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고백하세요

사랑해

by 김봉란
사랑해


생각처럼 입에서 쉽게 나오지 않는 말.

인생이 기억나는 한, 엄마, 아빠께도 잘 표현하지 못했던 말이다. 한창 달콤함에 빠져 있던 연애 시절에도 무척 쑥스러워서 조금씩 변형시켜 고백했던 기억이 난다.


사탕해. 샤룽해.

제대로 직구를 던지지 못했음에도 결혼은 했다. 이후에는 피차간에 낯간지러운 단어를 꺼낼 일이 더더욱 없어졌다.


그런 내게 요즘 매일, 직설적으로, 빨간 단어를 던지는 아이가 있다. 세 돌도 채 되지 않은 귀염둥이 둘째. 그녀는 사랑스러움이란 말을 표현하기 위해 태어난 듯 행동과 몸짓, 표정, 말본새가 어여쁘다. 물론 미운 네 살의 떼는 마음껏 부리지만 말이다.




24시간 코로나 밀착 육아가 수개월째이다 보니 육아 스트레스에 아이들을 대하는 내 태도가 거칠어지고, 막내에겐 뽀로로 안 보여준다는 협박을 예사로이 한다. 학습격차가 벌어진 현실에서 아래쪽에 자리 잡은 우리 애 좀 끌어올려 보겠다고 하루에 받아쓰기 10개라도 하자는 제안에 몸을 베베 꼬는 첫째에겐 등짝 스매시를 날리고 싶은 욕구가 불쑥 벌컥 올라온다. 근데, 부족한 엄마에게라도, 딸내미는 무시로 자기 마음을 흘린다.

책을 읽어줄 때, 맛있는 간식을 챙겨줄 때, 목욕을 하고 나왔을 때, 잠들기 직전에. 아이는 마르지 않는 마음샘에서 퐁퐁 솟아오르는 ‘사랑해’를 길어 내 잔에 자꾸 따라준다. 그뿐이랴. 축축한 뽀뽀세례도 거침없다. 늘상 품 안에 파고드는 아이들 덕에 스킨십 과잉이다. (그런 생각도 했다. 각자에게는 필요한 스킨십 총량이 있는데, 나는 지금 너무나 차고 넘쳐서 남편 손은 한 번 잡아볼 욕망이 들지 않는 거라고.)


이토록 넘치는 내 잔이, 그러나, 잘 흘러가지는 못하고 있다. 엄마인 나는, 여전히 나의 엄마에게 ‘사’ 자도 못 꺼내고, 남편에게도 뭐... 아이는 그토록 툭툭 엎지르듯 쉬운 것이 내겐 왜 이리 어려울까?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을까? 아니면 성장하면서 변했을까?


그러고 보니 유치원 앞에서 뽀뽀를 꼭 2번은 하고, 안녕을 10번씩 해야 들어가던 아들이 열 살도 안 됐는데, 벌써 내게 인상을 구길 때의, 고 표정이 생각난다. 애정 표현이란 것이 만 삼 년만 효도한다는 아기들만의 선물이진 않겠지만, 둘째도 핑크빛 마음을 후하게 나누는 날이 길지 않을 수 있겠다.

안 돼!

꼬물이들과 어색해지는 밀착과 포옹, 생각만으로도 슬퍼진다. 조치가 필요하다.


사랑해요!

정녕, 1년에 한 번 어버이날에나 문자로 간신히 전송하는 글이 되지 않도록, 비장하게 용기를 끌어 모아야 간신히 뱉을 수 있는 구절이 되지 않도록, 부모님의 임종을 앞두고 한탄스럽게 오열하며 흐느껴 실토하는 마지막 말이 되지 않도록.


평소에 가정 안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분위기가 공기처럼 따뜻하고 자연스러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솔직히, 막내보다 덜 사랑스러워진 첫째 아들에게 먼저 볼을 부비며 사랑해 속삭이련다.

힘겨운 일을 겪어 마음 아픈 남편에게도 백 년 만에 슬쩍 사랑해 흘려야지.

물론 그는, 이 여자가 미쳤나 싶은 표정으로 바라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엄마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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