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게 마법 걸기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만남

by 김봉란
https://i.gifer.com/g39J.gif


설마 피?


끈적한 이물감. 익숙하면서도 까마득하게 낯선 불쾌한 이 느낌. 그러니까, 임신 9개월과 33개월 된 아이의 나이를 합쳐, 40개월 만이다. 그렇게 미루고 싶었건만 올 것이 왔다. 황급히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임신 후, 4년 만에 그걸 찾으려니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가물가물하다.



다시 만나 반갑지 않다.

생리대.



나는 완전 모유수유로 아기를 키웠다. 요즘은 좋아진 분유 성분을 신뢰해서 엄마들이 소신껏 혼합 수유를 하기도 하고, 대체로 적당히 1년쯤 되면 단유를 한다. 또, 대세를 이루는 서양식 육아서에는 밤중에 아기가 깨었을 때 수유하는 것을 빨리 끊길 권장 한다. 난 인위적인 육아 지침들을 따르려던 시도들이 너무 힘들어 그냥 아기가 먹고 싶어 할 때마다 젖을 물리고 밤중 수유도 오랫동안 끊지 않았더니, 호르몬의 영향으로 생리가 이리도 늦게 돌아온 것이다. 자연피임의 놀라운 원리를 체험했다.

(참고로, 밤중 수유가 꼭 치아우식으로 이어지는 건 아님을 경험했다. 아들은 9세에 처음으로 충치가 생겼다.)



육아에 지친 엄마에게 피임의 효과보다는 생리대 값을 아껴서 좋았고 안 그래도 철분이 부족한 몸에 더 이상의 출혈을 막아서 유용했다. 무엇보다 잠시나마 남자의 몸처럼 자유로웠다. 생리를 안 하는 건 정말이지 세상 편한 일이었다.



나의 생리로 말할 것 같으면 상당히 유난스러웠다. 1년에 한두 번 꼴로는 식은땀이 나고 걸을 수 없을 정도의 복통이 찾아왔다. 대학생 때 과외하러 간 학생 집에서 중간에 수업을 중단하고 배를 움켜잡으며 나오니 어머님이 누워서 좀 쉬다 가라고 배려해 주셔서 그 집 안방 침대에 누워 정신 놓고 잤던 일이 기억난다. 회사원이 돼서는 미국으로 출장을 갔다가 여유시간에 동료들은 모두 디즈니랜드에 놀러 간 사이, 숙소에 틀어박혀 꼬박 한 나절을 깨어나지 못했던 일도 있다. 다행히 그날 집에 있으면, 맘 편히 나 죽네를 읊조리며 침대에서 데굴데굴. 무슨 호르몬이 이리도 요란한 작용을 하는 건지, 속에 것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뿜어져 나왔다. 좀 더 참을만한 쪽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위든 뒤로든 곤란하긴 매한가지였다. 생리 전 증후군도 심해, 생리가 시작하기 1주일 전부터 뜬금없는 눈물과 사투를 벌였다. 거스를 수 없는 우울감이 마음을 울렁거리게 했다.



널뛰듯 동요하던 감정들이 평온을 찾고 잠이 쏟아지던 무거운 몸이 피로를 벗어, 해방을 외치려는 순간, 생리 씨가 씨익 웃는다. “3주 뒤에 만나요.” 나쁜 놈, 징글징글한 놈, 귀찮은 놈!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각기 받은 벌이 다른데 아담인 남자는 평생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살 수 있고, 하와인 여자는 해산의 고통이 있으리라 했다. 어렸을 땐 이것이 남자에게 더 가혹한 거라 생각했다. 평생의 땀과 순간의 고통을 어찌 비교하랴. 그러나 출산은 한 날이지만, 심지어 이 좋은 세상엔 무통주사라는 것도 생겨났지만, 임신할 수 있는 몸을 40여 년간 유지하는 건 그의 1/4인 10년을 마법에 걸린 상태로 지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맛이 간’, ‘혹시 그날이냐’의 예민한 상태로 말이다. 현대의 여성들은 밥벌이를 향한 치열한 시장에서 남자의 징벌을 함께 짊어지고 있다. 해산에 자동적으로 따르는 육아까지 감당하면서 말이다. 아담들도 하와의 세계에 가까이 오면 좋겠는데, 직접 체험은 못해도 공감하며 여성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 가면 좋겠는데, 그러질 못한다. 출산 시에는 옆자리를 지키며 힘겨운 순간을 목도하고 머리라도 뽑혀줄 수 있지만 ‘마법’, ‘그날’, ‘멘스’는 무지하게 지나친다. 월경은 침묵 속에서 왔다 가기 때문이다. 가임기 여성이라면 모두 겪고 있는 것인데 마치 아무도 생리를 하지 않는 것처럼 숨기며 살아간다. 여성의 삶에 총체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목소리는 없다. 가여운 하와들.



