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 인생의 대선배들은 내게 이런 얘길 했다.
"불타는 사랑은 없다."
"전우애, 의리로 사는 거다."
"아내가 벽장처럼 느껴진다."
LittleThings.com
백세까지도 사랑타령만 할 것 같은 내게 이건 정말 끔찍한 이야기였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난 절대로 그리 살지 않으리. 잉꼬부부의 모습을 자랑하는 연예인들을 떠올리며,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는 격한 애정의 모양으로 살길 다짐했다. 아무렴!
그 얘기를 해 준 사람들은 내가 평소에 참 좋아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 했다. 삶의 다른 영역에서는 닮고 싶은 열정가이며 탁월한 글쟁이들이었는데, 아무래도 일에 매진하느라 사랑, 가정까지는 에너지가 뻗치질 않는가 보다 생각했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했으니 무미건조한 관계의 불행 같은 건 견디며 사는가 보다 이해했다.
그러니깐, 난 뜨겁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불타지 않는 감정으로 함께 늙어가는 건
불행이라 단정했다.
헌데 신혼에 발가락만 담가본 채 곧바로 임신, 출산, 육아에 뛰어든 지 한 2년 만에 이 명언들이 살갗에 와닿기 시작했다. 이 모든 비극은 남편이 방귀를 텄을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일부러 더 크고 시원하게, 힘차게 들려주는 방귀소리! 그래, 그게 발단인 것 같다.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 이건 남편의 잘못이다. 발단의 물고가 텄으니 그 뒤로 펼쳐지는 전개 위기의 상승세에 나도 편승했다. 늘어난 내복 차림이 부끄럽지 않았다. 언제 감았는지 가물가물한 머리를 긁적이며 눈꽃 같은 비듬을 떨구는 것도 눈치 보지 않았다. 둘의 모습에 시너지가 더해졌다. 박완서 선생님의 단편 ‘마른 꽃’에서는 이와 비슷한 것들을 ‘짐승스러운’으로 표현했다.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딘다는 것은 사랑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짐승스러운 시간을 같이한 사이가 아니면 안 되리라.’ 엄마의 볼록한 가슴은 더 이상 섹시하지 않다. 유방은 아이를 먹이는 밥통일 뿐. 아빠 앞에서 언제 어디서고 셔츠를 들어 올려 젖을 물리는데 주저함이 없다. 서로 관능의 눈짓은 언제 적에 주고받았던가. 아기를 낳고 보니 똥 치우기에는 힘을 합해야만 했다. 아기가 바동거리면 똥물이 옷에 튀기도 하고 운이 나쁘면 오줌 세례도 받아냈다. 아기 변을 수시로 접하다 보니 인간의 배설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고 그 배설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피할 일이 아니었다. "여보! 오늘 내가 2미터쯤 되는 굵고 긴 똥을 쌌어!" "당신 장이 정말 튼튼한가보다!"
To love is to receive a glimpse of heaven.
사랑하는 것은 천국을 살짝 엿보는 것이다. 우리 청첩장에 적힌 문구였다. 이걸 보고 한 선배가 내게 그랬다. 결혼하면 천국도 엿볼 수 있지만 지옥도 상당하게 경험할 수 있다고. 결혼하고서 살의가 느껴지는 전쟁을 치를 때면 이 재치 있었던 경고가 생각난다. 예전에는 마음 상하는 일이 있으면 그렇게 소처럼 순한 눈을 껌뻑거리며 눈물을 흘렸었지만, 결혼 8년 차쯤 되니 울지 않고 또박또박 말하는 법을 체득했다. 말로도 얼마든지 강펀치를 날리고 KO 시킬 수 있는 고단수 파이터가 되었다.
unknown
삶을 지탱하는 부부 관계의 진면목은 전쟁을 치르고 난 후에 찾아온다. 결말은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싸운 후 연애하는 연인이 밤새 마음 졸이고 삐지고 신경전하는 게 다 뭐람. 전우애(?)를 공유한 부부는 금세 나란히 세워진 여섯 자 장롱처럼 텔레비전을 보고, 함께 봉지과자를 뜯어먹고, 넋 빠지게 웃는다.
아......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