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영어공부를 시작하며

by 김봉란

아들에게 쪽지를 쥐어줬다.

마이 네임 이즈 _____
아이 앰 나인 이어즈 올드.

한글로 또박또박 적어줬다.


하루에 한 권씩 영어 원서 읽기 모임에 들여놓았다. 아들 말이다. 아들이 하루에 한 권씩 읽어야 하는데, 실은 엄마가 읽어주면서 따라 읽게 만들어야 한다. 그는 아직 영어 까막눈이다. 유아기 때부터 영어 유치원은 안 보내도 날마다 영어 그림책은 읽어줘야지, 그래야지, 내일은 꼭, 하다가 아이가 아홉 살이 되었다. 그간 영어 책이 집에 없었던 건 아니다. 실천을 못하는 부족함을 장비 구입에 돈을 쏟아 거짓 안정으로 마음을 달랬다. 학원은 절대로 다니기 싫다는 아이를 존중했다. 집에서 가르치는 건 이리저리 미루다, 나의 자발성은 절대로 신뢰하지 말자며 온라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어제저녁은 오리엔테이션의 시간이었다. 대여섯 명 정도의 아이들이 줌 앞에 앉아 첫인사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간단히 이름과 나이 정도를 영어로 말할 수 있도록 준비 해오라 셨다. 함께 하는 아이들의 인사를 들어보니, 이미 수개월 째 프로젝트에 동참 중이라며 편안히 말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아들처럼 이곳에는 처음이지만,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유튜브에도 영상을 올리고 있다고 똘똘하게 발언하는 친구도 있었다.



아들은 자기 차례가 되자, 책상 밑으로 엄마가 쥐어준 쪽지를 내려 잡은 골똘히 들여다보며, 화면에는 눈도 못 맞췄다,

마이 네.? 이..즈 . . . 한글인데 평소 읽는 한국말이 아니라 그런가, 유난히 떠듬거렸다.




아는 엄마가 아이 8살에 처음으로 영어 상담을 받으러 유명한 P학원에 갔다가, 롸이팅은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두 눈을 껌뻑이며 리스닝이나 리딩도 이제 배우러 찾아온 거라고 했다가, 외계인 취급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 나의 소신은 한 해 한 해 흔들리고 있다. 영어 유치원에서 잠시 일을 했었다. 아이들이 5세에 입학해 7세까지 다니다 보면 정말로 원어민과 허물없이 영어로 쌸라쌸라 말하는 모습에 감탄하긴 했다. 하지만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많이 괴로워 보였고, 안쓰러웠고, 이 와중에 인성 교육은 더더욱 어려워 보였다.


유년 시절, 많이 많이 많이 놀고, 놀이터 죽돌이로 살고, 숲을 자주 가는 유치원을 다니고, 책이나 많이 읽도록 하며 소신껏 키웠는데, 갑자기 이런 편차를 경험하니, 벌써 좀 조급증이 나려고 한다. 아이가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개척해 나가길 바라던 초심이, 나처럼 입시에 떠밀려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진심이, 그럼에도 공부는 잘해야지, 뒤처지지 말아야지, 좋은 대학 가야지, 인이 박힌 메시지를 쿨하게 떨쳐버리기엔 좀 모자란가 보다.


2월의 첫날이다.


영어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어제의 나와, 어제의 내 아이를

오늘과 비교하라고.


엄마인 내가 더 공부해야겠다.

내가 싫었던, 쓸데없었던, 헛된, 나의 어제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진짜로, 제대로, 분명히 원하는 내일은 무엇인지.

그래서 오늘은 어찌 보낼 건지.


그 사유의 정수는

자녀교육의 모습으로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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