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고 미루던 일이었다. 사치처럼 여겨지는 일. 밥 먹여주지 않는 일. 당장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시간은 잡아먹고. 돈을 얼마나 쓰게 될지 미지수인 일. 취미라고 부르는 활동 말이다. 베짱이라면 모를까, 개미처럼 살아야 하는 내겐, ‘언젠가, 언젠가’ 노래만 부르다 노년에 손을 덜덜 떨며 할 수나 있을까 싶은 생활이었다.
그렇게 손사래 치며 거리를 뒀던 건, 바로 그림 그리는 일이었다. 너무 싱거운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作
4살 딸내미를 돌보며 곁에서 크레파스로 끼적이면 될 걸. 하루에 100장씩 그려재끼는 아이 곁에서 이것이야말로 색칠 지옥이구나 몸부림치지 않고, 함께 몰입하며 무한히 이어지는 시간을 즐기면 그만인 걸.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림 그리기는 좀 더 우아했다. 방바닥에서 마구잡이로 펼쳐진 종이 쪼가리들과 함께 뒹굴며 크레파스 똥에서 수영하기는 싫었다. 내 작업 자리를 마련해, 팔레트를 꺼내고, 이젤 앞에서 커다란 캔버스 위에 겹겹이 물감을 올린다거나, 누드모델의 크로키를 담아보는 상상을 했다. 다소 거창했다. 그러니 시작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지금은 아니지. 내가 집안일해야지, 아이 키워야지, 교육시켜야지, 또, 남편만 의지하지 말고 돈벌이되는 일도 시도해보겠다며? 그러니 마음에 품은 또 한 가지 열망은 당연히 주저앉혀야 했다. 일에 메여 사는 직장인도 다를 바 없을 테지. 평범한 어른의 과로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부분의 에너지는 최대한 아껴야 하는 법이니까.
그림에 대한 마음은, 그러나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은근하게 계속 남아있었다. 목마른 자는 언제고 물을 찾으면 헐레벌떡 들이마실 준비가 되어 있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은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다가 물을 만났다.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는 것이 최고의 육아라 생각하며 집에 여러 전집을 들였다. 그러나 후에는 그림책을 사는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내 만족을 위한 것인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사노 요코 作
작년 초엔 이런 일도 있었다. 남편 몰래 할부 24개월로 백만 원도 넘는 그림책 270여 권을 들였다. 일러스트가 예쁘고 유명한 작가들의 책이 다수 포함된 전집이었다. 택배가 온 날에는 공공칠 작전을 수행하듯, 택배가 도착할 시간과 남편의 귀가 시간을 계산해, 서로 마주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했다. 몇 개의 박스는 창고방 옷가지들 밑에 숨겨놓고, 한 두 박스만 개봉해서 바로 책장에 꽂아두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티 나지 않게 꺼내 보았다. 2년을 꼬박 빚진 자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지만, 좁은 아이 방 한켠에 앉아 있노라면 감성을 자극하는 여우, 새침한 고양이, 마법을 부리는 마녀, 용감하게 모험을 떠나는 소년소녀들에 둘러싸인 만족감에 그날 육아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했다. 책을 한 권씩 꺼내 읽을 때의 행복감은, 아이가 목숨 거는 사탕과 쪼꼬를 까먹는 기분이랄까?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도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놀랄만한 디테일, 혹은 환상적인 색감, 등 그림 자체를 감상하면서 얻는 풍요로움으로 부자가 되었다. 책육아계의 대모 하은맘도 그런 얘길 했다. 그림책을 보고 자라는 아이는 마치 유럽의 미술관을 매일 드나들며 감성을 키우는 격이라고. 격하게 동의했다.
이수지 作
이수지 작가의 책은 글 한 점 없는데, 곧이라도 그림이 지면에서 튀어나와 살아 춤출 것만 같았다.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화풍은 따스한 그림 속에 내가 풍덩 들어가 눕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作
그림책 작가들을 하나씩 알아가며 흠모하던 중, 이 분들을 인스타그램으로도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잘난 이미지들이 많은 플랫폼이라 괜히 엿보다 작아지는 기분이 들어 잘 찾아들어가지 않던 곳이었는데, 화가들, 예술가들, 그림 작가들의 오늘 작업을 바로바로 볼 수 있다니, 정말 획기적인 공간이 아닌가.
그 후 내겐 공짜 취미가 생겼다. 이미지는 넘쳐흘렀지만 유독 눈길이 머무는 그림들이 있었다. 조예는 없지만 취향은 있는 내가, 입맛대로 작가를 선정해, 나만의 온라인 갤러리에 나름대로 큐레이팅 한 작품을 걸었다. 아름다운 사진을 보는 시간이 내게 쉼이었다. 안구를 정화하는 힐링타임! 설거지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아이를 재우고 이불에 누워, 고상하게 미술 감상 시간을 가졌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일상이 고단해도 탈출구가 있는 기분이랄까.
에바알머슨 작가 인스타그램
김참새 작가 인스타그램
장줄리앙 작가 인스타그램
나는 동서를 넘나들며, 그림책 작가 외에도 디자이너, 만화가, 퓨전 아티스트 등의 작품들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었다. 색의 향연과 우아한 형태들,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날마다 위안을 주었다.
남의 기준이 어떨진 몰라도
나만의 안목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의 호불호, 지향, 이상이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취미는 다른 세계를 탐험하는 동시에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또한, 취미에도 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