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당하는 일

인생의 성장점

by 김봉란

유치원을 졸업하고 학교를 몇 번 못 갔던 아들이 어제 개학을 했다. 2학년이란다. 내 눈에는 아직 애기 같은데 벌써 십 대가 코앞이다!



올해의 담임 선생님은 어떤 분일지 궁금했다. 작년에는 푸근하고 따뜻한 아줌마 선생님이셨다. 많이 뵙지는 못했어도, 선생님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호불호가 있었다. 좀 더 학습적인 부분을 잡아주길 원하는 부모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처음 학교를 갔으니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운 게 최고라 생각했다. 그렇게, 받아쓰기는 좀 못해도 일주일에 두 번 학교 가서 피구도 하고, 종이접기도 하고, 문제도 좀 풀어오는 게 신나는 모양이었다. 1학년 때 선생님은 수학 문제지를 채점하실 때에도, 틀렸다고 작대기를 그어 놓지 않으셨다. 동그라미는 선명하게 표시하고, 잘못 푼 문제는 어떻게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지 코멘트를 적어 놓으셨다. 유치원 때부터 친하던 아이들도 많아, 학교 안 간다는 소리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공지 사항에 개학날에는 학교에서 점심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정확히 몇 시에 끝나는지는 알 수 없어 아침부터 학교에 전화를 했다. 교실로 바로 연결이 되어 새로운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남달랐다. 나는 음악을 전공해서 소리에 민감한 편인데, 확실히 사람의 음성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대략의 성격이 묻어난 달까? 1학년 때 선생님과 완전히 달랐다. 여자지만 군인처럼 절도 있고 씩씩한, 딱 부러진 기운이 풍겼다.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미국에서 다녔다. 2학년 때 선생님의 성함은 Mrs. Queens였다. 선생님이 무서웠던 건 아니지만, 지적당하고 혼났던 기억들이 있다.



한 번은 내가 선생님이 내신 문제를 잘 맞혀서 사탕을 받으러 앞에 나갔다. 기쁘게 받아 들고 내 자리로 돌아가려던 찰나에 선생님이 물으셨다. “Elizabeth, 뭐 잊은 거 없니?” 머리를 이리저리 갸우뚱거려 봐도 전혀 모르겠다. 선생님은 내게 “Thank You”를 잊었다며 다시 사탕을 가져가셨다. 멋쩍고 좀 부끄러웠다. 덕분에, Thank You를 확실히 익혔다.


어떤 날엔 글짓기 시간에 짧은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과제를 내주셨다. 나는 짝꿍이랑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이야기가 좀 재미없다고 느꼈다. 아무래도 수정을 해야겠다 싶어, 새로운 이야기를 다시 지어서 냈다. 모두의 발표가 끝나자,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와 짝꿍을 불러냈다. “너희 둘 얘기가 상당히 비슷한데, 혹시 너희 중에 한 명이 짝의 이야기를 따라 했니?” 나는 작정하고 친구의 이야기를 베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친구 이야기의 재밌는 요소를 내 얘기에 반영했던 모양이다. 잘못한 건 줄도 몰랐는데, 선생님이 혼내시는 강도가 평소와 다르게 너무 심각하고 무거워서, 그렇게까지 야단맞는 게 억울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다시 쓰라고 하셨고, 나는 책상에 엎드려 씩씩거리며, 내가 얼마나 더 근사한 이야기를 짓나 두고 보라는 심정으로 과제를 했다. 선생님은 새로운 이야기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표절이 뭔지도 모르던 어린이에게 남의 수고로운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확실하게 각인시켜 준 사건이었다.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갔다. 신발을 갈아 신고 교문에서 나오는 아이들이 재잘거렸다. 선생님이 무서우시고, 엄하다고. 우리 아들도 낯선 분위기에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래도 2학년 생활이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엄마의 생각보다 강하다. 미성숙함이 성숙으로 변하기 위해서 어떤 일들은 확실하게 지적을 받아봄직하다. 부끄러움을 느낄만한 가치 있는 일도 있다. 세월이 한참 지날 때까지 잊히지 않고 강렬하게 마음에 새겨진 것들은 상처만이 아니다. 인생의 성장점들이 그렇다.


우리 아들이 올해는 인사를 좀 더 잘하고, 식사예절도 더 좋아졌으면 한다. 집에서 안 가르치고 뭐했느냐고? 엄마 말만으로 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래서 학교도, 친구도, 선생님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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