로는 마음 돌봄과 연관된 것이 많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인기 절정일 때, 서점 매대에 나란히 놓여 있던 책을 잊을 수가 없다.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라고. 그때도 예상은 했다. 인생이 갈수록 태산이겠구나.


꼭 사십 년을 채운 시간의 나이가 아니라, 인생의 중간정산을 해 보는 시기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 그리고 마음공부인가 보다. 한 편으로는 어른 치고 이것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 싶긴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돈을 버는 기술이라면 유난스러울 정도로 없고, 마음공부라면 매일 아이들에게 버럭인 내가 한 마디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스스로 반짝이는 생각이라 여겼던 소재로 나보다 앞선 많은 분들이 이미 빛의 축제를 해 버렸음을 알고 나니, 내가 쓸 수 있는 다른 주제를 찾게 되었다. 진짜 나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 파내고 파내도 또 해 줄 수 있는 이야기.


그건, 내가 발부터 머리끝까지 흠뻑 담그고 있는 전업주부의 삶이었다. 너무 흔한데 발언권은 별로 없는 김지영의 이야기 말이다. HERSTORY, 여성 서사가 주목받는 시대에 나도 한 말씀 보탤 것이라면, 엄마로서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데, 늪에 갇힌 것처럼 옴짝달싹 못하고 있어서 구조요청을 외치고 있는 이야기.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또 다른 그녀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며, 무엇보다 후련함을 줄 수 있는 이야기. 그것이 내가 쓸 수 있는 책이었다.


정식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처음 찾아갔던 글쓰기 교실의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자신의 첫 책이 세상에 나왔던 모험담을. 마치, 홀린 듯, 정말 쓰지 않을 수 없도록, 이야기가 자신에게 찾아왔다고 말이다.



내 속에 넘쳐서 삐져나오고 흘러내리는 김지영의 감격과 불만들을 엮어봤다.

그리고

난생처음 투고를 해 봤다.


평소에 정말 좋아하는 책이 나오는 출판사, 혹은 내 자식 같은 작품을 좋아해 줄 것 같은 출판사 몇을 골라 떨리는 마음으로 샘플원고를 작성 해 보내봤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른 새벽에 첫 메일을 보내고 반나절은 핸드폰을 병적으로 들여다봤다. 전화가 오지는 않을까, 메일 수신확인을 체크해 보면서 말이다. 그러나 핸드폰은 마치 우리 집에 와이파이가 터지나 의심이 들 정도로 조용했다. 아련한 기억들이 소환됐다. 상대보다 내가 더 좋아해서 연락 오기를 목 빠지도록 기다리던, 안 풀리는 연애의 순간들 말이다. 나를 바라봐줘 간절하게 목메던. 픽 미 픽 미를 빌던. 처절하고 안쓰러웠던.


낮에는 아이들 덕에 엄마 노릇으로 사방으로 잡아당기는 손들 잡아주느라 좀 나아졌고, 밤이 되고선 그동안 못 봤던 ‘사랑의 불시착’을 틀었다. 가상의 흥미로운 세계에 마음을 뺏기니, 좀 살 것 같았다. 그 옛날, 뼈가 녹아 버릴 만큼, 애타는 실연의 아픔을 잊으려 슬픈 드라마를 정주행 했던 대응방식과 비슷했다.


그리 이틀을 보내는 동안, 배려심이 돋보이는 메일들을 몇 받았다. 투고에 감사하다며 검토해보겠노라는 예의 바른 답메일은 구만리 희망길을 미리 걸어가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쨌든 꺼질듯한 마음의 촛불을 회생시켰고, 1인 출판사라 여력이 안 된다며 다른 곳과 잘 맺어지길 바란다는 답변은 거절인데도 수락된 것처럼 감사했다. 수신 확인조차 되지 않는 곳도 몇 있었다.


예전에 연애를 못하고 있는 친구에게 선배가 조언하기를 오랑캐 정신으로 자꾸자꾸 침입하듯 도전하라고 했다. 퇴짜 맞으면 또 다른 이를 찾고, 안 되면 기죽지 말고 또 도전하라고! 그렇게 자신과 맞는 사람을 만나갈 수 있는 거라고. 그 말이 뜬금없이, 결혼도 마친 내게, 이토록 강력하게 떠오를 날이 오게 될 줄이야.


그래, 무명하고 내세울 것 없는 내게 필요한 것은 오랑캐 정신이다!


평온함을 되찾고, 성실하게 글을 쓰고, 들이대는 오늘이다.

출판사 리스트의 바다로 항해를 시작한다. 낭군을 찾듯.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구애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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