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남성들을 좋아한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잘 쓰인 중년 남성의 글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스마트 폰을 매일 사용하고, 책을 덜 읽으면서 이렇게 된 것 같다. 인터넷의 개인 SNS 글을 더 자주 보면서 말이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먼저 성별과 나이를 걸러 글을 보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글에 반해 계속해서 보고 따르는 경우, 주인공은 중장년 남성일 때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분들의 글은 사유에 확신이 있어 신뢰감을 주고,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담은 따뜻한 깊이가 있고, 농밀하고 풍부한 언어의 맛과 재치를 선물한다.
여성운동에 꽤 적극적인 내가, 그것을 깨닫고선 상당히 의아했지만,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한 글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MBC 피디 출신의 권성민 피디 브런치 글에서 그가 요즘 맡고 있는 <톡이나 할까>의 제작기를 읽었다. 여성 호스트를 섭외하는 어려움에 대해 서술했다. ‘예능계 전반에 여성 출연자 비율이 남성보다 훨씬 적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제작진들이 남성 출연자를 더 선호하는 경향도 있겠지만, 여성 출연자들 스스로가 남성 출연자들보다 훨씬 조심스럽고 까다롭게 섭외에 응하기 때문이다. 남자 출연자였으면 웃고 넘어갔을 많은 일들이 여자 출연자들에게 꽤 험한 반응으로 돌아온 일이 잦았다.’
글을 쓸 때 자가 검열 때문에 삼키는 말이 많은 나 같은 여성들이 많은가 보다. 실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글을 공개하는 남성들은 반복된 훈련으로 중년 무렵이 되었을 때, 훨씬 멋진 글을 쓸 가능성이 높고, 그리하여 마침내 내가 흠모하는, 글이 반짝이는, 나이 든 남성 오피니언 리더가 되는 건 아닐까.
농민일보
올해 4월 무렵, 새롭게 필진을 구성해 멋진 오피니언면을 구성했다는 농민 일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김탁환 작가의 얼굴이 반가워서이기도 했고, 고진하, 이문재 같은 시인 필진이 4명이나 되는 것이 신선했지만, 총 13명의 사진 중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이 충격이었다. 2021년의 '새롭게' 뽑힌 구성인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확실했다. 긴 머리(상징적으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다 보니 다른 신문들의 구성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새로운 필진, 국민일보 10명 전원 남성, 동아 일보 18:5, 조선일보 7:4, 한국일보 4:4, 세계일보 11:4, 한겨레 10:6, 경향신문 7:3. 칼보다도 강하다는 펜을 휘두르는 남성들의 생각을 너무나 쉽게, 많이 주입당하고 사는 현실이다.
국민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세계일보
이런 현상은 글에서만 두드러지는 건 아니다. 계속된 코로나로 기독교 신자인 내가 대면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자, 유튜브로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는데, 알고리즘에 의해서 같은 교단 내의 여러 유명한 교회 예배들을 구경해 보니, 한결같이 남성 목사님들이 강대상에서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 여태껏 내가 좋아했던 목사님들 역시 모두 남성이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나는 40여 년 동안 매주 주일마다 남성 목회자의 말씀을 들으며 살아왔다.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지도 않고 말이다. 세상은 여자와 남자가 반씩 있고, 교인도 여자와 남자가 반씩, 아니 여자가 훨씬 많은데, 새삼 이건 좀 비정상적인 시스템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어디 식당을 가봐도 중년 남성 한 명에 좀 더 연로하신 여성분들이 단체로 모여있으면 십중 구십은 교회 봉사하시는 권사님들 모임일 것이다. 정작 활동하는 일꾼들은 여성인데, 앞에서 마이크를 쥐고 발언을 하고, 중요한 당회 결정을 하며 이끌어가는 건 남성들이다. 참 신기하다. 흡사 야쿠르트 회사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담이지만, 올해의 노벨상 발표를 보면서도 성비를 확인했다. 여성 수상자는 한 명뿐이었다. 120년 동안 여성 수상자는 975명 중 58명으로 1/10도 되지 못했다. 집안을 청소하다 대학 졸업앨범을 무심코 꺼냈을 때도 놀랐다. 당시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교수님 사진란만 보면 내가 대학이 아니라 군대를 다녔던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교수진의 성비 역시 남초가 심했다.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EBS와 K-MOOK의 콜라보로 진행되었던 위대한 수업의 글로벌 리더 강연자들 역시 하나 같이 남성들 뿐이었다.
어디에 눈을 두건 중장년 남성들이 포진해 있다. 나 말고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늙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들의 가르침을 받으려 하고, 한 말씀, 의견이라도 들려주십사 하며 경청한다.
단, 하나 기억할 것은, 늙은 남성들이 이토록 멋지게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오로지 일과 배움에만 몰입하도록 끼니를 챙겨주고 청소해 주고 아이들을 키워낸, 보이지 않는 여자들의 덕이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