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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란 Dec 30. 2023

맨날 정리만 하고 살 순 없잖아!

짐정리 일지 D-5,4,3,2

비포는 원래 더 심각했는데 아이들이 브루마블 게임이라도 박스에 넣어 주었다.



1주일 만에 테이블을 치웠다. 브루마블이 원인이었다. 끝나지 않은 게임 때문에 아이들이 치우지 못하게 해서 두었더니, 책상이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깨진 유리창 실험과 유사한 결과다. 필립 짐바르도라는 미국 심리학 교수가 두 대의 자동차를 길에 세워둔 채 일주일 동안 방치했는데, 한 대는 유리창을 깨 놓고, 하나는 멀쩡하게 두었더니 일주일 후에 비교했을 때 깨진 유리창의 자동차는 더욱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고, 깨끗한 자동차는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다. 이 실험을 통해 작은 무질서 상태가 더 크고 심각한 범죄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론이 도출되었다. 너저분한 공간에서는 너도 나도 더 정리를 안 하고 어지르는 경향이 있다. 깔끔한 곳에서는 전반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조금이라도 조심한다. 물론 아이들은 언제나 한결같이 어지르는 특성이 있지만 말이다.



테이블을 치우는 데 13분 45초가 걸렸다. 아마 스톱워치를 작동해 놓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신경 쓰고 빨리 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더 걸렸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식탁을 치웠다. 35분이나 걸렸다. 이유는 위의 그릇들 뿐 아니라, 음식물을 치우고, 재활용해야 하는 음료수병이나 우유갑 등을 분리수거하고 주방 정리를 하면서, 또 바닥에 아이들이 떨어트린 음식물을 닦아내고, 그 와중에 아이들의 요구에 대응하고 시중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집안일에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을 쏟고 사는 건지 궁금해서 빨래나 설거지, 청소하는 데 얼마가 걸리는지 재 봤다. 빨래를 혼자 개켰더니 33분이 걸렸다. 빨래를 혼자 널었더니 24분이 걸렸다. 애벌빨래해서 세탁기에 넣은 시간까지 합하면 빨래라는 한 항목에만 1시간이 넘게 걸린 샘이다.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마침 남편은 없어서 아이들만 동원했다. 빨래 개키는 데 16분이 걸렸다. 시간이 반으로 줄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집안 일만 한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발을 동동거리면서 소처럼 일하다가 책 한자도 못 읽은 날. 뿌듯하지 않다. 살림만 하면서 살긴 싫다. 가족을 동원하고 시스템화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하루 24시간에서 수면 시간을 제외한 17시간 중  살림에  할애하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또는 억울하지 않은지 생각해 본다.





D-5

바깥 책장 정리를 완료했다. 날이 좀 따뜻해지면 저 의자에 앉아 한가롭게 독서할 수 있겠지.


D-4


브런치에는 미니멀 라이프 고수들의 많은 글이 있다. 그분들의 글은 집을 깨끗이 하려는 분들에게 올바른 길라잡이가 된다. 반면 나의 짐정리 일지는 도움보다는, 정리 못하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는 글인 듯하다. 의도한 건 아닌데, 차별화 전략이 확실하다. '저렇게 집이 엉망진창인 사람도 있는데, 나는 잘 살고 있는 거구나.' 느끼면서 자신감을 가지실 법하다. 엄마가 바깥에 쌓인 이삿짐을 필사적으로 치우느라 신경을 못 써준 사이, 아이들의 방은 다시 폭탄을 맞았다. 한 곳이 깨끗해지면 다른 곳은 지저분해지는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좀 치사하지만 극단적인 방법을 쓰기로 했다.


"너희들 방 다 치우기 전까지 아이패드 안 보여준다!!!"

애석하게도 아직 애프터를 찍을 수 없다.


D-3


현관 바깥에 남아있던 마지막 이삿짐 박스와 잡동사니를 정리했다. 회사 다닐 때 쓰던 업무용 다이어리를 버렸다. 그 안에도 어찌나 투두 리스트가 빽빽한지. 살림을 하는 지금이나 일을 하던 그 때나 삶은 비슷한 건가 싶다. 목록을 지우고 지우다 내일로 이어지고 또 더해지는 네버엔딩 할 일 마스터하기. 차이라면 그때는 돈을 받고 일을 했고, 지금은 무급이라는 점이다.



버린 것

남긴 것


D-2


현관 앞 변천사를 찍어두었더니 정말 뿌듯하다.

하나 남은 것은 아이의 대형 종이집인데 자기 방을 깨끗이 다 치우면 설치해 주기로 했다.


현관 앞 변천사
이사짐 박스에서 발견한 오브제. 프랑스 몽쉘미셀에서 사 왔던 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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