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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란 Nov 24. 2023

정리하수 어르고 달래서 일 시키기

D-40,39,38

D-40


시간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D day 48일 전에 시작했는데 곧 앞자릿수가 바뀐다고 생각하니 조급해진다. 업체의 도움을 받는다면 하루 만에 끝날 수도 있는 일이다. 돈이 많았다면 외주로 해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옷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해서, 도저히 스스로 정리할 자신이 없었던 지인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힘을 낸다. 그분은 정리업체를 불러 돈을 쓰고도 속상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까만 옷이 굉장히 많았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시커먼 것들이어도 자기만 알 수 있는 디테일이 제각각 특별한 옷이었다. 도우미 분들이 임의로 솎아주셔서 옷을 대량 방출했다. 확인을 안 했던 건 아니지만 꼼꼼하게 보지 않고 내보낸 옷에 하필 아끼던 옷이 딸려 나갔다.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게다가 스스로 정리한 것이 아니다 보니 유지를 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 당시에는 너무 좋았음에도 시나브로 집이 어지럽게 원상 복귀되었다고 전했다.


시간이 걸리고 품이 들어도 80만 원을 아끼는 동시에 정리 내공을 키우고 주체적으로 공간과 환경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고 있는 내 자신에게 칭찬의 박수를 쳐 준다.


화장대 밑의 잡동사니 두 무더기를 치웠다. 대체로 쓰레기가 많았지만 잃어버렸던 단추들과 아이쉐도우를 찾았다. 아이의 예쁜 삔들도.


다 하진 못했다. 이틀이 걸릴 듯하다.




D-39


화장대 밑을 치우는 것이 워낙 대작업이다 보니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왔다. 미루고 싶어 하길래, 얼른 '그래!' 라며, 다른 것부터 하기로 했다. 치울 곳이야 무궁무진하니 하기 싫은 것을 굳이 지금, 당장 할 필요는 없다. 정리의 하수인 나를 잘 달래고 꼬셔서 일 시켜야 한다. 다 내려놓고 파업한다고 하면 안 되니까 말이다.


무인양품을 다녀왔다. 다양한 정리 장비들을 구경했고, 집에서 유용하게 쓰고 있는 소프트 의류함을 몇 개 더 사 왔다.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서 아이들까지 키우고 있으니, 물려받은 옷, 제철옷 등을 잘 순환시켜 주어야 깔끔한 옷장을 유지할 수 있다. 얼마 전에 가을맞이 옷장 정리를 했지만, 본격적인 추위가 찾아오니 몇 개 남겨두었던 반팔과 얇은 긴팔도 손이 가지 않는다. 그것들을 다 의류함에 수납했다. 공간에 여유가 많다. 옷장문을 열었을 때 딱 필요한 것만 있고 군더더기 없는 모습이 단정하다.





D-38


이곳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원인을 생각한다. 책이 너무 많아서 책장이 토하는 중이다. 지정석 없이 갈 곳 잃은 책들이 여기 궁둥이 눌러 붙이고 앉았다. 장난감도 마찬가지. 연령에 맞지 않는 지난 장난감들도 한 자리씩 차지했다.


화장대 아래 정리 완료 ✔️



선물 받았는데 취향이 아니거나 불필요한 것들도 여기에 쌓였다. 그러니 나도 선물할 때 무척 고민하게 된다. 예전에는 오래오래 간직하면서 나를 생각할 수 있는 선물을 주었다면 이제는, 상대의 취향을 잘 모를 경우에는 차라리 먹어 없앨 수 있는 과일이나 고기를 선물하고, 커피 쿠폰을 보낸다. 주신 분의 마음은 언제나 고맙지만 쓰지 못하고, 의리 때문에 버리지도 못하는 물건들은 참 곤란하기 때문이다.



필요 없는 소소한 물건들은 기부하거나 원하는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자.

 

고물 보물을 하나 찾았다! 서른 살에 퇴사하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고 퇴직금을 털어 샀던 노트북인데, 심하게 망가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 노트북 안에는 나의 부끄럽고도 뜨거운 처녀 습작들이 있다. 자료들을 복구할 수 있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브런치 연재가 부담스러워서, 마감을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 많이 망설였는데 짐정리에 관한 글을 쓰려면 정리를 안 할 수가 없다.


나의 브런치 독자가 많지 않아도, 그들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하면 어느새 슈퍼파워를 발휘해 강제 정리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다음 편 예고>

1. 화장대 안. 보이지 않는 곳을 정리하기

2. 토하는 책장 구하기. 이케아 빌리가 견디질 못하고 선반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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