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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덕이 Jan 19. 2024

AP 심리학을 공부하는
유학생 관찰 보고서

AP 과외를 한 지는 거의 10년이 다 돼 간다.

이런 세상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개인 수업 요청/유학원 연락 등등으로 

AP 심리학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과장 조금 보태서 감고도 있는 정도가 되었다.


AP는 Advanced Placement의 약자로 대학과목 선이수제를 의미한다.

고등학생들이 AP 과목 이수 후 시험을 보면 그 결과를 미국 대학 진학 시 학점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이다.

많이 들을수록 재학 기간이 줄어드니 비싼 학비를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원래 취지는 대학과목 선이수제였지만 유학생들/미국 학생들은 대학교 지원 시 자신의 학업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대학들이 학생 선발 시 AP 시험 점수를 참고한다.

총 5점 만점인 시험으로 3점부터 패스, 4점은 우수, 5점은 최고라고 보면 되고

당연히 한국 유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5점을 목표로 한다.

AP 심리학은 다른 AP 과목 대비 난이도가 높지 않고 외우기만 하면 

쉽게 5점을 얻을 수 있다.고 세간에 알려져 있다.

물론 해보면 또 그렇게 쉽진 않지만 일단 학생들과 학부모는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당연히 중요한 시험이기에 모두들 열심일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우리나라 수능도 열심히 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이 있는데

이 시험도 마찬가지다.

학생과 학부모(또는 유학원)의 조합이 중요하다.

여기서는 10년 가까이 학생들을 만나면서 본 가장 전형적인 타입들을 소개하겠다.


1) 학구파형 (희귀도:★★★★★, 수업난이도:★-실제 수업은 어렵지 않은데 다른 이유로 마음고생을 한다면 수업 난이도가 급증한다...)

모든 고3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건 아닌 것처럼 

비싼 돈과 긴 시간을 투자해도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그렇기에 열심히 하는 학구파는 굉장히 희귀하다.   

특히, 과외나 학원에서 학구파를 만나기는 희귀한데 

왜냐하면 학구파일수록 AP 심리학 정도는 독학, 인강, 학교 수업으로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구파는 수업 시간에 핵심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해 속도가 빠르며 문제풀이를 해도 질문 개수가 많지 않다.

열심히 하는 학구파는 숙제도 잘 해오지만 열심히 하지 않는 학구파에게는 숙제해 오길 기대하면 안 된다.

학구파와 성실은 함께 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대부분의 경우 영어를 잘한다.

학구파를 만난다면 5점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봐도 좋다.

다만 학구파는 성적에 비례하는 싸가지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학구적이고 성격도 좋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학구파는 본인이 어느 정도 머리도 좋고 그걸 잘 알고 있으며 

어릴 때부터 부모나 주변의 기대를 받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 기준이 높기 때문에 이미 많은 활동이나 수업을 하고 있다.

이를 예의 없음을 타당화하는 원리로 삼는(또는 그렇게 부모나 학원이 방어해 주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학구파의 예의범절은 미묘한데 예를 들면 수업 시간에 늦기(+보통은 사과 없음 동반), 늦는 연락(카톡 답변은 그다음 날을 기약해야 한다), 단답형, 선생 시험하기 등이 있다.

유학원이 연결해 준 학구파일 경우 학구파를 포기하고 싶어도 

실적을 위해 어떻게든 시험 때까지만 버텨달라는 요청을 듣게 된다. 


2) 의욕제로형 (희귀도:★, 수업난이도:★★★)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의욕이 없다. 

내가 왜 AP를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 없이 

부모/학원이 대학 입시를 위해 하라니까 하는 경우이다. 

심한 경우에는 문의 전화가 와서 한 시간 정도 통화하고 수업 날짜를 잡았는데

수업 전날, 자녀가 안 하겠다고 해서 취소된 경우도 있다.

문의 전화 때 자녀와 아직 상의는 안 되었지만 

일단 선생님 확보를 위해 먼저 연락드렸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의욕제로인 학생에 대비되도록 그 학부모가 의욕 만땅인 경우가 많은데 (보통은 학부모가 의욕 과잉 상태여서 자녀가 의욕이 없어지는 순서가 많다)

그래도 일단 학생과 사전협의가 된 채로 문의전화를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수업 상담/문의는 30분을 넘기지 않는다는 자체 방침을 잡았다.

나도 내 시간이 아깝...


어찌어찌 수업을 시작해도 의욕제로 학생은 끌어가기 참 힘들다.

의욕이 없기 때문에 의욕을 일단 끌어올려야 하는데 

흥미로운 부분에서는 열심히 듣는 듯하다가도 흥미롭지 않은 부분에서는 귀를 닫아버린다.

영어를 잘 못 하는 경우도 많다.

유학생/국제학교 학생/현재 해외 거주 등등이어도 영어를 잘 못 할 수 있다.

그리고 AP 심리학은 보통 영어가 아직 서툰 한국인 유학생들이 선택하는 거시/미시 경제나 각종 이과 과목과 달리 어느 정도의 영어 수준이 되어야 문제를 읽고 이해하고 에세이를 쓸 수 있다.