나도 생리를 말하는 것이 겸연쩍은 사람이다. 이효리가 자신의 sns에 면생리대를 세면대에서 빨고 있는 붉은 장면을 스케치로 그려 올렸을 때 많이 놀랐다. 박총 작가가 폐경을 앞둔 아내에게, 제 손으로 씻어낸 속옷을 더 오래 입혀주고 싶다며, 핏빛 빨래를 대신했다는 글을 봤을 때도 애틋하지만 민망함이 앞섰다. 생리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건 여전히 내게 망측한 일이다. 그것은 출산의 이야기와 다르다.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로 밥 말아먹고 국 끓여먹듯 여자들의 출산 경험담은 영웅전이다. 어쩌면 출산은 아이라는 존재를 생산해 낸 것이라 자랑할 만하고 생리는 만들어진 아기집이 허물어지는 ‘실패담’이라 꺼리게 된 걸지도. 혹은 고대사회에서는 하혈하는 여성을 불결하다 취급했으니 쉬쉬하는 은밀함의 기원이 거기에 있는지도.





하여 농담인지 진담인지 어느 남자는 생리대 광고를 보고 생리혈이 파란빛이라고 생각했다나? 한 달에 하루면 끝나는 일인 줄 알았다나. 생리대는 하루 한 개로 쓰는 건 줄 알았다나.


아무쪼록 아주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생리는 유난히 양이 많았다. 밤에나 사용하는 오버나이트 패드를 낮에 착용했고 밤에는 그로도 감당이 안 돼서 아이의 하기스 기저귀를 받쳐 차고 이틀을 보냈다. 어렸을 때는 멋모르고 적응했는데 다 커서 이 어색한 하혈을 하고 있자니 마치 남자가 갑자기 생리를 하는 기분이었다. 온통 신경이 아래에 쏠려 안절부절못했다. 아이와 놀아주고 대화하는 그런 아주 평범한 일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나는 도대체 이런 몸으로 어떻게 체육활동을 했을까? 중요한 시험들은 제대로 치를 수 있었을까? 생리휴가 쓸 생각은 꿈에도 할 수 없이, 쉼 없는 야근은 어찌 감당했나? 잦은 출장은 어찌 다녔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출산하고 나서 생리통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만세!)


멍하게 소파에 누운 내게 지나가던 남편이 왜 이렇게 늘어져 있느냐고 핀잔을 줬다. 울컥이 올라왔다. “당신이 하루 종일 헌혈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봐! 기저귀를 차고 다녀야 하고 허리도 끊어질 거 같아. 몸은 만신창인데 하던 일도 그대로 해내야 해. 어떨 거 같아?!” 남편은 괜히 건드렸다 싶은지 눈치를 살폈다. 그는 멋쩍게 몸보신이나 하러 가자고 달랬다.



왜 남자들에게는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어 더 강한 근육으로 큰 힘을 내게 하고, 승부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걸까?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분비되는 여자는 지랄 맞은 생리를 하고 민감해지며 감정이 변화무쌍해질 수 있는데, 애초에 왜 이렇게 지어졌을까? 남자와 여자가 영화 ‘체인지’에서처럼 서로 몸을 바꿔 삶을 경험해 볼 수만 있다면…….



이런 생각은 이미 1985년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란 책이 미국에서 출간됐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자가 생리를 한다면 자기들이 얼마나 오래 생리를 하며, 생리량이 얼마나 많은지 자랑하며 떠들어댈 것이다.’



한 번 상상해 봤다. 남자들에게 단체로 ‘마법’을 ㅡ 수리수리 마하수리 얍! 이제 그들의 아랫도리에도 구멍이 하나 더 생겼다. 가운데 구멍으로 혈액이 흐르는 ‘그날’엔 너도 나도 당연하게 휴가를 쓴다. 아저씨 김대리와 아줌마 이과장은 서로의 ‘주기’를 확인하여 출장 스케줄을 잡는다. 당직 순서를 분배하듯 자연스럽게. 학교와 회사마다 화장실에는 생리대가 비치되어 언제나 무료로 쓸 수 있고, 응급 상황을 위해 간단히 씻을 수 있는 샤워실, 빨래할 수 있는 미니 세탁기도 배치된다. 생리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기기들도 더욱 발전한다. 생리 전 증후군의 불편을 겪는 이를 위한 심신 안정 프로그램도 생긴다.


민감하게 다른 이의 기분을 살피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 풍부한 감정으로 서로 경청하며 공감한다.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이 적절하게, 조화롭게 공존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마법의 나라는 없다.


핸드폰으로 생리대를 주문하던 내게 9살 아들이 물었다.

“엄마, 뭐 사요?”

나는 순간 좀 얼버무리며 입을 닫으려는데, (가끔 천재인가 의심하게 만드는)네 살 딸내미가 또랑또랑하게 대답한다.

“엄마, 기저귀 사잖아.”


무심코 숨기려는 나의 어색한 본능과 달리 당당한 미래 여성은 제 역할을 잘해 주었다. 앞날이 밝다.


입을 열어 남편에게, 오빠에게, 동생에게 생리를 말하자. 자연스러운 화제가 될 때까지 자꾸 입에 올리자.

생리는 죄가 아니다.

이전 03화스트레스 배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