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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해냈다

아날로그 엄마의 현대 생활 적응기

by 김봉란

햄버거를 사 먹으러 드물게 패스트푸드점을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좀 버벅거린다.
연식을 드러내면서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머뭇.
몇 번 되돌아갔다 다시 시작했다 하며 뒷사람을 의식하다, 먼저 하세요,라고 말하곤 한다. 그 틈에 할인쿠폰은 어찌 쓰는 건가 검색을 하기도.

진짜 큰일이다. 70대 80대까지 생존해서 잘 발맞추어 살아야 할 텐데, 걱정이 든다.

2월쯤, 운 좋게 친정엄마 찬스를 써서 아이들을 맡기고 외출한 적이 있다. 서울의 한 스터디 카페에 갔는데, 입구에는 사람 하나 없고 기계만 덜렁 있었다. 당황하지 말자. 어려울 것 없어, 라며 순서대로 스크린을 누르려는데, 첫 화면부터 나에게 해당하는 옵션이 보이지 않는다. 몇 분을 우두커니 서서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고민했다. 여기저기 화면을 두드려봤다. 당최 모르겠다.

십 분쯤 씨름하고 있으니, 다행히 사람 하나 다가왔다. 때마침 입장하려는 학생이다.
창피하지만,
...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물으니
학생은 아주 간단하게 요롷게 조롷게 알려주고,
저 먼저 들어갈게요, 라며 홀연히 사라졌다.

덩그러니 다시 혼자가 되어
아까 학생의 지시대로 하려는데,
그 첫 화면이 또 안 나온다.
포기하고 돌아갈까 하는 찰나, 얼떨결에 누른 뭔가 덕분에 그제야 학생이 알려준 화면이 나타난다.
마음의 진이 빠졌다.

들어가서도 좀, 화성에 온 기분이었다.
첫째가 핸드폰 달라고 조르는 소리, 둘째가 간식 먹고 싶다 우는 소리, 남매가 핏대 세우며 싸우는 소음, 빨래 다 됐다는 알림음 하나 없는 고요한 공기. 숨도 조심스럽게 쉬는 절대 적막.

딱 알맞은 습도와 조도를 맞추어놓은 쾌적함 속에서
고용이 아니라 고요의 불평등을 느꼈다.
6시간 동안, 1달간 찔끔찔끔 산만하게 썼던 것보다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냈다. 일 분 일 초가 아까워, 화장실 갈 욕구조차 못 느꼈다.

탈직장, 탈서울, 탈싱글, 탈신혼한 지 10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엄마라고 다 이렇지 않다. 힙한 워킹맘도 많다. 그저 나의 빠릿빠릿하지 않은 아날로그 성정이 더욱 힘을 받았다.

그래서 어제의 일은 좀 기록해둘 만하다.
휴게소에서 로봇이 만들어 주는 청포도 주스를 막힘없이 주문 해 받았다.

인간승리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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