그래서 의욕제로는 어느 순간 수업을 드롭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3) 엄청급해요형 (희귀도:★★, 수업난이도:★★)

AP 수업을 느긋하고 여유롭게 하는 경우는 원래도 많지 않지만

그래도 그중에서도 정말 급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시험 한 달 전에 연락이 오는 경우...?

이 정도로 급하게 받은 건 지금까지 딱 2번이었지만

이 때는 5월 초 시험을 위해 4월 내내 수업한다고 보면 된다. 

보통 이론 1 회독에 28시간 정도 수업하는데 여기에는 문제풀이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4월에 학교 행사나 시험 있는 날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하루 2시간 정도씩은 수업해야 이론을 한 번 보고 기출문제도 좀 풀고 갈 수 있다. 

인상적인 경우는 학생이 스스로 알아보고 어디선가 날 찾아내서 연락해 온 경우였다.

보통 개인 수업은 부모가 연락해 왔기 때문에 학생이 먼저 나한테 직접 연락한 경우는 드물다.

이 학생의 부모와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어떻게 알아내서 수업을 스스로 받기로 한 게 대견했지만

너무 벼락치기라서 학생이 복습할 시간이 없는 게 아쉬웠다.


이 외에도 겨울방학 2~3주 내외, 봄방학 2주 내외 정도에 끝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도 당연히 수업은 매일 한다. 

수업량이 좀 부담이지만 그래도 몰아서 하고 끝낼 수 있어 편한 장점도 있다.


4) 안타까운형 (희귀도:★★★, 수업난이도:★★★★)

열심히 하고 성실한데 다양한 이유로 수업 때 힘들어하는 유형의 학생들이다.

보통은 숙제도 다 해와서 더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이 유형의 학생들은 영어를 잘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 유학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경우이거나 나이가 어린 경우이다.

여기서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중학생인데 선행 수업을 원하는 경우이다.

AP 과목이 하기만 하면 된다지만 그래도 나름 대학 1학년 교양 수준 정도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중학교 3학년이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하길 원하길래 수업은 했지만 실제로도 굉장히 어려워했다.


영어를 잘 못 하는 경우는 AP 심리학에서는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AP 심리학에는 FRQ라는 에세이 영역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영어 읽기와 쓰기가 가능해야 

시험 답변을 적어낼 수 있기에 유학 1년 차한테 추천되는 AP 과목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영어 실력은 편차가 크고 연차가 는다고 해서 꼭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러면 수업 난이도는 헬이 된다...

일단 영어 텍스트를 못 읽고 에세이는 작성할 수 없다. 

그러면 열심히 하는 것과 비례하지 않는 성적이 나오게 된다.

이런 학생들은 신경이 쓰여 나도 덩달아 불안해지고 

뭔가 더 해주고 싶은데 더 받을 여력은 안 되는 학생들이다.


5) 함구형 (희귀도: ★★★, 수업난이도: ★★)

말을 안 한다.

말을 거의 안 하는 경우도 있고

말을 아예 안 하는 경우도 있다.

수업 끝날 때까지 목소리를 못 들어본 학생도 있다.

말을 잘 안 하는 학생은 은근히 있지만 한 번도 말을 안 한 경우는 딱 한 명이었다.

1:1 수업인데 어떻게 말을 안 할 수 있는지 의문일 것이다.

나도 의문인데 그래도 어떻게 수업은 진행되었다.


이런 학생들은 당연히 질문도 안 하고 대답도 안 한다.

코로나 이후 줌 수업이 급등하면서 특히 이런 경우가 늘었다.

심한 경우에는 화면을 끄는 경우도 있고 

화면을 켜라고 하면 눈만 겨우 보이게 하거나 아니면 천장을 비추는 경우도 있다.

이런 학생들을 데리고 갈 것인지 말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자꾸 말을 하라고 하면 수업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으니

수업을 한다면 말할 것을 기대하지 않고 해야 한다.

질문이나 코멘트가 없으니 당연히 피드백을 하기도 힘들어서

수업 난이도는 진도만 나가면 된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문제풀이 때 학생이 모르는 문제 위주로 보려고 하면 거의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AP 심리학 수업을 처음 하기 시작했던 10년 전과 비교하면

국제학교도 많아졌고 유학생 비율도 많아져서

더 다양한 학생 풀이 생겼다.

학생의 수는 더 많아졌지만 그만큼 학생들의 격차는 커져서 티칭 난이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초반에는 수업을 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수업 내용을 잘 숙지하고 있는지, 

얼마나 잘 전달하는지 등을 고민했다면 

이제는 학생, 학부모, 유학원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질 것인지가 

수업을 계속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지키는 규칙들을 설정하고 이를 전달하는 것,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 

어디까지 요구를 수용하고 힘든 요구는 어떻게 협상하거나 거절할 것인지 등은 

이렇게 오래 했음에도 아직도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심리적 타격을 덜 입으며, 스스로 너무 흔들리지 않으며, 

적당하게 거리를 두며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을 택할 수 있게 되었다.

긴 호흡으로 꾸준하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맞는 노하우와 전략이 필요하다.

물론 그래도 기대했다가 다치기도 하고 데이기도 하고 더 해주지 말아야지라고 옹졸하게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런 순간에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은 학생들을 만나 마음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는 나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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